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이 들려주는 숨겨진 이야기

정원식 기자 2016. 10. 5.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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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부부조각가 김서경·김운성이 새긴 12가지 상징을 아시나요

서울 중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소녀상의 발은 땅에 닿지 않고 있다. 발뒤꿈치가 살짝 들려 있기 때문이다.

깊은 아픔의 세월 속을 떠돌며 편히 쉬지 못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삶을 땅에 닿지 않는 발로 표현한 것이다.

부부 조각가인 김서경(51)·김운성(52)씨가 2011년 제작해 설치한 이 소녀상에는 이외에도 전쟁의 상처와 할머니들의 아픔을 조각가의 창의적 예술정신, 예민한 감각으로 형상화한 상징들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소녀상의 바닥에는 비스듬하게 그림자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그림자를 낳는 소녀상의 얼굴은 분명 소녀이지만, 그 그림자는 할머니의 형상이다. 소녀들이 할머니가 되기까지 오랜 세월 겪은 아픔과 상흔을 할머니 그림자로 드러낸 것이다.

그림자의 심장 부분에 새겨진 나비는 ‘환생’을 의미한다. 사무친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이 더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고백 이후 238명이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으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별세하면서 지금은 40명만 남았다. 소녀상의 오른편에 있는 빈 의자는 그동안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의 빈자리를 뜻한다. 빈 의자에는 또 누구나 그 자리에 앉아서 위안부 할머니의 눈으로 일본대사관을 바라보길 바라는 작가들의 기대가 서려 있기도 하다. 역사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소녀상은 당초 제작 초기에는 손을 다소곳이 포갠 모습이었다. 할머니들이 일본군의 꼬임에 넘어가 전쟁터로 끌려간 ‘순진한 소녀들’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제작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간섭이 이어지자 최종 결과물은 지금처럼 주먹을 꼭 쥔 형태로 변했다. 할머니들의 증언과 더불어 여성과 아이들이 다시는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겪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실현해야 한다는 다짐이 그 주먹 속에 담긴 것이다.

평화의소녀상 제작은 2011년 김운성 작가가 할머니들을 찾아가 “미술을 하는 사람인데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하자,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가 2011년 수요시위 1000회를 맞아 비석을 설계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작됐다. 부부 조각가는 처음에는 할머니 형상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들이 끌려갈 당시 대부분 13~18세의 소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를 바탕으로 삼아 한복을 입은 소녀 형상으로 빚어졌다.

또 제작 당시 소녀의 얼굴 표정은 우는 모습과 화내는 모습을 오갔다. 결국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화가 나지만 화난 표정이 아닌, 어리고 여린 소녀이지만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 지금 소녀상의 얼굴이다.

소녀상 왼쪽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새는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앞서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 그리고 지금도 투쟁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이어준다는 의미이다. 새는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영매이자 자유, 해방,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소녀상의 머리칼은 원래 고운 댕기머리였으나 거칠게 잘린 머리로 바뀌었다. 고운 머리칼은 물론 가족과 고향과의 인연도 그 머리칼처럼 무참하게 잘려나갔음을 상징한다. 바닥의 그림자 옆 ‘평화비’ 글씨는 길원옥 할머니가 손수 쓴 것이다.

김서경·김운성 작가 부부는 최근 소녀상 제작과정과 사연을 담은 <빈 의자에 새긴 약속>을 출간하기도 했다. 김운성 작가는 책을 통해 “(지난해 한·일 위안부 협정에 대해) 정부는 잘했다고 자평하지만 국민들은 10억엔에 피해자 할머니들과 국민의 자존심을 팔아먹었다고 생각한다. 작가로서 느끼는 저의 생각도 마찬가지”라며 “불행하게도 우리 정부는 전쟁범죄 가해자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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