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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봐야 뭐가 바뀌겠냐 묻지만, 적어도 ‘나’ 한 사람은 바뀌었죠”

정유진 기자

땅콩회항 수기 ‘플라이 백’ 펴낸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

자존감 지키며 살자는 다짐과 근무 환경 자각하게 하려 출간

사측 새 노조 명단 공개 등 ‘방해’…동료들 위해서 끝까지 싸울 것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이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수기집 <플라이 백>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메디치 제공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이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수기집 <플라이 백>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메디치 제공

“혹자는 제게 약자를 위한 보호막조차 없는 사회에서 왜 굳이 이 처절하고 질게 뻔한 싸움에 나서냐고 묻습니다. 그래봤자 무엇이 바뀌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말합니다. 적어도 ‘나’라는 한 사람은 바뀌었다고. 또 다른 사람들은 다시 그날 그 순간의 뉴욕공항으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냐고 묻습니다. 저는 또 그럴 것이라고 답합니다. 한 인간이 힘의 우위를 내세워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강탈해선 안된다는 신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인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장은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수기집 <플라이 백>(메디치)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대한항공 직원으로 일하며 느꼈던 점과 땅콩회항 이후 그에게 벌어진 일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한 개인이 타인의 폭력으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스스로 바로잡아나가는 과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인 ‘플라이 백’(Fly Back)은 회항을 뜻하는 항공용어다. 본인이 겪은 땅콩회항 사건을 뜻하는 동시에, 이에 굴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며 살겠다는 각오를 나타낸다.

박 지부장은 땅콩회항 사건 후 “나는 더 이상 개가 아니다. 이제 사람으로 살겠다”는 말이 실린 자신의 인터뷰 기사에 ‘그럼 (참고 회사 다니는) 우리는 다 개란 말이냐’라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나는 조현아 부사장에게 폭행당하고 강제로 비행기에서 내려지는 순간에조차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란 말만 연발하고 있었다”며 “그 사건을 겪으면서 그전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주인에게 갖은 귀여움을 떨지 않으면 먹이를 얻을 수 없는 충성스러운 개의 신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평범한 이야기가 저와 비슷한 상황에서 충실한 애완동물 같은 환경에 처해 있음에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알림판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책을 내게 됐다”고 했다.

박 지부장은 이 책을 통해 ‘비용절감’과 ‘효율성’만 앞세우며 직원들을 비인간적으로 관리하는 대한항공의 시스템도 고발한다. 그는 땅콩회항 사건 후 사무장에서 일반 팀원으로 강등됐지만, 사실 이는 처음이 아니다. 땅콩회항 사건 1년 전에도 그는 브루나이 전세기 비행에서 발생한 면세품 도난사건의 책임을 지고 손실액을 사비로 물어낸 것은 물론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됐다. 그는 “취항하지 않는 지역에 가면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데다 인력이 부족해 구조적으로 발생하기 쉬운 문제임에도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추궁하는 현실을 보고 내가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물건임을 그때 깨달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회사는 1년 후 다시 팀장직에 복귀한 그에게 언제 내쳤냐는 듯이 다시 총수 일가의 수행을 맡겼다. 그렇게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떠나게 된 뉴욕 비행에서 이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땅콩회항 사건 후 등 뒤에 꽂히는 온갖 따가운 시선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회사에 다녔다. 그는 이날 열린 기자회견도 전날 하와이 비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참석한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서라도 일단 복직하라는 조언 때문에 주변 정리 차원에서 한두달 정도만 다니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복직 후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사측의 태도에 부당함을 느꼈고 ‘최소한 나 하나라도 항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쉬울 리가 없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 회사 현관문을 열 때마다 “지옥문을 여는 느낌”이었다.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던 언론은 땅콩회항 사건의 화제성이 사라지자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지난 4년간은 불 꺼진 무대 위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을 바꾸는 데 조금이나마 자신이 일조하고 있다는 희망의 가능성 때문이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이 조양호 회장 일가 퇴진 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전에 땅콩회항 사건으로 외롭게 싸워온 박 지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를 변화시키기 위해 그와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과 새 노조인 대한항공직원연대를 결성했다. 애초 500여명으로 출발했지만 사측과 일반 노조의 회유로 지금은 300여명만 남았다. 박 지부장은 “일반 노조 측에서 소속 조합원들이 직원연대로 이동하는 것을 막으려고 온라인에 명단을 공표하는 등 내부 직원들의 공포심이 확산됐다. 대한항공처럼 폐쇄적인 회사에서 이는 ‘주홍글씨’처럼 낙인찍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일반 노조 측을 명예훼손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땅콩회항 사건 때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에 끌려들어갔다면, 지금은 용기 내는 동료들에게 좀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 나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 소명을 다할 때까지 계속 회사를 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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