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레오가 찾은 백년의 맛, 종가는 맛있다] 소박하지만 묵직한 계절밥상
입력 : 2018-01-15 00:00
수정 : 2018-03-02 14:14

강레오가 찾은 백년의 맛, 종가는 맛있다(2)반남 박씨 서계파 종가

쌉싸름한 가시오가피 첫순에 노릇하게 구워진 삼겹살 한점 입안 가득 퍼지는 ‘봄내음’

시원한 열무 품은 새콤 초계탕 회 치고 탕 끓이는 민어요리 무더위 날리는 영양 보양식

모락모락 김 나는 두부 노릇한 녹두전에 술 한모금 가을철 입맛 돋우는 별미

잘 익은 김장김치로 빚은 만두 술술 넘어가는 되비지찌개 꽁꽁 언 속 달래기에 ‘제격’
 


반질반질 윤기 나는 툇마루에 앉아, 400년 된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한겨울 맹추위를 뚫고 나온 따뜻한 햇볕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실학자 서계 박세당 선생의 고택이다. 아침저녁으로 이 툇마루를 쓸고 닦으며 고택을 지키고 있는 이는 김인순씨(63). 서계 선생의 후손인 반남 박씨 서계파 12대 종부다. 후덕하고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난 종부를 만나러 간 날은 유독 추웠다. 두툼한 겉옷을 여미고 또 여미며 들어서는 강레오 셰프를 종부는 따뜻한 유자차로 맞이했다.

 

김인순 종부(오른쪽)와 강레오 셰프.


◆봄에는 가시오가피순, 여름 복놀이는 민어

“아이고 이렇게 추운 날 뭐 특별한 먹을거리가 있다고 여기까지 오셨나 그래?”

얼른 들어와 몸 녹이라며 강 셰프의 두손을 잡아끌면서 종부가 인사를 건넸다.

“서계파 종가 종부님 음식 솜씨가 좋다고 서울까지 소문이 나서요. 음식 이야기 들으러 찾아왔습니다.”

역시나 앉자마자 강 셰프가 음식 이야기를 꺼낸다.

“먹는 게 다 똑같지 뭐. 우리는 옛날부터 이 근처에서 직접 농사지은 것들로 먹고살았어요. 처음 시집 와서 3000평(약 9900㎡)이나 되는 농사를 지었으니까. 철철이 들에서 나는 것들로 밥상을 채웠죠.”

봄에는 산과 들에서 올라오는 갖가지 나물과 순으로 반찬을 했다. 특히 4월 말부터 5월 초에는 두릅이며 가시오가피순 같은 순나물을 따다 데쳐서 먹고 남으면 장아찌로도 담갔다.

“오가피 첫순은 삼겹살을 구워서 쌈 싸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늦봄 짧은 한때만 먹을 수 있는데, 부드러우면서 쌉싸름한 맛이 최고죠.”

여름에는 밭에 씨 뿌려 키운 열무를 거둬다 열무김치를 담갔다. 그 김치를 넣어서 새콤한 초계탕도 해먹었다. 한여름에는 민어로 복놀이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민어 한마리 잡으면 회로 치고 탕도 끓이고 내장은 다져서 어만두로 만들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니 먹을거리도 흔했다. 특히 콩이 많아서 두부를, 녹두 수확하는 날에는 녹두전을, 제사 때 쓰고 남은 찹쌀로 인절미를 해 먹었다. 흔히 백태로 콩가루를 내서 고물을 입히는데 종부는 파란콩과 청태로 고물을 만들어 사용했다. 파르스름한 색이 정말 예쁘단다. 제주로 사용할 술도 꼬박꼬박 담갔다.

“나는 술 익는 소리가 정말 좋아요. 처음에는 ‘뽁뽁’ 하는 소리가 하나둘 나다가 익을수록 ‘뽁뽁뽁뽁’ 하며 더 잦고 커져 나중에는 시끄러울 정도예요. 그 소리가 하도 좋아서 술 담그는 것이 힘든지도 몰랐는데 이제는 집에 술 마시는 사람도 없고 해서 잘 안 담가요.”

 


◆만두는 속 먹는 만두고, 송편은 떡 먹는 송편

요즘 같은 겨울에는 곳간에 채워둔 재료로 음식을 만들었다. 잘 익은 김장김치로 만두를 빚고 저장해둔 콩을 꺼내다 두부며 비지찌개도 많이 했다.

