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장옥]이런 나라가 선진국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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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특별재난지역 선포… 대통령 지시 없으면 못하나
대통령 나서야 문제 해결되는 수직구조로는 선진국 불가능
표류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개헌’으로 나라운명 개척할 때다

조장옥 객원논설위원 한국경제학회 회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조장옥 객원논설위원 한국경제학회 회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은퇴하면 내려가 살 요량으로 경북 경주에 거처를 마련한 지가 꽤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덕이 많지만 인구 25만 명가량의 중소도시 가운데 경주만큼 인프라를 갖춘 도시가 많지 않으리라. 서울에 직장이 있어서 아내와는 떨어져 사는 시간이 많다. 그렇지만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다. 주말 부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하는 업을 쌓아야만 가능하다고, 아내는 본인이 좋은 건지 남편이 좋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점괘를 늘어놓곤 했다. 적어도 이번 지진이 있기 전까지는. 그렇지만 지진 이후에는 무서워서 당분간은 경주를 떠나 있어야겠다고 한다.

 지진은 우리가 흔히 겪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그만큼 더 두려운 것이다. 우리가 겪는 재해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만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는 오히려 자연재해보다는 인재(人災)에 더 많이 시달려 온 것이 사실이다. 세월호도 그렇고, 광우병도 그렇고, 멀리는 나라를 빼앗긴 것을 시작으로 전쟁,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우리에게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가 적지 않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선진국은 경제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요즈음처럼 깊이 통감한 적이 없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바는 나라가 통치되는 방식에 있는 것 같다.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가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오히려 사람을 통해서만 일이 처리되는 참 어처구니없는 것이 일상사가 돼 버렸다.

 이번 지진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경주를 방문하고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고려하라고 하니 관련 부처가 지체하지 않고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모든 문제가 대통령이 나서야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수직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 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월호를 생각하면 아프지 않은 가슴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지금처럼 거의 항구적으로 그 문제를 거론하고,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대통령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이 나라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그와 같은 비정상의 기저에는 대통령으로부터 말단에 이르는 수직구조가 있다. 나라의 모든 문제를 만기친람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통령과 수직구조가 결합이 되니 모든 문제의 책임이 그 꼭대기에 있는 대통령에게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의 한계를 인식함으로써 시스템이 형성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신이고 그 몇 안 되는 측근은 사도인 나라에서 신과 사도들이 나서지 않고 되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지난 대선 때 어느 역술가가 말하기를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편안하게 할 분이라고 예언(?)한 것을 기억한다. 과연 지난 3년 반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편안하셨는가. 지금 누구를 비난하고자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프게 고민할 때라는 말이다.

 지금 야당에서는 개헌을 요구한다. 개헌은 정치적인 블랙홀이기 때문에 대통령은 피하고 싶어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마도 우리가 이미 블랙홀에 있다는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2016년 9월 대한민국을 둘러보라. 이게 블랙홀이 아니면 뭐가 블랙홀인가. 북에서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고 있는데 남에서는 사드 배치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정을 담당하고 있는 집단은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권력다툼에 해가 지고. 되는 일이 뭐 하나 없어 보인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어디론가 표류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블랙홀 이상이다. 이런 표류가 한 번이 아니지 않은가. 나라가 통치되는 시스템을 혁신하지 않고 우리가 지금의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시스템의 혁신을 위해서 개헌이 핵심이 되겠지만 관료제도, 선거제도, 정당제도, 노동법과 교육법 등 손봐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차제에 나라 시스템의 대혁신을 제안하고 싶다. 이를 통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번 열어보자는 것이다.

 정권 말기로 가면서 권력의 핵심은 레임덕을 염려하겠지만 박 대통령이 길이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개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나라를 혁신하는 큰 어젠다에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장옥 객원논설위원 한국경제학회 회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선진국#지진#자연재해#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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