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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 남친이랑 친해서”...12시간 동안 친구 끌고다니며 폭행한 10대들

김찬호 기자

‘전 남자친구와 친하게 지낸다’, ‘카카오톡 단체채팅방(단톡방)에서 욕을 했다’ 등의 이유로 학교 친구를 12시간 동안 끌고 다니며 폭행한 고등학생들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폭행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신고하면 인터넷에 올린다”고 협박하는 등 지난 6월 발생한 ‘관악산 집단폭행 사건’을 학습한 듯한 모습을 보여 우려가 나온다.

서울 금천경찰서는 공동폭행 혐의로 고교 2학년 여학생 7명을 수사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 조사와 피해자 측 진술을 종합하면 사건은 지난 1일 새벽에 발생했다. 이날 피해자 한모양(18)은 친구 5명과 함께 부모가 여행을 떠난 친구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새벽 2시쯤 함께 잠을 자던 친구 2명이 평소 알고 지내던 ㄱ군과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며 집을 나섰다가 가해 학생 무리와 시비가 붙었다. ‘쳐다보며 웃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이들의 시비는 엉뚱하게 ㄱ군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 온 사진 속 여자가 누구냐는 것으로 번졌다. 가해 학생에 있던 ㄱ군의 전 여자친구 이모양(18)의 추궁이 이어지자 결국 한양이 지목됐다.

가해 학생들은 한양을 불러내 “아는 언니들이 티 안나게 때리는 법을 알려줬다”며 머리를 집중적으로 때렸다. 또 쌍방폭행이 돼야 한다며 한양에게 자신들을 밀칠 것을 강요했다.

한양은 “가해 학생들끼리 ‘나도 때리게 빨리 좀 때려라’고 서로 재촉했다”며 “한 가해자는 ‘태권도에서 배운 것처럼 해볼게. 몇 대 맞았는지는 너가 세’라고 해서 숫자를 세면서 맞았다”고 진술했다.

또 이들은 인적 드문 골목길에 한양을 무릎 꿇리고 ㄱ군의 증명사진을 입에 물게 했다. 이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신고하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날이 밝자 이들은 한양을 노래방으로 끌고 갔다. 한양이 ㄱ군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확인하겠다며 휴대폰을 빼앗은 이들은 한양이 김모양(18), 손모양(18) 등과 함께 단톡방에서 자신들을 욕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들은 먼저 김양을 노래방으로 불러내 한양과 함께 폭행했다. 김양은 “가해자들이 폭행 과정을 사진 촬영하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는 말을 시킨 뒤 녹음했다”고 말했다.

비명소리를 듣고 수상하게 여긴 노래방 주인이 찾아오자 이들은 다른 노래방으로 피해자들을 끌고 갔다. 노래방 폐쇄회로(CC)TV를 마이크 덮개 등으로 가린 채 폭행은 이어졌다. 이들은 손양에게 전화해 “빨리 오지 않으면 너 때문에 친구가 더 맞는다”고 협박했다. 겁이 난 손양은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함께 노래방으로 갔지만 도착하자마자 폭행이 이어졌다.

뒤늦게 노래방 안으로 들어온 손양의 어머니가 제지하고서야 폭행이 끝났다. 폭행이 시작된 지 12시간 만이었다.

피해 학생들은 “경찰에 신고하면 ‘아는 오빠에게 너를 성폭행하라고 시키겠다’고 협박했다”며 “단톡방에서 욕을 한 것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피해학생 부모의 신고로 수사가 시작됐지만 경찰 수사와는 별개로 학교 및 교육당국의 미온적 대처가 비판을 받고 있다. 징계 이후에도 피해·가해학생들을 학교 안에서 명확히 분리해내지 못하고 있어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14일 열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결과 통지서

지난 14일 열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결과 통지서

지난 14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는 가해자 중 2명에 대해선 퇴학을, 1명은 전학 조치를 내렸다. 욕만 했다는 이유로 수사에 포함되지 않던 1명을 추가해 총 5명은 출석정지와 사회봉사 처분을 각각 받았다. 이에 피해학생 부모들은 “학폭위가 가해자들 징계 수위를 결정한 근거를 알려 달라”고 학교 측에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 15일 뒤에 학폭위 회의록을 공개해 주겠다”며 “이의가 있으면 재심 청구를 하라. 일단 재심 청구가 되면 학교는 가해자 징계를 유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부모는 “재심이 언제 열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가해학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게 할 수는 없다”고 반발했다. 한 피해자의 어머니는 “아이가 길을 가다 갑자기 구토를 하는 등 정신적 충격이 심해 개학한 지 10일이 넘도록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다”며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학교에 갔다가 가해 학생과 마주치는 등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학폭위 회의록을 정리하다 보면 15일 정도 걸리는데 그동안 교육청 안내로 피해자 보호 등의 조치를 하게 한다”면서도 “피해자 보호를 어느 정도로 할지 학교에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편, 가해 학생들은 30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폭행은 피해 학생들이 인터넷에 우리를 비방하는 헛소문을 퍼뜨려 시작됐다”며 “일방적인 폭행이 아닌 쌍방폭행이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일 새벽 집단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한 피해자 한모양(18)의 상처부위

지난 1일 새벽 집단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한 피해자 한모양(18)의 상처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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