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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미납한 보험료 업주에 안 줘도 된다”

김원진 기자

‘퇴직금 달라’는 노동자에 “4대보험료 토해내라”는 사업주

부담 줄이려 가입 않다가
퇴직금 요구에 되레 겁박
약국업주 반환 청구소 기각

필라테스 강사인 ㄱ씨(25)는 2016년 2월부터 2년6개월 동안 서울 강북의 한 피트니스센터에서 일했다. ㄱ씨는 지난해 8월 퇴사하면서 사업주에게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사업주는 ㄱ씨에게 “퇴직금을 받으려면 밀린 4대보험료를 다 토해내라”고 협박했다.

사업주는 그동안 ㄱ씨에게 지급한 기본급 120만원에 해당하는 4대보험료만 내왔다. 매달 기본급의 1.5~2배 정도인 수당에 대해서는 4대보험을 들지 않았다. 사업자분 4대보험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4대보험 중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절반씩 부담하고, 산재보험은 사용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ㄱ씨가 퇴직금을 요구하자 사업주는 기본급 외 수당에 대해서도 4대보험을 가입하겠다고 했다. 4대보험은 최대 3년까지 소급해 신고할 수 있다. ㄱ씨가 2년6개월 동안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의 노동자부담분을 내라는 취지였다. 사실상 퇴직금을 요구하지 말라는 압박이었다.

ㄱ씨는 “필라테스 강사의 대다수가 4대보험료 미납분을 내라는 사업주의 요구를 받고 퇴직금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법률 조언을 받아 법률상 규정된 퇴직금의 절반 수준(500만원)을 받아냈다.

퇴직금은 1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한 노동자가 1년 이상 일하면 퇴사할 때 지급받는 일시금이다. 4대보험 가입과는 무관하게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줘야 한다.

최근 법원에서는 사업자가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는 노동자에게 밀린 4대보험료를 내라며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를 기각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부는 지난 18일 약국업주 ㄴ씨가 ㄷ씨에게 밀린 4대보험료 902만원을 지불하라고 요구한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ㄷ씨는 ㄴ씨가 운영하는 약국에서 2013년 12월부터 4년간 직원으로 근무했다. 실수령액은 시간당 1만5000~1만8000원 수준이었다. ㄷ씨는 실수령액 기준으로 받아와 4대보험료 원천징수 여부를 알 수 없었다고 한다. ㄷ씨가 약국을 관두며 퇴직금을 요구하자 ㄴ씨는 그간 내지 않은 노동자분 4대보험료를 부담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ㄷ씨가 노동자분 4대보험료 미납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ㄷ씨가 소득세나 4대보험료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시급과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매월 실수령액을 산정해 급여를 지급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4대보험료 등 명목으로 공제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처음부터 다른 급여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사업자가 ㄷ씨에게 ‘4대보험 관련 민원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게 하고, 퇴직금 지급 의무 발생 이후에야 (노동자분) 4대보험료를 대납했다는 취지로 말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의 감독 단계부터 철저한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필라테스 강사 ㄹ씨는 최근 퇴직금과 4대보험 문제로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이때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합의하라는 중재만 지속했다고 한다.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노무사는 “사업주가 자신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가 노동자가 퇴직금을 요구하면 4대보험을 빌미로 퇴직금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며 “철저히 ‘을’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가 퇴직금·4대보험료 문제로 재판까지 겪지 않으려면 감독 당국의 감시부터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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