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소유주' 심안의 형 후손들 강행
▲ 세종대왕의 딸 정안옹주(貞安翁主)와 사위 심안의(沈安義)의 분묘 2기가 남양주에서 포천시 회현면 명덕리 한 야산으로 합장 이장됐다. 심안의 직계 자손들은 동의 없이 이장이 돼 버린 탓에 두 달 가까이 분묘의 행방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사진제공=심안인 17대 후손
550년 넘게 남양주시 오남읍에 있던 세종대왕의 딸 정안옹주(이정안·貞安翁主)와 사위 심안의(부마·沈安義)의 분묘 2기가 건설업체와 땅주인의 개발논리에 밀려 포천으로 이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일보 8월24일자 1면>

포천은 심씨 종중과는 연고가 전혀 없다.

두 달 가까이 사라진 분묘의 행방을 쫓던 청송 심씨 종중은 분묘를 개장한 건설업체와 남양주시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24일 청송 심씨 청성위파종회와 남양주시 등에 따르면 지난 6월30일 새벽 5시쯤 오남읍 양지리의 한 야산에 있던 정안옹주와 심안의 분묘 2기가 개장돼 당일 포천시 회현면 명덕리의 한 야산에 합장 이장됐다.

개장 당시 심안의 분묘에서 나온 유골 2점과 수저, 젓가락, 철제 장식 등 부장품 20여점도 함께 묻혔다. 심안의 분묘 사방에 있던 석물(문인석) 4기도 세워졌다.

정안옹주와 심안의 분묘 2기의 이장은 심안의의 직계 자손들과 협의 없이 진행돼 종중이 발칵 뒤집혔으며, 두 달 가까이 행방을 쫓았다.

분묘 개장은 인천의 한 건설업체와 분묘 주변 땅 소유주인 심안의 형 안인(安仁)의 후손들이 개발에 목적을 두면서 추진됐다. 땅 소유주 후손 2명은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

건설업체 등은 분묘가 있던 1만2492㎡(3779평) 규모의 임야를 개발해 타운하우스 등을 짓겠다는 구상이다.

심안의 17대손인 종중 총무와 땅 소유주 2명은 이번 일 이전에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로, 34촌 지간이다.

종중 총무와 땅 소유주는 분묘 2기의 이전을 두고 몇 차례 협의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땅 소유주들은 협의가 지연되자 건설업체에 위임장을 써주고 개장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종중은 이 과정에서 남양주시 오남읍사무소의 개장신고증명서 발급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연고가 있는 분묘의 직계손 여부 확인을 게을리 했다는 것이다.

총무는 "개장 강행 전인 6월13일 오남읍을 찾아 개장 강행 움직임이 있다고 항의했을 때 직원이 분명하게 분묘 2기의 신청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며 "내가 직계손이라 밝혔을 때 공무원이 신청증명을 내준 것을 다시 적극 검토했더라면 건설업체가 분묘를 파헤치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는 막았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안옹주의 분묘 사진이 없고, 심안의 후손이 아닌 형 심안인의 족보가 첨부된 점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의 '분묘개장에 따른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순위 연고자와 협의를 권장 할 수 있다'는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종중 총무는 "개장을 강행한 건설업체 등과 직계손 확인을 게을리 한 남양주시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며 "매년 음력 3월23일, 9월23일 시제를 지내왔으나 지금은 조상을 뵐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오남읍 관계자는 "복지부의 지침을 보더라도 분묘개장 신청은 자손이면 할 수 있다"며 "총무에게 분묘 2기의 개장신청증명을 내줬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땅 소유주는 "어찌됐든 종중과 협의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장을 해 자손으로 마음이 무겁다"며 "하지만 강행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있다. 미국에 살고, 고령인 어머니를 대신해 재산권을 행사한 것이다"고 항변했다.

이어 "분묘가 수년 동안 방치되다시피 했다. 주변이 모두 개발되면서 고립되는 등 주변 환경도 너무 좋지 않아 포천으로 이장했다"며 "둘레석, 조경석 등 큰돈을 들여 성심성의껏 예와 의식을 갖춰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안옹주와 심안의 분묘가 있던 오남읍 양지리 인근에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경기관찰사를 지낸 심선(沈璿) 등 심씨 묘역 단지를 이루고 있다.

정안옹주(1438~1461)는 세종대왕의 다섯째 부인 숙빈 이씨(淑嬪 李氏)의 딸이다. 사위 심안의(1438~1476)와 1453년 부부의 연을 맺고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장학인·정재석 기자 fugoo@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