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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 대고 말로 산다… 점점 뜨거워지는 보이스 커머스 시장-쇼핑도 이젠 AI스피커로 4년 후 전 세계 43조원 큰 시장

이유진 기자
입력 : 
2018-08-30 08:16:21
수정 : 
2018-08-30 09: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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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2월, 아마존은 인공지능(AI) 스피커 ‘에코’를 이용하는 영상 하나를 공개한다. “알렉사, 익스피디아 실행해줘.”(사용자) “11월 29일에 라스베이거스로 여행 가시네요. 세부 사항을 알려드릴까요?”(에코) “비행정보 알려줘.”(사용자)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는 버진아메리카 논스톱 항공편이 오전 9시, 터미널2에서 출발합니다.”(에코) “스탠더드 SUV 렌터카 예약해줘.”(사용자) “폭스가 106달러로 최저가입니다.”(에코) “응.”(사용자) “다 됐습니다. 영수증은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에코)

사용자는 항공권 예약사항을 확인하고, 공항에서 빌릴 렌터카를 예약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스피커에 손을 대지 않는다. 대신 잡지를 보고, 메모를 확인하고, 주방을 왔다 갔다 한다. 모든 검색과 결제는 음성으로 진행된다.

아마존은 항공권·호텔 검색 사이트 ‘익스피디아’를 실행해 음성인식 서비스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날씨와 시간 등 정보 검색뿐 아니라 상품 선택과 결제까지 음성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동영상이 보여준 만큼의 인식률과 속도는 구현되지 않았지만, 음성인식과 인공지능, 쇼핑이 결합한 미래를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국내에서도 ‘말로만 하는 쇼핑’ 시스템 구축 경쟁이 뜨겁다. AI스피커 개발 업체와 손을 잡고 협업하는 곳부터 자체적인 음성 인식 쇼핑 서비스를 만드는 곳까지 다양하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시장을 선점하려는 업체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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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치킨·아이스크림·생수 배달도 가능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은 홈쇼핑 업계다. 우리나라에서는 AI스피커를 KT·SKT 등 케이블TV사업을 겸하는 통신사업자들이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TV채널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홈쇼핑 업체의 음성인식 서비스 론칭이 타 업계보다 빠르다.

KT의 자회사인 디지털홈쇼핑(t커머스) 업체 KTH는 지난 5월 음성결제가 가능한 ‘기가지니 추천쇼핑’ 서비스를 출시했다. KT의 AI스피커 기가지니를 이용해 목소리로 쇼핑하는 서비스다. 기가지니를 보유한 TV시청자가 KTH의 홈쇼핑 채널 K쇼핑을 켜면 TV화면에 ‘추천쇼핑’이라는 메뉴가 뜬다. 현재 방송상품과 MD추천 상품·특가·신상품 등 5가지 테마로 상품을 선별해 보여주면, 음성으로 상품 종류와 사이즈·수량 등을 고르게 된다. 예를 들어 단계별로 “트로피컬 원피스”, “66(사이즈)”, “2개”라고 말하면 주문사항이 반영되는 방식이다. 상품을 고른 후 “내 목소리로 인증”이라고 말하면 자동으로 본인 인증이 돼 결제할 수 있다. 이 비용은 올레 tv 요금결제에 합산되거나 신용카드로 결제된다.

사용자 목소리를 미리 단말기에 등록하면 “내 목소리로 인증”이라는 음성 명령만으로 결제가 가능한 점이 ‘기가지니 추천쇼핑’의 가장 큰 특징이다. 지문이나 홍채인식처럼 목소리를 인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도용하기 어렵다. 기존에는 상품 주문 시 공인인증서, 신용카드 정보 등을 사전 등록하고 암호를 입력해야 결제되지만, 결제가 음성으로 돼 주문 단계도 간소화됐다. 모바일 푸시 메시지를 받아 주문 URL을 클릭하고, 결제 페이지로 연결하는 2~3단계 이상이 생략된다.

단 기가지니 단말 1개당 1명의 목소리만 인증할 수 있어, 가족 모두가 음성인증 결제를 사용할 수는 없다. 가장 자주 사용하는 한 명은 음성결제로, 나머지 구성원은 비밀번호 입력 방식으로 결제가 가능하다. KTH 측은 올해 하반기에 TV요금에 합산하는 방식 외에 신용카드와 무통장 입금 등 청구수단을 추가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이 업체가 내놓은 ‘대화형 쇼핑’ 서비스는 상품 결제 단계 전까지의 검색과 주문을 지원한다. “다음 방송 상품” 또는 “K쇼핑 편성표”라고 말하면 해당 기능으로 화면이 넘어간다. “상담전화”, “전화로 주문해줘” 등 명령어를 말하면 상담전화로 연결된다. 이 서비스 론칭 후 기가지니 가입자 가구 주문량은 서비스 초기 월 1000건에서 8월 기준 월 6000건으로 크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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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스피커와 연계한 검색·추천·결제 서비스 봇물

