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통행·보행 불편" 민원 잇따라 … "아파트 살기 삭막" 하소연도
"시골집 앞마당도 아닌데 저렇게 늘어놓으시니…."

주부 김모(34·인천 부평구)씨는 얼마 전부터 아파트 단지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붉은 고추들 때문에 불만이 크다.

8월 중순까지 계속됐던 비가 그치고 연일 맑은 하늘이 거듭되면서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고 김씨는 말한다.

그는 "가뜩이나 차 댈 곳 없는 주차장에서 2~3면씩 차지하기도 하고 인도에 올리기도 한다"며 "다니기 거북한 건 당연하고 아이가 말리던 고추를 먹으려 해 깜짝 놀란 적도 있다"고 전했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즘엔 시골 들녘에서 고추 말리는 풍경만큼 정겨운 것도 없지만 도심에선 주민 간 불화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함께 사는 공동 주택에서 도를 넘는 행위라는 비난과 동시에 "아파트 살기 삭막하다"는 노인들 넋두리가 공존하고 있다.

31일 인천지역 아파트 관리사무소들 얘기를 들어보면 최근 경비원들은 단지 내 고추 말리는 주민들과 때 아닌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다.

주로 볕이 좋은 주차장이나 놀이터 공터, 차도까지 고추 말리는 장소로 활용하다 보니 차량 통행이나 보행에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발생하고 있다.

남동구 한 아파트 경비원은 "고추 주인들이 대부분 연세가 많으셔서 좋게 말씀드려도 또 내놓는 분들이 계신다"며 "주차할 때나 걷다가 고추 밟기라도 하면 되레 화를 내시는 일도 종종 있어서 분쟁이 생기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어 "올해 고추가 흉작이라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치우겠다고 함부로 손이라도 대면 욕 듣기 딱 좋다"고 덧붙였다.

실제 모 대규모 아파트 단지엔 '고추 말림 금지' 안내문이 붙기도 했을 정도다.

'만일 고추를 널어 말릴 경우 관리사무소에서 임의 수거할 예정'이라는 경고 문구도 포함됐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가운데 38.9%가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에서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는 고령 인구를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들 부부와 함께 아파트에 거주하는 박연정(76·인천 계양구)씨는 "원래 고추라는 게 제때 말리지 못하면 썩으니까 마음이 급한 법"이라며 "아파트가 워낙 젊은이들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아쉽다"고 했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