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꾹꾹 눌러 쓴, 외과의사 이국종의 ‘수술실 난중일기’

김유진 기자

골든아워 1, 2

이국종 지음

흐름출판440쪽·380쪽 | 각 권 1만5800원

[화제의 책]꾹꾹 눌러 쓴, 외과의사 이국종의 ‘수술실 난중일기’

국내 서점가에서 유명인의 자서전은 그리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다. 최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나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의 회고록이 주목을 받았던 것도 어디까지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따라서 이국종 아주대 교수의 자전적 기록을 담은 책이 예약 판매 단계에서부터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물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골든아워 1, 2>는 이국종이 수술실 등에서 눌러 쓴 메모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권은 2002~2013년, 2권은 2013~2018년 기간 동안 이국종과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룬다.

아무래도 그의 이름 석 자와 중증외상센터의 필요성을 세상에 알린 석해균 선장 치료과정을 기록한 부분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이국종 자신도 그 일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떨어지는 칼날은 잡지 않는 법이다. 석 선장은 무겁게 떨어지는 칼날이었다.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나쁠 때 의사들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그가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했고, 최악의 경우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은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절차’를 내세우는 정부를 대신해, 그는 에어 앰뷸런스를 찾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하지만 의료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늘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 같은 이국종도 때로는 흔들렸다. “나는 한낱 지방 병원의 외상외과 의사였다. 사는 것의 지리멸렬함이 지겹고 지난했다. 환자들이 쏟는 핏물이 나를 완전히 삼켜버리기를 바랐다.” 의식불명으로 누워 있는 석 선장을 보면서는 이렇게 읊조린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생계유지에 어려움이 없는데 나는 자꾸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나로 인해 기인되는 것인지 밖으로부터 벌어지는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행히 환자는 나의 갈등을 알지 못했으나 이제 그와 나에게 생사의 조건은 같았다.”

위에서 인용한 문장들에서 혹시 한 소설가가 떠오르지는 않는가. 저자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는 서문에서 “늘 곁에 두고 살아온 소설가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를 등뼈 삼아” 글을 썼다고 밝힌다.

책은 흡사 ‘수술실의 난중일기’ 같다. 그의 기록에서는 척박한 한국 의료 현장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 헬기를 타고 사고 현장을 찾았던 그는 ‘골든아워’ 내에 구조가 이뤄지지 못하다가 배가 다 가라앉고 난 후에야 수습 소동이 빚어지는 것을 보고 말한다. “속에서 욕지기가 솟아올랐다. 발밑이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이게 한국 사회 기본 체력이지….” 이 밖에도 가정형편상 의대를 다니던 중 해군에 입대해 갑판수병으로 복무한 사연, 외상외과 전문의를 택한 이후의 수난, 중증외상 환자들의 고통,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 등이 속도감 있게 그려진다.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국종은 이미 ‘영웅’ 내지는 ‘위인’이 되었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책을 위한 최소한의 홍보조차 거절하고 있다는 그도 알고 있는 걸까. “어떤 상황에서든 제 그릇에 따라 견디기도 하고 폐기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견디느냐 견디지 못하느냐는 제 역량에 달렸다. 설거지를 마치고 포개어 놓은 그릇들을 바라보며 나는 한참을 생각했다. 내 그릇의 크기에 비춰볼 때 너무 많이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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