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벵골 고양이

박래용 논설위원

2014년 환경부 국정감사장에는 ‘괴물 쥐’로 불리는 뉴트리아가 등장했다. 한 의원이 습지 생태계 파괴 실태를 지적하겠다며 들고나온 것이다. 하지만 뉴트리아는 국감 파행으로 증언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12시간을 기다리다 돌아갔다. 2010년 한 의원은 멸종위기에 처한 구렁이가 밀렵·밀거래되고 있는 현실을 알리겠다며 구렁이를 유리상자에 담아왔다. 환경부 장관은 “국회에 뱀을 갖고 오시니 걱정입니다만…”이라며 답변을 시작했다. 같은 해 서울시 국감에선 한 의원이 서울시의 낙지머리 중금속 오염 발표를 따지겠다며 살아 있는 낙지를 가져왔다. 이 의원이 서울시를 질타하는 중 낙지가 통에서 기어나와 책상 아래로 떨어지는 바람에 국감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올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국감장에서 인공지능 로봇을 갖고 온 한 의원은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도 로봇이 반응하지 않자 “내가 사투리를 써서 못 알아듣는 것 같다”며 머쓱해했다.

매년 국감 때마다 국회의원들은 이색 소품들을 들고나온다. 가스통, 죽창, 생리대, 치약, 소방복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렇게 해야 언론의 주목을 받고, 포털 검색어 상위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 노출을 의정활동의 성적표로 생각하는 의원을 모시는 보좌진은 남보다 더 튀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고 한다. 여의도에선 시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뚫어주는 진짜 국감 스타는 사라지고 ‘스샷(스크린 샷·순간포착)만 남았다’는 자조가 나온다.

10일 정무위 국감장에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벵골 고양이’를 데리고 나왔다. 그는 지난달 대전 동물원에서 탈출한 뒤 사살된 퓨마와 닮았다며 벵골 고양이를 앞에 놓고 정부의 과잉대응을 지적했다. 김 의원 측은 고양이를 어렵사리 공수해 며칠간 닭가슴살과 참치를 먹이며 준비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사살당한 동물이 불쌍하다는 취지를 전했지만 정작 고양이를 철제 우리에 넣어 국감장에 데려온 것 자체가 동물 학대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누리꾼들은 “동물학대는 이런 거다’라는 걸 보여줬다”고 했다. 때로는 소품을 활용한 질의가 전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눈길 끌기용이라면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국감은 쇼하는 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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