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 없는 현기차 비정규직 점거농성, 난감한 고용부

지난 28일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내 농성장에서 열린 민주노총 긴급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가 원청 노사가 합의한 특별채용 방식에 반대하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사간 교섭의 틀을 만드는 데 주력할뿐 정부가 직접 개입해 노조의 요구안을 들어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민원공간에서 농성이 열흘 가까이 이어지면서 고용 사각지대에 놓인 민원인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3일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달 20일부터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 4층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 점거농성을 시작한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사측인사 처벌과 불법파견 시정조치 명령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비정규직 노조는 현대기아차 원청 노사가 합의한 기아차의 사내하도급 근로자 1300명 추가고용과 현대차의 3500명 특별채용 방침에 대해 불법파견 은폐 시도라며 반발중이다. 이들은 특별채용 및 추가고용 조건으로 사측이 내건 불법파견 소송 취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원청 노사간 합의 과정에 파견 당사자인 비정규직 지회가 배제됐다며 비정규직지회와 사측의 직접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고용부는 현대기아차 노사가 여러 차례 만남을 거쳐 이들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특별채용안을 내놓은 상황에서 시정명령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직접고용 시정명령은 근로감독을 거쳐 위법 여부가 결론 나야 내릴 수 있는데, 아직 근로감독도 이뤄지지 않았기에 절차상으로도 시정조치는 나올 수 없다.

비정규직 노조가 요구하는 정몽구 회장 처벌 역시 사법부의 몫이다. 사실상 고용부가 취할 수 있는 행정 조치는 없지만, 고용부는 노사간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27일 이재갑 신임 고용부 장관 역시 취임 직후 간담회에서 "기본적으로 노사간 이슈가 있기에 대화를 통해 해결방안 찾을 수 있도록 교섭 틀을 만드는 데 그동안 집중해왔다"며 "연휴 기간에 노사 양측과 대화하는 작업을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가 고용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조건들을 내걸고 점거농성을 이어가는 이면에는 '비정규직 지회'가 가진 딜레마가 작용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사측과 교섭을 벌이지만, 교섭이 성공해 비정규직의 수가 줄어들수록 노조 지도부의 입지는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지회 지도부가 '농성을 위한 농성'을 이어가면서 지도력을 확보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규직 전환을 이루더라도, 그 과정에서 비정규직 지회의 역할을 강조하고 이를 발판 삼아 향후 정규직 노조 내에서의 입지도 얻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조가 민원공간인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농성을 이어가면서 그 피해가 민원인들에게 전가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는 실직자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과 취업성공패키지,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등의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점거농성이 시작된 지난 20일부터 민원업무가 정지됐다. 민원창구를 찾았던 실직자와 구직자들은 문앞에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지난 28일 이곳을 찾았던 한 민원인은 "노조원들의 처우 개선을 정부에 요구하려면 고용노동부 장관 방이나 서울노동청장 방을 점거해야지 왜 민원공간에 들어오는지 모르겠다"며 "실업급여 받으며 일자리 알아보는 어려운 사람들 피해는 주지 말고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한편 고용부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에게 불법 점거농성을 푼다면 언제든지 면담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달한 상태다. 또한 불법 점거가 이어져 민원인의 불편이 지속된다면 손해배상청구 등 법적 조치와 함께 퇴거명령과 집행 등 행정조치를 모두 취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