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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00조 슈퍼 예산? 따져보면 짠물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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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00조 슈퍼 예산? 따져보면 짠물 예산

입력
2016.08.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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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입 증가에 크게 밑돌아 사실상 긴축

“경기부양ㆍ재정관리 제대로 하겠나” 지적

GDP 대비 재정지출 OECD 최하위

재정 역할 강조 세계 추세와 배치

현정부들어 추경 벌써 3번째

“확장도 긴축도 아닌 상황 되풀이”

“美 금리 인상ㆍ브렉시트 등 대비

완충 작용할 예산안 편성” 지적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400조7,000억원으로 정했다. 정부 수립 이후 나라살림 규모가 400조원을 돌파하는 것은 처음이다. 정부는 이 ‘400조’라는 숫자가 가지는 상징성을 들어 내년 예산안을 확장적이라고 자평했다. ‘슈퍼 예산’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예산안을 뜯어 보면, 내년에 나라가 쓰는 돈(총지출)의 증가율이 버는 돈(총수입)의 증가폭에 못 미치는 구조다. 버는 만큼도 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경기부양과 재정관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염두에 둔 편성이라지만, 이런 어정쩡한 예산은 결국 둘 다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러니 해마다 추가경정예산(추경)에 기대는 일이 되풀이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확장 재정”이라는 정부

정부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2017년 정부 예산안을 확정, 다음달 2일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내년 예산안에서 총지출은 400조7,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386조4,000억원)에 비해 3.7% 증가했다. 국세와 세외수입, 기금을 더한 총수입은 민간소비 증가 및 법인 영업실적 개선 등의 효과 덕분에 올해(391조2,000억원)보다 6.0% 증가한 414조5,000억원으로 정해졌다. 총수입 증가율이 총지출 증가율을 크게 웃돈다.

분야별로 보면, 보건ㆍ복지ㆍ노동 지출이 5.3% 늘며 130조원으로 책정됐다. 교육(6.1%), 일반ㆍ지방행정(7.4%), 국방(4.0%) 등이 평균 증가율을 넘어섰고, 사회간접자본(SOCㆍ-8.2%)과 외교ㆍ통일(-1.5%) 지출은 올해보다 감소한다.

내년 국세세입은 241조8,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 대비 8.5%, 추경 대비 3.9% 늘어난다. 추경 대비 소득세가 3.1%, 법인세가 5.1%, 부가가치세가 3.0% 증가할 전망이다.

정부는 이런 내년 예산안의 성격을 확장적 재정으로 평가했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2차관은 “2015~2019 중기계획에서보다 지출을 많이 잡은 만큼 확장적이라고 본다”며 “재정건전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확장 편성했다”고 밝혔다.

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예산증가율

그러나 400조원이 주는 ‘슈퍼 예산’ 이미지를 걷어내고 실제 지출 증가 폭을 보면 경기진작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정부가 편성한 11조원 규모 추경을 합치면 실제 내년에 늘어나는 지출은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 된다.

윤영진 계명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현 정부 들어서 예산 증가율이 명목 GDP 증가율에도 못 미치는 현상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실제 내년 총지출 증가율 3.7%는 정부가 제시한 내년 경상성장률 예상치(4.1%)를 밑도는 수준이다. “경상성장률보다 낮은 총지출 증가율은 확장이 아닌 긴축”(성태윤 연세대 교수)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의 이런 보수적 재정운용은 경제성장에서 정부가 기여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최근 경향과 배치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4년 성장률(3.3%)에서 정부 기여도는 0.3%포인트였지만, 지난해 성장률(2.6%)에서 정부 기여도는 0.8%포인트로 급등했다. 앞으로 대내외 여건이 적극적 재정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는 “구조조정이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 금리인상에 대해 완충 작용을 할 예산안을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짠물예산이 추경 반복 불러

이렇게 본예산을 보수적으로 편성하면 자꾸 이듬해 추가 재정 수요가 발생하고, 추경을 다시 편성하는 일이 반복된다. 김광석 교수는 “나중에 다시 추경을 편성하지 않으려면 지금 미리 확장적으로 재정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2000년 이후 추경이 편성되지 않은 적이 5번(2007ㆍ2010ㆍ2011ㆍ2012ㆍ2014년)밖에 없고, 현 정부 들어서만 세 차례 추경이 편성됐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정부가 매년 추경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 일부러 본예산을 짜게 잡고 추경으로 반짝 효과를 누리려 한다는 의심마저 든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가 증세 등 세수 확보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결과, 확장도 긴축도 아닌 예산안을 계속 내놓게 된다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윤영진 교수는 “구조개혁은 구조개혁대로 하고 재정총량도 늘려 총수요를 진작할 필요가 있다”며 “지출 구조조정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증세를 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저출산ㆍ고령화에 따른 복지지출 증가로 2019년부터 의무지출(지출 근거가 법령에 명시된 지출)이 재량지출(정의 의지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지출) 규모를 넘어서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지출 구조가 경직성을 띄기 때문에 정부가 경기를 진작시킬 여지를 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날 확정한 2016년 중장기 조세정책운용계획에서도 현재 3단계 세율 구조인 법인세를 단일세율 등으로 단순화하는 방안만 제시했을 뿐, 세율 인상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예산실 관계자는 “추경은 다음해 예산을 당겨 쓰는 것“이라며 “추경을 당해 예산에 포함시켜 다음해 예산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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