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그룹홈 종사자들이 정부에 처우개선을 요구하는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주7일 24시간’ 근무에 급여 155만원
“아동시설 간 지원 차별 너무 커”
협회장, 종사자 처우개선 요구 농성

[천지일보=박정렬 기자] “1500여명의 사회복지사들이 보호가 절실한 아이들을 사명감으로 돌보고 있지만 이제 젊은 사람들은 이 일을 하려 들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보호처가 필요한데 말이죠”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그룹홈협의회) 안정선 회장은 지난 4일 오후부터 정부서울청사 옆 세종로공원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농성에 들어갔다. 그의 요구는 ‘아동보호체계 간 차별 철폐 및 그룹홈 종사자 처우 개선’이다.

그룹홈이라 불리는 아동공동생활가정은 일반 주택에서 보호가 필요한 아동·청소년들과 함께 사회복지사가 24시간 생활하는 아동복지시설이다. 학대, 빈곤, 방임, 가정해체 등의 이유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는 대안가정인 셈이다.

보통 고아원이라 불리는 대규모 아동양육시설에서 아이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것에 익숙한데, 이런 대규모 시설에서 아이들을 키워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몇몇이서 1970년대 말부터 가정형 보호를 시작했다. 2004년 UN의 권고에 따라 아동공동생활가정이 아동복지시설로서 법제화 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는 510곳의 그룹홈에서 2800여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안 회장은 “지난달 보건복지부로부터 그룹홈 관련 예산안을 통보받고 충격과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며 “2018년 예산안을 보면 해마다 3%라도 인상되던 급여는 동결, 시설당 운영비는 3만 4000원 인상이 전부”라고 꼬집었다.

30여년 간 대안가정·그룹홈을 운영해 온 안 회장이 받는 한달 실질급여는 155만원 정도다. 그룹홈 종사자들은 365일 24시간 근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필요한 것도 가지각색인 아이들 6~7명을 돌봐야 하니 그도 그럴 것이다.

다둥이 가정에서 부모가 하는 일들을 기본적으로 원장이나 사회복지사가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아이들 아침에 밥 먹여서 학교 보내는 것에서부터 하교 전까지 청소, 빨래, 장보기는 기본이다. 거기다 그룹홈에 오기 전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다 보니 심리 치료나 상담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해당 기관이나 단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한다. 또 아이들이 학교에서 이런 저런 문제를 일으키면 ‘학부모면담’도 그룹홈 종사자의 몫이다.

그룹홈협의회 최선숙 사무국장은 “정부 지원을 받다 보니 행정 업무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쉴 새 없이 밤늦게까지 일하고 잠자리에 들어도 긴장으로 수면을 제대로 취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려서 학대·방임에 처했던 아이들인지라 영양·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자주 아프기 때문이다. 중고생 아이들은 이곳에서 재차 가출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아침에 아이가 안보이면 비상이 걸린다. 경찰에 실종(가출)신고를 하고 애태우며 기다렸다가 며칠 만에 아이가 들어오면 여느 부모-자식처럼 “왜 그랬냐”며 말다툼이 이어진다.

최 사무국장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상을 보이는 사회복지사들이 많다”며 “아이들을 위해 사명감으로 일하지만 감당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 옆 세종로공원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간 안정선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농성 중인 안 회장은 7일 사회복지의날 기념식에서 대통령표창을 받기로 돼 있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을 건강한 성인으로 자립해 나갈 수 있도록 30여년 간 애써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안 회장은 수상을 거부했다. 그룹홈 종사자들의 처참한 현실 때문이다.

안 회장은 “보건복지부에서는 그나마 그룹홈 종사자의 현실을 알고 처우개선을 위한 예산안을 세워 올리면 기획재정부에서 임의로 예산을 깎아 내려보내는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사무국장도 “지난 정부에서는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다를 줄 알았다”며 “대규모 아동양육시설과 비교해 그룹홈에 가해지는 차별을 오랜 기간 감내했던 종사자들에게 이번 예산안은 실망을 넘어 좌절감을 안겨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룹홈 관련 2018년 정부 예산은 총 133억원이다. 반면 그룹홈 종사자들이 ‘최소한의 요구를 담았다’며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올린 예산은 160억원이었다. 그룹홈협의회는 “현실 반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기재부의 예산안 확정 방식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그룹홈을 운영하는 일부 시설장들은 “버텨보다가 안되면 접어야지 어떻게 하겠냐”며 체념하듯 말하기도 한다. 그룹홈 한 군데가 문을 닫는다면 거기서 생활하던 아이들 6~7명은 다시 대규모 시설에 갈 수 밖에 없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청소년이 그룹홈 배정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일방적으로 결정에 의해 이뤄진다. 아이들 대부분 대규모 시설에서 적응을 하지 못해 지자체로서도 마지막 해결책으로서 그룹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 핑계 삼아 정부 돈 더 받아내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 들을까봐 그동안 참고 참아왔다”며 “하지만 그룹홈 종사자들도 한계에 이르렀다. 온갖 상처를 안고 여기저기 전전하다 그룹홈에 와서 겨우 적응해 가는 아이들이 예산 때문에 다시 ‘고아원’에 들어가는게 맞느냐”고 종사자는 항변한다.

탈시설 기조로 대규모 시설이 아닌 가정과 같은 분위기에서 아이들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한 성장을 돕기 위해 시행되는 그룹홈. 하지만 종사자들이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이면서 아이들 보호에도 안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에 정부가 적절한 해법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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