“어디보자. 기왕 오셨으니 우리집 겨울메뉴인 만두와 되비지찌개를 좀 해드릴까요?”

주방으로 들어간 종부는 잰 몸짓으로 배추며 양파·콩비지 등 재료를 갖고 나온다. 종부를 돕겠다며 소매까지 걷어붙인 강 셰프도 주방으로 들어선다.

“되비지찌개는 돼지등뼈 육수에 비지를 넣고 끓여요. 원래 잘 익은 김치를 넣어서 만드는데 요즘처럼 배추에 단맛이 돌 때는 김치 대신 배추를 넣지요.”

끓는 육수에 비지를 넣고 새우젓으로 간한 배추를 조금씩 넣어서 숨을 죽여주니 뚝딱, 되비지찌개가 완성된다. 되비지찌개가 원래 이렇게 쉬운 음식이었던가, 순간 고개가 갸웃거려질 정도였다.

다음은 만두다. 간 돼지고기에 역시 김치 대신 배추를 넣고 소를 만들었다. 종부가 직접 반죽한 만두피로 만두를 빚는 강 셰프를 지켜보던 종부가 한마디했다.

“옛말에 ‘만두는 속 먹는 만두고 송편은 떡 먹는 송편’이라고 했어요. 소를 많이 넣어야 만두는 맛있어요.”

두 전문가가 손을 합치니 만두 수십개가 금세 완성됐다. ‘종부와 셰프의 만남은 이런 것이구나’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였다.

되비지찌개와 만두에 지난가을 종부가 담근 김장김치까지 올리니 소박하지만 묵직한 겨울밥상이 완성됐다. 한입 떠 넣으니 추위로 꽁꽁 얼었던 몸 저 안에서부터 따스한 기운이 스르르 번진다. 사람들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종가의 음식이었다.

의정부=이상희 기자, 사진=김덕영 기자 montes@nongmin.com
 



● 김인순 종부의 되비지찌개와 배추만두

되비지찌개는 돼지등뼈와 콩비지·배추 그리고 새우젓만 있으면 된다. 돼지뼈는 잘 씻은 뒤 삶아 육수를 만든다. 이때 초벌로 삶은 물은 버려야 냄새가 안 난다. 배추는 채 썬 뒤 새우젓으로 간해서 숨을 죽인다. 비지는 생콩을 거칠게 갈아 만든다. 육수가 끓어오르면 비지와 채 썬 배추를 넣으면 된다. 조선간장과 고춧가루·간마늘·설탕·물·깨·들기름·대파를 섞어 만든 양념장을 곁들인다.

만두는 소금에 절인 배추와 숙주·돼지고기·두부에 양파·마늘·소금·달걀·후추·참기름·깨로 간해서 소를 만든 뒤 빚으면 된다. 배추 덕분에 만두 맛이 “고급스러워졌다”는 것이 강례오 셰프의 품평이었다.

 


 

도전! 강레오 셰프의 종가음식‘새콤달콤’ 열무김치초계탕

 


토종닭을 잘 삶은 뒤 살만 발라 잘게 찢어두고 국물은 면보에 맑게 걸러낸다. 새콤하게 익은 열무김치와 육수를 섞고 식초·겨자·설탕으로 간한 뒤 잘 삶은 소면과 찢어둔 닭고기를 올리면 반남 박씨 서계파종가표 열무김치초계탕 완성이다. 닭육수는 끓는 동안 거품이나 불순물 등을 다 걷어내야 맑고 구수한 육수를 얻을 수 있다. 육수와 열무김치 비율은 1대 1이 적당했다는 것이 강레오 셰프의 설명이다.

 


 

반남 박씨 서계파 종가

‘농사기술 집필’ 박세당 선생의 집안

 

 

조선 후기 실학자인 서계 박세당 선생의 집안이다. 서계 선생은 조선시대 현종 1년(1660년)에 과거급제해 벼슬에 올랐지만 40세에 관직을 버리고 이곳 수락산 아래로 들어와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농사기술을 집대성한 <색경>도 이곳에서 집필했다. 서계 선생이 기거하던 사랑채(사진)는 350년 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지금은 12대 종손 박용우씨와 종부 김인순씨가 13대 차종손 내외와 함께 고택을 지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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