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1년 넘게 ‘코끼리 사냥’을 쉬고 있다. 대규모 기업 인수합병(M&A)을 뜻하는 코끼리 사냥은 버핏의 투자 행보를 예측하는 단서이자 시장 과열 여부를 나타내는 지표로 통한다. 버핏조차 수익을 낼 만한 기업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고평가돼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730억달러 쥐고도…'코끼리 사냥' 멈춘 버핏
◆매달 15억달러씩 쌓이는 현금

AP통신은 버핏이 이끄는 투자회사 벅셔해서웨이의 현금 보유량이 지난 8월 말 현재 730억달러(약 82조원)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고 12일 보도했다. 벅셔해서웨이가 산하 90여개의 자회사를 통해 매달 15억달러의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대규모 투자에 나서지 않아 현금 보유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버핏이 가장 최근 단행한 ‘코끼리 사냥’은 금속부품업체 프리시전 캐스트파트 인수건이다. 투자 금액은 315억달러로 벅셔해서웨이가 사들인 기업 중 가장 비쌌다. 버핏은 지난해 8월 인수를 발표한 뒤 올해 1월 마무리지었다. 이후엔 투자에 나서지 않은 채 ‘개점 휴업’ 상태다.

버핏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동성이 부족해진 골드만삭스나 제너럴일렉트릭(GE) 등에 각각 수십억달러를 빌려준 뒤 비싼 이자나 우선주를 받는 식으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그때와 달리 현재 제로(0)에 가까운 금리 환경을 고려하면 쌓아둔 현금에서 얻는 수익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물론 버핏이 현금을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버핏은 소송 등 유사시에 대비해 최소 200억달러 이상의 현금을 항상 보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실제 투자에 동원할 수 있는 금액은 530억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주목되는 것은 버핏이 주주들에게 적극 투자에 나서도록 종용을 받거나 배당을 하라는 식의 압력은 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버핏은 1965년 벅셔해서웨이를 설립한 뒤 차등의결권 주식을 통해 확고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배당은 하지 않았다. 벅셔해서웨이 주가는 주당 21만5900달러(11일 종가 기준)로 올 들어 9% 상승했다. S&P500지수 상승률(4.5%)의 두 배에 달한다.

◆“특출한 기업을 찾고 있을 것”

버핏은 평소 “회사에 이익이 되는 적당한 규모의 인수 대상 기업을 항상 물색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버핏 전문가로 《영원한 가치, 워런 버핏 스토리》를 쓴 앤디 킬패트릭도 “버핏이 적절한 가격을 주고 인수할 만한 특출한 기업을 찾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투자자들도 버핏의 투자 행보를 예측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버핏이 최근 수년간 관심을 가져온 전력 등 유틸리티부문 투자를 확대하거나 세계 최대 사탕제조업체 마스캔디를 인수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최대 변수는 그의 투자철학이다. 버핏은 자신이 평가하는 회사 가치보다 비싼 가격에는 절대 인수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성사된 세계 M&A 규모는 2조370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했다. 이 중 미국은 1조달러로 31% 급감했다.

미 규제당국이 시장 독점을 이유로 제동을 걸기도 했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부진한 실적에 비해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고평가돼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버핏은 투자를 야구에 비유하곤 했다. “적절한 투자 대상을 찾는 것은 타자가 좋은 공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투자는 스트라이크 게임이 아니다”며 “공이 올 때마다 매번 방망이를 휘두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버핏이 기업 인수에 나서면 ‘단짝’인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털과 팀을 이룰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두 회사는 대형 식품업체 크래프트푸드와 하인즈 인수전에 함께 참여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