KTH·현대백화점·CJ오쇼핑 유통업체 선점 노려

디지털 분야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백화점에서도 음성쇼핑에 뛰어들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7월부터 네이버가 개발한 AI스피커 ‘클로바’와 손잡고 보이스 커머스 서비스를 도입했다. 백화점 업계에서 AI스피커 연동 서비스를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클로바를 이용하는 고객은 현대백화점 온·오프라인 채널 영업정보와 온라인 쇼핑정보를 음성으로 검색해 안내받을 수 있다. 고객이 “본점에 나이키 있어?”라고 물으면 “본점 나이키 매장은 지하 2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라며 매장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식이다.

전국 15개 백화점과 온라인 쇼핑몰인 더현대닷컴의 쇼핑정보를 클로바가 알려준다. 현대백화점이 시행하는 서비스는 아직은 기초적인 단계다. 인터넷 포털이나 백화점 홈페이지에서 안내받은 정보를 음성으로 묻고, 음성으로 안내받는 수준이다. 백화점 측은 ‘더현대닷컴’ 상품을 음성으로 주문해 배송할 수 있는 ‘음성쇼핑’ 서비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물·샴푸 등 생필품부터 의류·잡화까지 온라인몰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을 포함시키는 게 목표다. 백화점의 특성을 살려 가격 조회나 행사 안내 서비스도 추가할 계획이다. “지금 진행하는 할인행사 알려줘” 또는 “나이키 에어맥스 90 신발 가격 얼마야?”라는 질문에 클로바가 답을 할 수 있게 서비스를 개발할 예정이다.

백화점 업계에서는 롯데백화점의 온라인몰 엘롯데가 운영하는 ‘로사’가 AI기반의 음성인식 서비스를 제공한다. AI스피커 대신 앱으로 연결해 접근성이 더 높다. 엘롯데 앱을 다운받으면 채팅과 음성인식의 두 가지 방식으로 채팅 기능을 지원한다. 로사의 최대 경쟁력은 ‘추천’ 기능. “여름 원피스 추천해줘” 또는 “휴가용 수영복 보여줘”라는 식으로 말하면 쇼핑 도우미 로사가 상품을 추천해 준다. 기획단계부터 IBM 왓슨과 함께 개발해 쇼핑에 최적화된 추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타 서비스와 다른 점이다. 로사는 사용자가 이전에 어떤 상품을 구매했는지 구매이력이나 선호도, 가격민감도와 인구통계정보 등 총 101가지 항목으로 고객을 구분하고, 맞춤형 추천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 패션, 리빙, 식품 등 1000여 개 품목에 대한 추천이 가능하다. 지난 6월부터 롯데백화점 공식 카카오톡 계정으로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서비스 이용 고객 수가 이전 대비 3배로 늘었다.

로사는 현재로서는 가장 발전된 단계의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아직까지는 주요 구매 채널로 이용하기에는 다소 보완이 필요하다. 음성인식률은 높은 편이지만 ‘십만원 이내 상품’ ‘밝은 색상’ 식으로 입력된 패턴에서 벗어난 명령어를 전달하면 답변을 얻기 쉽지 않다.

롯데백화점은 9월부터는 KT기가지니 스피커를 활용해 전국 롯데백화점 쇼핑 정보를 안내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스피커를 통해 영업시간이나 식당가 정보, 할인 행사 등 7가지 주제에 대한 안내 서비스를 알려준다.

홈쇼핑 업계에서는 CJ ENM 오쇼핑 부문이 지난 3월부터 음성 주문·결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생방송 중인 TV홈쇼핑 상품을 주문하는 면에서는 첫 시도다. CJ는 SK텔레콤의 AI스피커 ‘누구’를 활용한다. 누구가 탑재된 SK브로드밴드 셋톱박스를 소유한 고객이 누구 앱에 홈쇼핑 고객 정보를 연동해두면 생방송 중인 상품을 30초 내로 결제할 수 있다. SK텔레콤을 활용하기 때문에 결제 시 11번가의 간편결제 서비스인 11페이로 결제하거나, 주문 후 무통장 입금하면 결제가 완료된다. 생방송 중에만 제공하는 카드 청구 할인 혜택이 음성 주문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최근 주문 내역도 음성으로 확인 가능하다.

