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법률

  • 등록 : 2018-09-11 18:36:48

    수정 : 2018-10-04 10:26:17

[심층취재] 강남구 환경미화원 노조 "쓰레기 냄새 씻을 곳, 제대로 된 화장실 주는 게 그리 어렵습니까"

2018-09-11 18:36:48



강남구 환경미화원 노조 "쓰레기 냄새 씻을 곳, 제대로 된 화장실 주는 게 그리 어렵습니까"
[2018년 10월호 vol.329]
  • PDF
  • 장바구니에 담기
  • 프린트
  • 작은글씨
  • 큰글씨





  • '강남노조'와의 인터뷰는 탄천2고가도로 아래 강남구 환경미화 차고지 귀퉁이에 있는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이뤄졌다. 그나마 쓰레기 냄새가 조금 덜 나는 곳에, 장판이 깔리고 작은 냉장고가 하나 있을 뿐인 이 컨테이너 박스가 강남구 환경미화원들의 유일한 휴식 장소다.

    환경미화업무는 생폐(생활폐기물. 즉 음식물, 재활용 쓰레기 등)와 '뒷골목'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자주 보는 쓰레기 수거 환경미화원은 생폐(생활폐기물) 근로자를 일컬으며, '뒷골목'은 골목 구석구석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쓰레기를 쓸어 담는 근로자들을 말한다.

    주로 '생폐' 근로자들로 이뤄진 '강남노조'는 강남구청과 청소 용역계약을 맺은 업체 총 8군데 중 3개 업체의 근로자들로 구성이 된 일반노조다. 2011년에 설립된 이 노조는 여러 사정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있는 세차장도 못쓰게 하면서 "청소차 위생 상태" 지적하는 강남구

     
    현재 이들이 차고지로 사용하고 있는 고가도로 밑 부지는 강남구청 땅이 아니라 다른 공공기관 소유다. 구청에서 마땅한 장소를 마련해 주지 않아 청소업체들이 불법점거하고 있는 셈이다. 다달이 과태료를 내고 있는 상황. 바로 옆 서초구만 해도 청소 차량을 위한 별도 시설이 있다. 서울시 전체를 봐도 부지를 무단점거해서 청소차를 관리하는 곳은 '재정이 가장 좋은' 강남구 뿐이다.
     
    이러다 보니 차고지나 근로자들을 위한 휴게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을리 만무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화장실이다. 철판 몇개를 덧대 만든 허름한 간이식 화장실인데, 그마저도 재작년에 생겼다. 그 전에는 화장실을 찾아 위험한 찻길을 건너 공원까지 가야했다. 회사에 사정사정했더니 만들어 준 게 이 화장실이다.



     
    환경미화원에게 필수인 샤워시설은 꿈도 꿀 수 없다. 원래는 수도꼭지도 하나 없었다. 재작년에야 수도꼭지 두어개가 생겨 간신히 손 정도는 씻을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재정 상태가 좋은 '강남구'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들이 겪고 있는 일이다.
     
    "퇴근을 할 무렵에는 몸에 냄새가 많이 밴다. 그런데 마땅히 샤워를 할 곳이 없다 보니, 그런 채로 대중교통을 타면 사람들이 우리를 다 피한다. 씁쓸하기도 하지만 죄송하기도 하다."
     
    강남구는 청소용역업체를 상대로 평가제를 하고 있는데, 중요하게 보는 평가 기준이 차량 청소 상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버젓이 존재하는 차량 청소 및 세차시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강남구다.

    "관리비가 나가니까 못쓰게 한다. 하다못해 건설현장 출입 트럭도 먼지 날릴까 봐 물을 뿌리지 않나.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지저분한 청소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세차 시설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평가할 때는 차량 세척상태를 지적한다."
     
    좀 더 꼬집자면 구청의 불투명한 청소행정도 문제다. 구청은 용역회사와 환경미화원 사이 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구청에서 배정한 '직접노무비' 집행이 어떻게 됐는지도 알지 못한다.

    청소 용역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구청이 회사에 지급한 직접노무비와 근로자들이 지급받는 노무비 사이 차액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에서 제대로 처리를 하고 있는 건지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구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강남구가 용역업체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법정 청소차량 연식 제한은 최대 6년이다. 그런데 10년이 넘은 차량은 물론 15년이 넘은 차량도 운행되고 있다. 오늘도 환경미화원들은 노후 차량 뒤에 매달려 매연을 마시며 거리를 누빈다.

