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인간인가”

기술에 담긴 철학, '블레이드 러너 2049'

지금으로 부터 30여년 후, 인간은 복제인간을 만들어 노동원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하늘에는 자동차가 날아오르고,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으로 서비스되는 홀로그램 여자친구와 대화를 하고 사랑을 나눈다. 새로운 방식, 새로운 삶이 열린다.

오늘(12일) 개봉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는 햇빛 하나 들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날씨와 그에 걸맞는 암울한 미래 사회상을 그려냈다.

끝도 없이 지루할만큼 펼쳐지는 오염되고 더러운 디스토피아를 그린 걸작, '블레이드 러너'가 35년만에 다시 관객을 찾았다.

끝도 없이 지루할만큼 펼쳐지는 오염되고 더러운 디스토피아를 그린 걸작, ‘블레이드 러너’가 35년만에 다시 관객을 찾았다. ⓒ 소니 픽쳐스(블레이드 러너 2049)

100년 전 상상했던 2019년, 그리고 다시 2049년의 미래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세계적인 SF소설가 필립 K. 딕(Philip K. Dick, 1928~1982년)의 1968년 소설을 영상으로 재창조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년작)의 속편이다. 35년 만에 다시 태어난 이 영화는 최근 기술을 상당부분 영화에 반영해낸다. 이에 홀로그램, 인공지능, 유전자 복제인간 등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상상할 수 있는 과학기술들이 대거 등장한다.

기억을 조작하는 기술이나 조작된 기억을 심는 방식, 인공 자궁을 통해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드는 기술 등 상상하기 어려운 눈부신 기술이 발달한 미래 사회지만 빈곤한 계층의 사람들은 기술의 혜택은 받지 못한다. 그들은 여전히 냄비에 물을 끓여 음식물을 섭취하고 낡은 옷을 수선해 입는다. 커다란 빌딩 사이로는 주적주적 방사능에 오염된 비가 내리지만 사람들은 싸구려 합섬섬유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비닐 우산을 쓰며 비를 피한다.

미래사회에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하류계층의 사람들은 기술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지금과 별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지낸다.  ⓒ 소니 픽쳐스(블레이드 러너 2049)

미래사회에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하류계층의 사람들은 기술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 ⓒ 소니 픽쳐스(블레이드 러너 2049)

기술이 발전하며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되는 의식주 생활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0년 전 소설로 상상해낸 결과물이라고 해도 이러한 선택을 한 것은 다소 의외이다.

지난 1982년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 배경은 2019년 미국 LA. 이번 영화는 그로 부터 30년이 지난 2049년의 미국 LA가 배경이다. 전편이 그러했듯이 이번 영화에서도 어둡고 암울한 미래상이 묵묵히 펼쳐진다. 지루하도록 답답하게 이어지는 도시 전체의 공기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지르며 마치 ‘진격의 거인’과 같이 다가오는 홀로그램 광고 영상들이 그렇다.

영화의 백미는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를 처리해야 하는 경찰 K(라이언 고슬링 분)가 전편에서 같은 임무를 가진 블레이드 러너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를 찾아 나서면서 펼쳐진다. 동일한 DNA를 가진 소년과 소녀를 찾아내야 하는 과정에서 경찰 K는 릭 데커드의 비밀을 알게 되고 갈등하다 끝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해낸다.

영화 속 미래는 생체인식기술이 대중화된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나 컴퓨터 인증 비밀번호를 누를 때에도 홍체와 정맥 인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 소니 픽쳐스(블레이드 러너 2049)

영화 속 미래는 생체인식기술이 대중화된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나 컴퓨터 인증 비밀번호를 누를 때에 손바닥 정맥 인식과 홍체인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 소니 픽쳐스(블레이드 러너 2049)

끊임없이 정복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사회

100여 년 전 필립 딕의 상상력은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이다. 그는 미래에 다가올 기후 변화와 복제인간 로봇과의 갈등, 유전자 공학을 통한 생명 창조, 복제인간을 통해 만드는 새로운 사회 신분제 등 인간의 이기심과 윤리관에 경종을 울렸다.

영화에서는 각종 광고판들이 난립하고 복제인간들을 이용해 성적 욕구를 해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암울한 모습이 주를 이룬다. ⓒ 소니 픽쳐스(블레이드 러너 2049)

영화에서는 각종 광고판들이 난립하고 복제인간들을 이용해 성적 욕구를 해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암울한 모습이 주를 이룬다. ⓒ 소니 픽쳐스(블레이드 러너 2049)

인간은 새로운 노예를 찾아 복제인간 리플리컨트를 창조하고 인간의 지능보다 더 똑똑해지는 리플리컨트를 제거하기 위해 블레이드 러너를 고용한다. 블레이드 러너도 인간이 아닌 인간의 명령에 복종만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또 다른 복제인간이다. 복제인간이기에 이름도 주어지지 않는 K는 홀로그램으로 만날 수 있는 연인 조이를 통해 ‘조’라는 이름을 선물 받는다.

이름이 없는 복제인간에게 이름을 부여해주는 실체가 없는 AI 프로그램 조이는 또 다른 리플리컨트의 몸과 결합해 사랑을 나눈다.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K와 신체가 없는 AI 조이, 인간이 될 수 없는 이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홀로그램 광고 영상이 일본어와 한국어, 영어 등과 함께 난립한다. K가 사랑하는 존재는 대다수 대중들이 공유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 ScienceTimes

거대한 홀로그램 광고 영상이 일본어와 한국어, 영어 등과 함께 난립한다. K가 사랑하는 존재는 대다수 대중들이 공유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 ScienceTimes

인간을 위협하는 구형 리플리컨트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며 인간 사회의 생존을 도모하려는 미래의 권력층과 구형 리플리컨트를 재생해 새로운 노예 사회 건설을 꿈꾸는 욕망을 가진 기업주와의 대결은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이다.

K는 또 다른 블레이드 러너 릭 데커드를 위해 목숨을 걸며 사투를 벌인다. 그는 인간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릭 데커드를 지킨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K는 보여준다.

인간만이 ‘선’이고 ‘최고의 종’이라는 편협한 생각을 K와 그의 연인 조이는 부서뜨린다. 과학 기술 속에 담겨진 인간 근원에 대한 궁금증이 2049년을 앞두고 영화는 2017년 지금,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이 왜 인간인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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