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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도 이젠 늙었나, 젊은 스냅챗 모방에 열중

문재용 기자
입력 : 
2017-04-14 06:01:07
수정 : 
2017-04-14 10: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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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신문 국제부가 전하는 글로벌 뉴스의 뒷 이야기. 생생한 현지소식·각 지역 언론의 심층보도를 매일 접하며 전문성을 쌓은 기자들이 '한꺼풀 벗긴 글로벌 뉴스'를 통해 한국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을 지구촌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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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1] 7, 8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들어온 페이스북 때문에 추억이 담긴 싸이월드를 쓸 수 없게 됐다"는 불평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하소연을 듣고 나면 많은 이가 각자 싸이월드를 즐겼던 시절도 떠올리고, 국산이 미국산에 점령 당한 사실도 슬퍼하며 공감하곤 했다. 공교롭게도 이제는 페이스북이 일상은 없고 추억만 남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됐다. 지인들의 근황이 궁금하면 페이스북 대신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요즘 SNS'를 방문해야 하는 세상이다. 일찌감치 인스타그램을 인수해 둔 페이스북은 걱정이 없겠다 싶을 수 있다. 그러나 SNS 본고장인 미국의 사정은 많이 다른 듯하다. 페이스북은 '제2의 페이스북'으로 불리는 스냅챗에 10대 이용자를 속절없이 빼앗기는 통에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투자회사 파이퍼제프리(PiperJaffray)에 따르면 미국 10대가 가장 선호하는 SNS는 스냅챗(39%)이며 인스타그램(23%), 트위터(11%), 페이스북(11%)이 그 뒤를 이었다. [2017년 상반기 10대 분석 보고서(Taking Stock With Teens, Spring 2017) 기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합쳐도 스냅챗의 인기를 따라잡지 못하는 셈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조사에서 4위에 그쳤던 스냅챗은 모든 경쟁자를 따돌리고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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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옛날 SNS가 돼버린 페이스북의 노력은 눈물겹다. 스냅챗의 인기 요인을 모방하는 데 여념이 없다. 공유한 사진·영상을 자동 삭제하는 기능, 여러 이용자의 영상을 모아 자동으로 하나의 영상으로 편집해주는 기능 등을 따라서 도입했지만 수년째 실패만 거듭하고 있다. 2017년 4월에는 스냅챗에 대응해 10대 이용자를 공략하기 위한 'Teens Team'이란 조직까지 출범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페이스북이 스냅챗을 지나치게 의식해 혁신 DNA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페이스북이 모방만 일삼다 결국 몰락하고 마는 '빙 모멘트(Bing Moment)'에 이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빙 모멘트는 IT업계의 독보적 존재였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신생 기업 구글에 대항해 개발한 검색엔진 빙(Bing)에서 유래한 용어다. 거대 IT 기업이 새로운 기술은 개발하지 못하고 후발 주자의 기술을 베껴 마케팅·유통에만 몰두하는 현상을 뜻한다. MS도 운영체제 윈도와 사무용 프로그램 오피스,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통해 각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역량을 총 동원해 구글을 상대하려 했다. 그러나 빙의 실패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IT 업계에서는 크게 희망적이지 않은 전략이다. 아무리 발빠르게 신기술을 모방해도, 이미 늙고 둔한 기업으로 인식되는 순간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일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검색엔진을 통해 거대 IT 기업으로 도약한 구글이 신흥 SNS 페이스북과 대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구글은 뒤늦게 구글+라는 SNS를 출시했지만 별다른 이목을 끌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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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모멘트의 흥미로운 점은 기존 거대 IT 기업의 기술과 신흥 기업이 내놓는 기술이 직접적 경쟁 상대는 아니란 것이다. 검색엔진 구글을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오히려 야후 같은 다른 검색엔진이었고, 페이스북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구글은 SNS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존 기업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신기술이 '플랫폼'을 장악해 개인용 컴퓨터(PC) 이용 행태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신기술을 이용하기 위해 이용자가 몰리면, 이들을 대상으로 신흥기업은 무궁무진한 추가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 MS, 구글, 페이스북이 온갖 서비스를 제공하는 통에 '복합 IT'로 불릴 수 있는 힘도 이처럼 플랫폼을 장악한 데서 나온다.

구글이 등장하기 전까지만해도 'MS의 플랫폼에서 머무는 시간=PC 이용시간'이란 공식을 적용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스마트폰이 그 지분을 빼앗고, 각종 SNS가 지분을 다시 나눠 갖고 있다. 페이스북이 매출·순이익·주가 등의 경영지표 상으로는 승승장구하면서도 스냅챗의 약진에 골머리를 싸매는 것도 향후 이용자를 빼앗기며 플랫폼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스냅챗은 2013년 페이스북으로부터 30억달러의 인수 제안을 거절한 후 승승장구하며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다.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듣기만 해도 황홀한 액수지만 스냅챗 창업주인 90년생인 에빈 스피겔 최고경영자(CEO)는 눈앞의 돈보다 미래를 선택했다. 스피겔 CEO는 이제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 기준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에 등극했으며, 스냅챗은 직원 1인당 기업가치가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됐다(2015년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 기준).

2017년 3월 모기업 스냅의 기업공개(IPO) 당일에는 예상보다 기관투자가 수요가 10배 넘게 몰리며 기업가치가 240억달러까지 솟구쳤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역사에서 중국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1690억달러), 페이스북(812억달러), 또 다른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인 징둥닷컴(262억달러)의 뒤를 이어 역대 4위의 IPO 규모다.

스냅챗과의 경쟁에서 페이스북이 살아남는 길은 모방이 아닌 혁신에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미국 CNBC의 IT 분야 편집장인 매트 로소프는 "페이스북이 10대의 관심을 되찾으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히 스냅챗의 인기 요인을 따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문재용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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