     

    ■회사가 힘들어질까 참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악화된 근로환경'

     
    강남구 환경미화원 근로조건이 어려워진 건 구청만의 탓은 아니다. 사용자인 청소업체가 환경미화원들의 근로조건 개선에 별 관심이 없는 상황이 근본적인 문제다.

    또 2년마다 임단협으로 정하는 임금 상승 속도가 최저임금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현재 상당수의 환경미화원이 최저임금 위반 문제가 걸려 있는 상황이다.
     
    "재활용 작업 파트에서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위반한 의심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절대 아니라고 인정하지 않더라. 법제처에 문의했더니 위반이 맞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에 노동부로 가서 심판을 받아보자 공문을 보냈더니 그제서야 바로 인정했다."
     
    최근 휴일중복할증을 둘러싸고 통상임금 문제가 크게 이슈화 된 것도 성남시의 환경미화원들이 제기한 사건에서 발단이 됐다. 놀랍게도 강남구 환경미화원 중 한명도 유사한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바 있다. 하지만 강남구에서는 대형 소송으로 번지지 못했다.
     
    강남노조 위원장은 "노조위원장으로서 이런 말을 하면 안되는데..."라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노조 인원이 60명인데, 체불에 해당된다고 의심되는 사람이 40명 가까이 된다. 그런데 40명의 통상임금이 문제 되면 회사 입장에서도 크지 않나. 또 우리에게 급한 것은 실질적으로 정년 연장이라는 판단도 있고(그래서 소송 확대를 자제한 것이다)."
     
    공연히 문제를 키웠다가 구청이 시행하는 공개입찰에서 노조가 있는 회사만 재계약을 거부당하는 등 피해를 보지 않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다. 기본적으로 내게 일자리를 주는 '우리 회사'가 행여나 어려워질까 두려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이들에게 보답으로 돌아오는 것이 '상생의 배려'는 분명 아니었다.






     
    강남노조 자문을 맡은 모 노무사는 "작년에는 끝까지 사소한 안건을 핑계 삼으며 들어주지 못하겠다고 버티던 회사가, 서울지노위에 조정신청을 넣겠다고 했더니 바로 협상자리에 나온 일도 있었다"며 "솔직히 그동안 순진하다 싶을 정도로 노조원들이 회사를 배려하는 마음이 컸다. 답답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노조원들도 인내심을 잃기 직전"이라고 전했다.

     
    근로자들이 오랜만에 노조차원에서 대응하기로 마음먹게 된 계기는 정년연장이다. 현재 강남구 청소 용역회사 정년은 대부분 60세다. 법정 정년에서 더 연장해 달라는 게 욕심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미화원 업무를 시작하는 평균 연령이 40세를 넘는다. 정년 1~2년 연장이 회사에 크게 부담이 된다고 볼 수 없다.


    채용공고를 올려도 신규 지원자는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회사도 결국 정년을 넘긴 기존 근로자를 촉탁직으로 재계약해서 쓸 수밖에 없다. 그럼 작년까지 이 회사에서 같은 일을 하던 바로 그 근로자가, 정년이 넘었다는 이유로 근속수당과 상여금을 대폭 삭감 당한다.

     
    "행여나 내가 쉬면 다른 동료들이 힘들까봐, 1년 내내 연차휴가도 못쓰고 일해 온 근로자가 대부분이다. 최저임금 위반이 의심되는 박봉에 시달려가며 60세까지 일해 온 사람들이 회사에 기여한 것은 전혀 반영해주지 않는다. 그간 제대로 처우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차원에서도 정년을 1~2년 연장해달라는 게 너무한 요구인가. 실질적으로 60세 넘는 사람을 쓰고 있고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불안정한 촉탁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만들어 주는 게 서로 윈윈 아닌가."
     

    노조 차원에서 회사에 목소리를 내면서, 단체협상 요구안 5개를 사용자단체에 제시했다. 내용은 소박한 수준이다. 임금 인상은 나중 문제. 정년연장을 비롯한 휴일대체 공휴일 사용, 샤워시설과 청소시설 마련 정도가 주요 내용이다.
    이마저도 8차까지 이어진 임단협에서 합의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게 조합원들의 생각이다.

