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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본의 이해

버블경제기

1985년의 엔고에 의해 야기된 엔고불황에 대한 대책으로 1986년부터 저금리정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단 인하된 금리를 인상시킬 계기를 잡지 못한 채 연 2.5%라는 기록적인 저금리가 1989년까지 계속되었다. 금융당국으로서도 물가가 거의 완전히 안정된 채 호경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금리를 인상시킬 계기를 잡기 어려웠던 것이다. 시중의 금리도 이에 따라 낮게 유지되어, 기업의 본격적인 설비투자 붐을 만들었으나, 또한 그에 따른 몇 가지 문제를 발생시킨 결과가 되었다. 저금리를 배경으로 대량의 자금이 주식을 비롯한 금융자산이나 부동산에 투입되면서 주가(株價)와 지가(地價)가 상승하게 된 것이다.

〈그림 3〉 동증주가지수 추이

〈그림 3〉 동증주가지수 추이 자료 : 東京證券取引所, 《東證統計月報》.

동증(東證)주가지수는 1986년 봄부터 88년까지 급상승을 계속하였다(그림 3). 이러한 가격상승은 기업이나 개인을 주식시장에 동원케 하여, 평균매매고가 1일 10억 주를 넘을 때가 많았다. 부동산, 특히 땅값의 상승도 놀랄 만한 것이었다. 특히 가격상승이 두드러진 것은 1986, 87년부터로, 3대 도시의 상업지를 선두로 점차 파급되어갔다. 지가는 1985년에 비해 90년은 전국평균 5배, 도쿄, 오사카, 나고야 3대 지역의 상업지는 약 3배, 주택지는 약 11배의 상승을 기록하였다. 소위 버블경기란 이와 같은 사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1989년 3월의 재할인율 인상 후에도, 금융은 급격하게는 긴축되지 않고, 모든 가격상승은 1989년 말까지 계속되었다. 1990년부터 주가나 땅값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고, 91년 여름부터는 경기침체에 접어들었다. 1985년 9월 플라자합의에 의해 시작된 버블경기는 이렇게 해서 막을 내리게 되고, 두 번에 걸친 석유위기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 후반부터 80년대 전반까지는 재정적자의 누적, 노동력 과잉 등의 문제가 일본 경제를 늘 압박해왔으나, 그 부담이 버블경기에 의해 해소되었던 것이다. 이 무렵 일본의 국제적 역할은 한층 커져 무역액에 있어서도, 대외순자산의 규모에 있어서도 세계최고의 지위에 있었다.

출처

제공처 정보

일본의 실체를 알리기 위한 영남 지역 일본학 연구자들이 모여 저술한 책. 어문학은 물론 정치, 역사, 사회, 문화, 경제, 인류학, 종교학, 법학 등 일본학에 대한 전반적인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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