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위중한데…개헌 블랙홀 될라

[the300]개헌 필요성 공감대 불구 현안 집어삼킬 우려…생산적인 논의가 성패 관건

진상현 기자 l 2016.10.24 16:41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17년도 정부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2016.10.24/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내에 개헌을 완료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밝히면서 정국이 일대 격변기를 맞을 전망이다. 1987년 이후 30년 가까이 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5년 단임 대통령제’의 권력 구조 개편부터 지방자치 확대, 기본권 신장 등 누적된 개헌 수요가 봇물 터지듯이 나오면서 모든 현안들을 집어삼킬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야당은 박 대통령의 개헌 추진 의도 자체가 정략적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24일 국회 등에 따르면 20대 국회 개헌 추진 모임에는 300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이미 200명에 육박하는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개헌에 대한 공감대가 모아져 있다. 200명은 개헌안 국회 의결 기준인 재적 의원수의 3분의 2에 해당한다. 개헌 논의에 선을 그었던 박 대통령이 적극 추진으로 돌아선 만큼 여당 의원들 가운데 추가로 개헌 대열에 나서는 인사들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국민들의 개헌 찬성 여론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 6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개헌론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개헌론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69.8%,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 12.5%, 잘 모르겠다는 의견 17.7%로 나타났다.(6월15일 515명 대상, 응답률 6.1%, 표본오차 95% ±4.3%, 자동응답 RDD 방식)
 
하지만 개헌 논의가 ‘경제 블랙홀’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여전하다. 현 5년 단임제를 바꾸는 권력 구조 개편부터 기본권 개선, 경제구조 개편, 지방 자치 확대 등 개헌 수요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논의 과정에서 정치권은 물론 이해 관계가 있는 각계각층에서 목소리를 낼 경우 당장의 시급한 현안들이 관심 밖으로 밀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도 이날 전격적인 제안 전까진 이러한 ‘블랙홀화’ 우려를 들어 개헌 논의에 반대해왔다.

당장 정기국회 예산 심의가 시작됐고, 예산 부수 법안 등 각종 세법에 대한 국회 심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법인세, 소득세 등 세율 조정과 누리과정 예산 해법 등 국민 공감대 속에서 풀어야할 숙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20대 국회 들어 아직 가동되고 있지 않은 각 상임위별 법안 논의도 재개돼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남은 국정 과제인 노동 4법 등 노동 부문 개혁, 교육 개혁,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경제활성화 정책들도 추진 동력이 약화될 공산이 크다. 해운 조선산업의 위기,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대표기업들의 고전으로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되살리는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궤도에 오르는 등 한반도 안보 역시 위중하다. 

이런 현안 문제들은 개헌과 별개로 풀어갈수 있다는 시각도 있지만 개헌 논의 과정에서 정치권 대립이 격화될 경우 생산적인 논의가 가로막힐 공산이 있다. 가장 관심이 높은 권력 구조 개편만 해도 ‘4년 중임제’와 ‘내각제 혹은 분권형 대통령제’로 진영이 나눠져 있다. 이는 차기 대권 주자들 사이에도 이해관계가 얽힐 수 밖에 없어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다.


당장 야권과 여권 일각에선 이날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두고 '정국 모면용'이나 '퇴임 후 대비용'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개헌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게 아니라 이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이라며 "대통령은 개헌논의에서 빠지셔야 하는 분"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도 "(박근혜 대통령이) 갑자기 개헌을 말씀하시니까 이제 거꾸로 무슨 블랙홀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인가 의아스러운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5년 단임 대통령제'가 갖는 한계와 우리나라가 처한 구조조인 문제 등을 감안할 때 이번 기회에 반드시 개헌을 이뤄내 재도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한다는 견해도 많다. 이를 위해선 정략적인 접근을 배제하고 국민들의 삶에 중심을 둔 생산적인 개헌 추진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87년 개헌 작업에 참여했던 김덕룡 시민이만드는헌법운동본부 대표는 "이번에 모든 것을 다 다루려다 보면 개헌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면서 "합의하는 것만 우선 해야지 다 담으려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개헌 논의가 특정 시기를 못 박아 놓고 꿰어 맞추기 식으로 진행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공학적으로 흘러서는 안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개헌 논의가 권력구조 개편 문제로만 집중되면서 ‘권력 나눠먹기’나 기득권 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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