     
    "그동안 회사를 배려한다고 했지만, 의견이 더 이상 좁혀지지 않으면 쟁의행위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주민 민원이 모든 것에 우선...환경미화원들, "우리는 을도, 병도 아닌 정"

     
    여러 가지로 힘든 환경미화원들을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주민들의 냉대다.
     
    "청소차만 보면 무시부터 하고 들어온다. 내 퇴근시간에 청소차가 왜 들어오냐, 나 퇴근한 다음에 들어오라고 시비 거는 경우도 있다.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건 다반사다. 구청에서 우리를 존중하지 않은데 주민들이 존중하겠나."
     
    이들이 받는 '천대'를 가장 확실하게 나타내는 것은 무단투기 쓰레기를 처리하는 절차다. 대부분의 기초자치단체에는 폐기물 관리 조례가 있다. 여기에 따르면 생활 쓰레기봉투에 음식물 이 들어가 있던가, 재활용과 생활쓰레기가 섞인 것처럼 상태가 불량한 쓰레기는 수거를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강남구에서는 민원이 모든 것에 앞선다.
     
    "민원이 발생하면 구청은 무조건 회사로 연락하고, 그러면 회사가 우리를 '조진다'. 무단투기인지, 성상(분리수거 상태)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주민이 민원을 넣으면 우리가 뭐든지 다 치워줘야 한다. 무단투기는 물론 종량제 봉투에 넣지 않는 쓰레기, 임의 배출한 냉장고나 폐가구는 물론이고 쥐, 고양이가 죽어도 민원이 나오면 치워줘야 한다. 업무가 다 종료된 상태에서도 가보라는 회사의 한마디에 출동 하지만, 연장근로 인정은 꿈도 못꾼다."
     
    참다 못해 무단투기 쓰레기를 뒤져서 영수증이나 이름을 찾아낸다 해도 무단투기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주소나 신상이 버젓이 적혀 있어도, 단속하려면 주민이 직접 버리는 장면이 촬영돼야 한다는 게 구청의 설명.
     
    다른 구는 어떨까? 적절하게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는 수거하지 않고 수일이 지나도 방치된다. 그러다보니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분리수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구청 자체에 처리반을 별도로 두는 곳도 있다. 그런데 주민이 민원만 넣으면 '알아서' 처리를 해주는 강남구에서는 분리수거 상태가 상대적으로 엉망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분리상태가 엉망인 쓰레기를 차에 싣고 소각장으로 가면, 소각장의 갑질이 시작된다. 이런 쓰레기를 왜 들고 왔냐는 핀잔만 잔뜩 듣지만, 대꾸라도 하면 '찍혀서' 나중에 어려움을 겪을까 두려워 잠자코 듣고만 있는다. 쓰레기를 받아 주는 소각장을 찾아 트럭을 타고 도로를 전전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강남노조만의 싸움 아냐..."이제는 쟁의 불사할 것"

     
    힘든 상황이지만 강남노조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멈출 수도 없다. 그나마 8개 청소 용역 업체 중 젊은 근로자들이 주축이 된 3개회사 근로자들이 모여서 강남노조를 만들었지만, 나머지 회사는 비용도 저렴하고 관리가 상대적으로 쉬운 촉탁직이나 근로자들로 주로 구성돼 있다.

    그런 만큼 이들은 열악한 처우를 받아도 항의도 제대로 못하고 강남노조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강남노조가 얻어내는 것이 나머지 환경미화원들의 근로조건 척도가 된다는 부담감도 크다.
    서울시내 환경미화원 중 가장 열악한 근로조건이라는 오명을 벗고 싶은 것도 소박한 동기다.
     
    인터뷰를 마치고 배웅을 하러 나온 한 조합원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힘이 없고 못 배웠지만, 권리가 있다는 건 압니다."
     
    그 등 뒤로 '환경미화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적힌 플랭카드가 선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elabor.co.kr
     

    •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하시면 노동법률이 제공하는 더 많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로그인

    곽용희

     기자

    목록보기 버튼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LIST

    제보 및 기사문의

    - 이동희 기자
    • 광고, 제보
    • (02)2231-2463, 이메일:dhlee@elabor.co.kr
    • 구독
    • (02)2231-2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