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상호]또다시 ‘안보 포퓰리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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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친분이 있는 군 관계자들과의 저녁 모임에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의 A 씨가 동석했다. 필자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런데 갑자기 A 씨는 불쾌한 듯한 얼굴로 “노무현 정부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령부 해체를 (내가) 저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전작권 전환 등에) 대부분 찬성할 때 끝까지 반대했다”며 자신이 ‘안보 일등공신’이라고 강조했다. 순간 취기가 싹 가셨다. 당시 군 안팎에서 전작권 전환과 연합사 해체의 당위성을 설파하던 그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어 그때 사례를 들면서 따져 묻자 그는 ‘그건 사실은…’ ‘기억이 안 난다’고 얼버무리다 먼저 자리를 떴다. 난데없는 ‘진실 논쟁’으로 그날 자리는 어색하게 마무리됐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전작권 전환과 연합사 해체는 ‘안보 포퓰리즘’의 산물이었다. 추진 과정에서 전시 연합사의 가치와 북한의 핵 위협, 한국군의 능력 등 ‘핵심 고려조건’은 논외였다. A 씨와 군내 동조세력은 안보를 팔아 진급 등 사익을 챙겼다. 전작권을 갖고 와야 군사주권을 가진 자주군대가 된다는 맹신 탓에 한미동맹은 내내 삐걱거렸다.

 어디 그뿐인가. 전작권 전환 반대는 ‘친미 우파’, 찬성은 ‘반미 좌파’라는 낙인찍기로 극심한 이념 전쟁과 국론 분열을 겪었다. 2014년 10월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전작권 전환 연기에 양국이 합의하면서 긴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그간 치른 대가가 너무 컸다. 그사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극대화됐다.

 최근 야권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의 연기나 재고를 주장하는 것은 ‘안보 포퓰리즘’의 재판(再版)이라고 본다. 주요 안보 현안을 ‘최순실표 정책’으로 몰아 내년 조기 대선에서 표를 얻으려는 저의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등 야당 주요 인사는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만큼 사드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선 중국의 보복 조치를 거론하면서 배치 결정 철회까지 요구하고 있다.

 사드는 북한의 대남 핵공격으로부터 미 증원전력의 핵심 통로(항구, 비행장)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방어무기다. 또 사드 배치는 탐지레이더의 전자파 유해성 검증과 주민 반발을 고려한 입지 변경 등 우여곡절을 거치며 한미 양국이 최종 합의한 사안이다.

 이를 뒤집겠다는 야권의 발상은 정권만 잡을 수 있다면 국민의 안전과 대미관계는 어찌 되든 안중에 없다는 의미로 비칠 소지가 크다. 아무 대안도 없이 ‘북핵 방어막’을 걷어내자는 주장은 안보를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할 수권정당의 올바른 길과도 한참 거리가 멀다.

 야권의 ‘사드 딴지 걸기’는 북한과 주변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당장 북한은 ‘사드 남남갈등’을 노리고 핵·미사일 도발 수위를 높일 공산이 크다. 중국은 대한(對韓) 사드 공세가 먹혔다고 보고, 한국의 차기 정부를 상대로 더 노골적인 압박에 나설 것이다. 미국에선 한미동맹의 근본적 재검토 여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 ‘동맹도 비즈니스’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사드 합의의 연기, 번복 사태 논란 등을 어떻게 보고 활용할지 불투명하다.

 야권의 ‘사드 흔들기’는 ‘안보 자중지란’을 자초하는 패착이다. 국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문제만은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대승적 관점에서 보길 바란다. 안보가 정쟁의 도구로 농단되는 사태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안보#노무현#사드#안보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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