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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의 `독서 人事`…"대통령 요즘 무슨 책 읽으시나" 중폭 개각 앞둔 상황서 관심

오수현 기자
입력 : 
2019-02-13 17:52:42
수정 : 
2019-02-13 20:3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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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 감명받은 책 저자
靑·정부 요직에 잇단 발탁
정책 구상에도 적극 반영

김현철·권구훈·이정동 이어
김희경 여가부 차관 임명도

역사·정치 등 안가리고 多讀
최근엔 경제서적 많이 읽어
◆ 레이더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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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여름휴가지에서 독서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단행한 인사 때마다 '책'이 화제가 됐다. 문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발탁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 때는 인사 배경을 두고 '누가 밀었다더라' '대통령과 과거 이런저런 인연이 있었더라' 식의 해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는 유독 '대통령의 독서'가 인사 배경으로 거론된다. 문 대통령은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을 높이 산다. 문 대통령은 2012년 펴낸 '문재인의 서재'라는 책에서 "쉴 때 손이 닿은 곳에 책이 없으면 허전한 느낌이 든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책을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 활자 중독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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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를 통해 인재를 발굴 지난 7일의 여성가족부 차관 인사는 '독서 인사'의 대표적 사례다. 문 대통령이 김희경 차관의 저서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고 감명받아 격려 편지까지 따로 보낸 사실이 지난해 11월 알려졌는데, 결국 차관 발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상한 정상가족'은 부모와 자녀로만 이뤄진 핵가족을 이상적 가족 형태로 간주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로 인한 가정 폭력, 학대 등 문제점을 입체적으로 꼬집은 책이다.

글로벌 투자회사인 골드만삭스의 권구훈 전무 발탁으로 파격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던 제2대 북방경제협력위원장 인선 역시 문 대통령의 독서가 그 배경이 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여름 휴가 때 읽은 '명견만리'라는 책에 나온 권 위원장의 강연 내용을 접하고 감명받았다"며 "문 대통령이 권 위원장을 직접 추천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대통령 경제과학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된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도 대표적 사례다. 문 대통령은 그의 저서 '축적의 길'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이 교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 교수를 경제과학특보에 임명한 직후 청와대 전 직원에게 '축적의 길'을 설 선물로 돌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일부 수석급 참모에게 책을 선물한 적은 있어도 전 직원에게 책을 돌린 것은 처음이라 화제가 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지난 산업화 시대에 한국이 추격자였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선 선진국들과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 있다고 생각해 왔다"며 "문 대통령은 이 책에서 이 같은 구상을 더욱 확신하게 되면서 책을 탐독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전·현직 청와대 참모들도 책이 문 대통령과의 연결고리가 된 경우가 적잖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이던 2010년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을 써서 문 대통령에게 보냈다. 당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문 대통령이 정계에 투신할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 문 대통령은 며칠 후 짧은 독후감과 함께 오탈자와 통계 오류까지 지적하는 편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였던 2015년 당 내분을 수습하기 위해 혁신위원회를 구성할 때 조 수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난달 사임한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저서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저성장 시대, 기적의 생존 전략'으로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일본 경제·산업 전문가인 김 전 보좌관은 문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이던 2015년 이 책을 냈는데, 문 대통령이 책을 읽고 직접 김 전 보좌관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이처럼 문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발탁하는 일이 계속되면서 관가에서는 문 대통령의 독서 목록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 특히 조만간 중폭 개각이 예정된 터라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는 "대통령이 요새 누가 쓴 책을 보시느냐"는 얘기도 오간다고 한다.

◆ 대통령이 좋아하는 독서 분야는

문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 이후 읽은 것으로 알려진 책 목록을 살펴보면 알려진 '명견만리' '축적의 길' '이상한 정상가족' 외에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 김성동의 '국수', 진천규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등이다. 2017년 8월 청와대 출입기자단에 대통령 집무실을 공개했을 당시 문 대통령의 책상에는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의 회고록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가 꽂혀 있었다.

이를 두고서 "대통령이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한 책을 즐겨 읽는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문 대통령의 독서 목록은 취향을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하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장하성 전 정책실장의 발탁도 저서의 영향이 컸다. 문 대통령은 장 전 실장이 쓴 '한국 자본주의: 경제민주화를 넘어 정의로운 경제로' '왜 분노해야 하는가: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등에 나타난 생각에 공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쓴 책에 담은 생각은 문재인정부 국정 철학에 적잖게 영향을 미쳤다. 김 실장은 '위기의 부동산' '한국의 가난: 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 '부동산 신화는 없다' '저성장 시대의 도시정책' '주택정책의 원칙과 쟁점' '부동산은 끝났다: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곳, 다시 집을 생각한다'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참모들은 문 대통령의 독서열 때문에 고민도 적잖다. 한 참모는 "대통령이 새벽 2~3시까지 보고서를 읽을 때가 많아 건강이 걱정될 정도"라고 말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취임 직후 참모들에게 "대통령 대면보고를 줄이고, 보고서 총량도 줄이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이 활자에 갇혀 있는 경향이 있는 만큼 사람들과 대면하는 시간을 더 늘리자는 취지에서다.

문 대통령의 최근 독서 목록에는 경제 관련 도서 비중이 압도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안보 분야에 비해 경제 분야 성과가 부진한 데 대한 문 대통령의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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