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한국 남자’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김경학 기자

한국, 남자

최태섭 지음

은행나무 | 280쪽 | 1만5000원

[책과 삶]‘한국 남자’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한국 남자의 줄임말 ‘한남 韓男’은
“대체로 여성 혐오적인 사고방식을 깔고
문화 지체를 보이는 남성을 지칭하며
때때로 남성 전체를 싸잡아 일컫는 말이다”
100여년 질곡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여성을 향해 퍼붓던 혐오의 비극적 대가이다

한국 남자의 줄임말 ‘한남(韓男)’.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혹은 출생지는 대한민국이 아니라도 한국 사회에 오랫동안 살아 사실상 한국인과 다름없는) 남성을 뜻하는 이 단어는 최근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페미위키에 따르면 한남은 “대체로 여성혐오적인 사고방식을 깔고, 문화지체를 보이는 남성”으로 “주로 한남이라고 줄여 부르지만 때때로 한국 남성 전체를 싸잡아 일컫는 말”이다.

한국 남성이라면 누가(특히 여성) 자신을 가리켜 ‘한남’이라 부르면 불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남성들은 최근에야 페미니즘 운동(특히 미러링)에 대해 불쾌함과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사실 여성들은 그런 불쾌함과 억울함, 더 나아가 위협을 아주 어릴 때부터 안고 산다. 억울할 수도 있다. 딱히 여성 차별이나 혐오를 한 적도 없는데, 왜 내가 한남이란 소리를 들어야 하나. 그러나 혹시 누가(주로 남성) 여성을 향해 ‘된장녀’ ‘김치녀’라고 싸잡아 지칭할 때 적극적으로 저지한 적이 있는가. <한국, 남자>는 ‘한국 남자’가 어쩌다 ‘한남’이 됐는지를 되짚어보는 책이다.

저자는 책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잉여 사회> 등을 통해 한국 사회 청년세대의 노동과 착취·소외에 대해 말해온 문화평론가이자 사회학 연구자다. 저자는 단순히 흥밋거리 사건들만 나열해서 보여주지 않는다. 제목에 쉼표가 붙은 것처럼 우선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한국전쟁·군부독재·외환위기·금융위기·장기화된 불황 등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시대순으로 조망한다. 비극적이고 굵직한 사건들 속 남성성은 어떻게 작용했고 변해왔는지를 선행 연구를 인용해가며 촘촘히 따져본다. 여기에 각종 통계와 자료를 덧붙여 설득력을 더한다.

1950년대 한국 사회 전반에 퍼진 여성 혐오는 한남들이 얼마나 혐오 정서를 정치적으로 악용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국문학자 허윤의 논의를 인용해 당시 “양공주·자유부인·유엔마담·아프레걸·전쟁미망인 등에 대한 넘쳐나는 비난과 억측들”은 “남자의 불안과 고통에 대한 죄를, 그것의 원인인 냉전체제와 국가에 묻는 대신 여성에게 떠안기는 것”이었다며 “지배자-남성들은 혐오를 부추기며 냉전체제가 상처 입힌 남성들에게 여성을 먹잇감으로 던져주고, 피지배자-남성들은 자신의 불만과 불안을 지배자들이 허용한 여성들을 향해 퍼부었던 것”이라고 진단한다.

[책과 삶]‘한국 남자’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일부 뭉뚱그린 표현도 있지만, 전반에 걸쳐 한국 남성들에 대해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저자는 “단 한 번도 남자들은 온전한 가부장이었던 적이 없다. 그들은 폭력을 휘두르는 폭군이었거나, 돈을 벌기 위해 멀리 떠난 가장이었거나, 죽어서 없는 존재였다”며 “게다가 ‘아빠의 청춘’류의 가부장 신파 역시 일종의 자기 미화에 더 가까웠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감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말로 먹여 살릴 능력이 되었던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희생은 자기 연민을 위한 소주잔에 따라 마셔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최근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여성 혐오에 대한 통찰도 명료하다. 저자는 “메갈리아가 나타나기 전까지 (청년들의 놀이 문화였던) 여성 혐오의 온실은 평화로웠다”며 “지금 그(평화로운 온실의) 균열을 부정하기 위해 더 조직적이고 가열찬 여성 혐오가 벌어지고 있다. 진실은 아무것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고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추한 결말만이 기다린다”고 말한다.

저자는 추한 결말에 다다르지 않는 남성이 되기 위해선, 자신에게 누락된 것들이 여성이 아닌 사회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고 돌보는 자로 살아가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는 ‘나’뿐 아니라 타인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의 페미니즘 이슈에 관한 책들은 많았지만 이 책처럼 100년이 넘는 역사 속, 그것도 남성학 위주로 정리한 책은 많지 않다. 이 책은 변화하는 시대 한국 남자들이 택해야 할 그 연대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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