이외에 GS리테일은 LG 유플러스의 AI스피커 ‘U+우리집AI’를 사용해 생필품과 식료품 등을 구매하면 당일 배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번 등록한 카드로 자동결제가 가능하며, 고객이 직접 쇼핑암호를 설정해 쓸 수 있다. LG생활건강샵에서는 AI스피커로 주문할 경우 생활용품 등을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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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앱을 갖고 있는 배달업체나 외식브랜드, 프랜차이즈 매장 등도 음성인식·쇼핑 서비스에 가세하는 추세다. 네이버 AI플랫폼 ‘클로바’와 ‘배달의민족’ 계정을 연동하면 ‘배민에서 치킨 시켜줘’와 같은 명령어를 입력해 메뉴를 배달할 수 있다. 사전에 설정해 놓은 배송지와 가장 가까운 매장에 주문이 접수되는 방식이다. KT 기가지니는 음성으로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거나, 롯데리아 홈서비스를 연동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SK플래닛이 운영하는 11번가, 도미노피자, BBQ 등에서 상품 구매 및 주문이 가능하다. 모든 음성쇼핑 서비스가 AI를 기반으로 하지는 않는다. 롯데닷컴은 지난 6월 ‘말로 하는 쇼핑’이라는 서비스를 새로 선보였다. 별도의 AI스피커가 없어도 상품추천, 주문, 결제, 배송까지 음성으로 가능하다. 롯데닷컴은 지난해 말 베타서비스 버전으로 60개 상품에 대해 ‘음성주문’을 론칭하고, 이후 서비스를 확대했다. 롯데닷컴에서 판매하는 거의 모든 상품군 1500만 개 제품을 검색하고, “○○을 주문해줘”라고 덧붙이면 결제까지 완료된다. “무료 배송 가능한 생수”나 “5만원대 수영복”처럼 추가 조건을 붙일 수 있어 편리하다. 롯데닷컴 측은 “아직 도입 초기라 괄목할 만한 매출을 기대하긴 어렵다”면서도 “서비스 도입 직후인 7월에는 베타서비스 시기인 5월 대비 연관매출이 약 36배 커졌다”고 설명했다.

업체들이 갓 상용화한 단계의 음성 쇼핑 서비스를 앞다퉈 론칭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습득하고 학습하는 AI특성상 먼저 시작해 사용자를 선점해야 더 고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시작하는 쪽이 유리한 게임이다. 온라인몰 쪽으로 고객들을 계속 빼앗기는 오프라인 점포라면 변화가 더욱 절실하다. AI기반의 음성 쇼핑 서비스를 활용하면 고객 데이터를 모아 온라인몰이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사용이 간단한 음성 쇼핑 특성상 온라인 쇼핑에서 소외됐던 연령층도 고객으로 추가 확보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AI스피커와 고객의 대화 데이터를 분석할 경우, 지금보다 더 정교한 고객 맞춤형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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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 없이 목소리만으로 인증 가능한 서비스도

적용 상품 확대· 사용자 늘려 맞춤형 서비스까지 연결 과제

AI스피커가 국내보다 빨리 개발·보급된 미국에서는 음성 인식 쇼핑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과 구글이 음성 쇼핑 시장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다. 아마존은 AI스피커인 에코를 통해 아마존 프라임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주문하게 했고, 구글은 ‘쇼핑액션’이라는 음성 쇼핑 기능을 월마트, 코스트코 등과 연동해 사용한다. 쇼핑액션을 통해 주문하면 당일 배송 서비스인 ‘구글 익스프레스’로 배송돼 일반 주문보다 빨리 받아보는 것이 장점이다. 시장점유율은 아마존이 70% 안팎으로 지배적이지만, 구글의 상승세도 매섭다.

전문가들은 AI스피커를 활용한 음성쇼핑 시장이 4년 후에는 20배 더 성장한다는 전망을 내놨다. OC&C 스트레터지 컨설턴트에 따르면 2022년경에는 400억달러(약 43조3000억원)로 커진다. 현재 20억달러(약 2조1605억원)의 20배에 달하는 규모다. 시장조사기관 주니퍼리서치는 AI스피커 보급률이 약 13%에 불과하지만 4년 후에는 55%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음성 쇼핑 기반으로 주로 사용하는 AI스피커는 아직 국내 보급률이 높지 않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AI스피커 보급 속도가 다른 나라보다 빨라 세계적인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는 올해 말 우리나라가 세계 5위권 AI스피커 시장으로 성장한다고 내다봤다. AI스피커 설치 대수를 기준으로 볼 때 미국이 64%로 선두를 차지하고, 중국(10%), 영국(8%), 독일(6%), 한국(3%)순이라는 것이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중국이 3배 이상 늘고, 한국도 처음으로 5위에 올라선다. 카날리스는 한국에 연말까지 약 300만 대가 보급돼 작년 말 80만 대 규모였던 캐나다보다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유진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6호 (2018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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