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당 투자한도‧자기자본 대출 제한…업계‧당국 '동상이몽'
[미디어펜=이원우 기자]금융당국이 업계의 기대보다 훨씬 강력한 P2P대출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투자한도 제한, 자기자본 대출규제 등 이번 조치로 인해 P2P대출시장의 성숙이 불가능해졌다는 업계 불만이 터져 나온다. 결국 P2P금융협회는 가이드라인 '수정'을 공식 요청했지만 당국은 요지부동이라 갈등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P2P금융협회(협회장 이승행)는 금융위원회에 한 편의 공문을 공식 발송했다. 핵심 골자는 앞선 2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P2P 대출 가이드라인'에 대한 수정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 금융당국이 업계의 기대보다 훨씬 강력한 P2P대출 가이드라인을 내놓아 충격이 가중되고 있다. 투자한도 제한, 자기자본 대출규제 등 이번 조치로 인해 P2P대출시장의 성숙이 불가능해졌다는 업계 불만이 터져 나온다. /한국P2P금융협회

 
지난 2일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과 함께 P2P대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일종의 크라우드펀딩을 의미하는 P2P대출은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과 개인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대출 거래를 진행하는 서비스다. 은행 대출을 받기 힘든 중‧저신용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작년부터 P2P대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번에 발표된 가이드라인 역시 금융당국이 사상 최초로 내놓은 것이다. '첫 규제'인 셈인데 업계의 기대를 완전히 빗나가는 강력한 내용이 다수 담겨 P2P대출업체들은 '패닉'에 빠졌다. 

이번 규제 가이드라인에는 일반 개인이 P2P대출에 참여할 때 업체당 1000만원까지만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P2P대출업체와 연계 금융기관이 직접 투자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개인투자자 보호를 최우선시한 가이드라인"이라고 설명했다.

업체들은 1000만원이라는 기준이 터무니없이 낮다며 당국을 성토하고 있다. 실제로 P2P협회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1일 기준 P2P업체별 1000만원 이상 투자자 비율은 전체 투자금액의 60% 이상이다. 

일부 부동산 P2P대출 업체의 경우에는 1000만원 이상 투자자 비율이 전체 금액의 80%를 넘는 사례도 있다. 바꿔 말하면 이번 가이드라인은 업계의 파이를 현재의 20%~40% 수준으로 낮추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게 업계 불만의 골자다.

P2P금융협회 측 관계자는 "마치 자동차가 처음 발명됐을 때 시속 10킬로미터의 속도 제한을 한 것과 똑같은 처사"라면서 "당국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규제 기준이 지나치게 낮다"고 이번 가이드라인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금융선진국인 영국의 경우 투자한도에 제한이 아예 없다"면서 "미국의 경우에도 소득이나 순자산이 7만 달러 이상인 투자자는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P2P투자의 경우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기 때문에 투자액수 제한이 없을 경우 리스크가 빠르게 불어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일부 투자자들의 경우 한 업체에 4억원~8억원 사이의 거액을 투자한 경우가 있어 당국이 주시하고 있는 상태다.

또한 금융위는 이번 규제의 초점이 '업체당' 1000만원 이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에 대해 "투자 금액을 낮추려는 의도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 "업체별 분산투자는 규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다양한 P2P업체에 투자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게 초기시장 성숙에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한 번에 거액의 투자를 원하는 고객은 법인‧전문투자자로 등록해 한도 없이 투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투자한도 이외에도 업계의 불만사항은 남아 있어 갈등은 길어질 조짐을 보인다. 금융당국은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P2P업체가 투자자로 참여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자기자본을 통한 대출을 제한했다. 이는 자기자본 대출방식으로 영업해 온 일부 업체들의 '선(先)대출' 방식과 완벽하게 배치되는 것이라 역시 불만이 제기된다. 

투자한도의 경우 그나마 1000만원이라는 기준을 조정할 여지라도 남아있지만, 자기자본 대출제한의 경우는 찬반양론이 워낙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갈등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P2P협회 측은 협회 스스로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절충'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국은 이미 발표한 가이드라인을 강행할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으로) 금융당국과 P2P대출업체 간의 이견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금융위원장 부재로 컨트롤타워마저 약해진 상황이라 향후 논의에 많은 제한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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