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심신미약의 딜레마

이대근 논설고문

지난해 3월 인천 초등생을 엽기적으로 살해한 10대 소녀는 공범에 비해 형량이 적었다. 18세 미만의 경우 형량을 낮춰주는 소년법 때문이다. 지난달 주차장 살인, PC방 살인을 한 범인은 각각 정신과 치료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지난달 거제시에서 폐지 줍던 여성을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는 “만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청소년, 정신병력자, 만취자의 행위에는 책임을 다 물을 수 없다는 게 현행 법체계의 배경이다. 사회적 미성숙, 유전적 결함, 알코올에 의한 뇌기능 장애가 죄지 당신은 죄가 아니라는 논리이다. 이른바 결정론이다.

결정론에 따르면, 어떤 행위는 그 이전의 행위에 의해 정해진 것이고, 그 이전 행위는 다시 그 이전 행위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이렇게 인과관계의 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모든 원인은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으로 수렴된다. 이 논리에 의하면 나의 나쁜 행동에 대한 책임은 내가 아니라 빅뱅이 져야 한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수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게다가 심신미약자의 범행 대상이 주로 여성·아이와 같은 약자들이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살인범에 감형의 혜택을 주면 안된다는 청원이 봇물을 이루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결정론은 ‘나’라는 주체를 소멸시킨다. 이건 곤란하다. 법 적용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질서는 결정론을 제한적으로 적용, ‘나’를 살려 놓는 절충을 한다. 사람을 자유의사가 있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은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서 자유의지가 ‘철학적 환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나쁜 짓을 안 할 수도 있는데 했다는 것이 자유의지의 전제다. 그런데 내가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은 나의 욕구, 믿음, 성격과 같이 미리 결정된 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것이 없다면 행위란 그냥 일어난 무엇이 되어야 한다. 그런 행위는 결코 ‘나의 행위’가 될 수 없다.

결정론이 옳다면, 선행하는 상황에 행위의 책임이 돌아간다. 결정론이 틀렸다면, 어떤 것에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은 없다. 세상에는 겉보기에 분명해도 따지고 들어가면 모호해지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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