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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銀 총파업 예상보다 혼란 작아…들켜버린 `과다 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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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만에 파업강행

인터넷뱅킹·ATM 활성화로
지점 안 가고도 금융거래

KB노사, 타은행 이미 적용한
페이밴드·임피제 조율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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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한 KB국민은행 영업점에서 고객들이 노조 총파업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은행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지점장 등 책임자와 본부 직원들이 직접 고객 응대에 나섰고 창구보다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는 고객이 많아 예상보다 혼란이 크지 않았다. [이승환 기자]
계속된 노사 협의에도 KB국민은행이 총파업이라는 파국을 피하지 못한 것은 핵심 쟁점에서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8일 노조가 총파업 이유로 내세운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신입 행원에게 적용하는 페이밴드(성과에 따라 기본급 인상 제한) 제도 폐지 △임금피크제(임피제) 진입 시기를 산별노조 협의대로 1년 연장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텔러 직원(L0급)의 경력 인정 △점포장을 사실상 구조조정하는 '후선보임' 제도 폐지 등이다. 이 가운데 핵심은 페이밴드 제도폐지와 임피제 연장이다.

페이밴드는 진급을 못하면 호봉에 따라 올라가는 기본급에 상한을 두는 제도다. 국민은행에서는 '3년 근무=1호봉'인데 만약 진급 없이 30년을 다녔을 때 기존 호봉제대로라면 10호봉을 인정받아 그만큼 기본급이 자동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페이밴드 제도를 적용하면 10호봉을 모두 인정하지 않고 일부를 깎는다.

현재 국민은행은 2014년 11월 이전 입사자는 호봉제, 11월 입사자부터는 페이밴드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은행 측은 이 제도를 전 직원에게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후 노사 협의 과정에서 확대 적용은 철회했지만 일단 현재 제도는 유지해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업무 성과를 제대로 내지 않아도 오래 근무만 하면 오히려 성과가 뛰어난 직원보다 연봉을 더 받는 호봉제의 모순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허인 국민은행장은 페이밴드 제도가 "소홀한 업무 태도로 동료 직원의 근로 의욕까지 꺾는 일부 극소수 직원을 염두에 둔 최소한의 조치"라며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반면 박홍배 노조위원장은 "(제도를 적용받는) 구성원들이 심각한 차별이라고 느끼고 있다"며 "늦어도 1~2년 안에 폐지해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신한·우리·하나은행 등 다른 은행은 페이밴드 제도를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특히 하나은행은 이미 10년 넘게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적용 중이다. 직급별로 기본급 상한선을 두고, 하위 직급 직원이 아무리 호봉이 높아도 상위 직급의 기본급을 넘을 수 없게 한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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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은 차장급 이상, 신한은행은 차장·과장인 4급 직원 이하 직원에게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임피제도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상급 단체인 금융노조와 은행들의 협의체인 사용자협의회가 산별교섭으로 '임피제 적용 시기 1년 연장'에 합의한 만큼 현재 만 55세인 제도 대상자 나이를 일괄적으로 56세로 늦춰야 한다는 게 노조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사측은 부점장과 다른 직원들의 임피제 시작 시기가 다른 만큼 이것을 먼저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은행 측 주장대로라면 부점장은 1년, 팀장 이하는 6개월씩 늦춰지게 되는 만큼 노조 측은 '수용 불가' 주장을 굽히지 않는 상황이다.

국민은행과 달리 다른 은행들은 최근 임단협에서 임피제 시기 조정에 합의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만 55세에서 56세로 늘리기로 했고, 하나은행도 현재 비슷한 내용으로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사안인데도 국민은행만 협의에 진통을 겪는 배경에는 유독 나이가 많은 직원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임피제를 적용받는 직원을 보면 국민은행이 316명으로 우리(276명), 하나(15명) 등 다른 곳보다 월등히 많다. 앞으로 임피제에 들어가는 1963~1969년생도 무려 4676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민은행이 타성에 젖어 다른 은행과 달리 변화에 빨리 대응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노조 측 기대와 달리 이번 총파업 효과는 미지수다. 실제로 이날 서울 시내 주요 지역 국민은행 영업점에서는 당초 우려만큼 고객들이 큰 불편을 겪지는 않았다. 이날 거점 점포로 지정된 KB국민은행 마포역지점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파업 소식을 접한 고객도 많지만, 요즘은 비대면으로 거래하는 고객이 많아 방문객이 예상보다 적었다"고 말했다. 다른 지점도 비슷한 분위기다. 서울 퇴계로지점에서 만난 50대 B씨는 "혹시라도 문을 안 열었을까봐 걱정하면서 왔는데, 특별한 불편 없이 송금 업무를 처리했다"고 말했다. 퇴계로지점은 오전에 평소 운영하던 2층과 3층 중에서 3층만 개점했다가 연령대가 많은 고객들을 배려해 2층으로 인력을 나눠 배치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은행 입출금 거래와 조회에서 대면거래(은행 영업점 창구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 8.4%에 그쳤다. 입출금 거래 중 절반이 넘는 52.6%는 인터넷뱅킹, 30.6%는 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해 이뤄졌다. 조회 거래에서 인터넷뱅킹 비중은 86%에 달했다.

은행 오프라인 영업점의 존재 의미가 점차 사라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국민은행이 영업점 직원 중심으로 1만8000여 명에 달하는 비대한 조직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국민은행 노조 파업에는 그간 쌓여온 노조와 KB 경영진 사이의 앙금도 작용했다. 노조는 올해 초부터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강한 대립각을 세워오며 줄기차게 윤 회장 퇴진을 요구해왔다. 2017년 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윤 회장 연임 찬반투표에 회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

이후 은행 안팎의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을 놓고 노조가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하고 나섰고, 여기에 임단협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현재 노조와 윤 회장으로 대표되는 사측의 갈등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임단협 상황이 지지부진하자 노조는 윤 회장과 허 행장의 동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은행 노사는 이번 임단협뿐 아니라 향후 노동 추천 사외이사 등 문제에서도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태성 기자 / 김강래 기자 /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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