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파국으로 가는 급행열차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기호의 다독다독]불평등, 파국으로 가는 급행열차

과거에 아이들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사, 판사, 교수, 기자, 소설가 등의 직업을 답변으로 내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살아남는 것이 장래희망”이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에세이스트 김현진은 우리 사회에는 단 두 가지 선택만이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빈둥거리며 시간제 일자리로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남들의 멸시를 감당하거나, 죽도록 일하고 죽어라 돈 벌고 걸레 짜듯 골수까지 짜낸 다음 50대에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지금 젊은이들은 미래의 희망을 접고 있습니다. 연예,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구입, 희망, 꿈 등을 모두 포기한다 해서 ‘7포세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명문대를 나오거나 해외유학을 다녀오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보고 스펙을 쌓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았다는 ‘이케아 세대’(1978년생 전후)가 좌절한 이후 그 이후 세대는 자신의 ‘이바쇼(居場所, 거처)’조차 마련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습니다. 물론 극히 일부는 예외입니다. 한 언론인이 지적했듯 “지위와 부, 계급이 3대 이상으로 세습되는 체제”에서 부모를 잘 만난 소수의 사람들은 이런 걱정에서 처음부터 비켜나 있습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을까요? 우리 시대의 스승 신영복은 <담론>(돌베개)에서 “지금까지의 성장 패턴을 지속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미 반복되는 금융위기와 장기불황이 그것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전과 욕망의 해방’ 그리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쌍끌이해온 자본주의의 구조와 운동이 거듭 위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20대 기업의 300년간의 세무 자료를 분석해 자본이윤이 소득을 초과해 왔음을 입증하고 양극화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은 국가부채, 가계부채, 양극화, 실업, 경기침체, 집값 하락의 문제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문제입니다.”

경향신문 5월13일자는 지난해에 <한국의 자본주의>라는 문제적 저작을 펴낸 바 있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새정치민주연합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성장과 분배’ 특강에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소득불평등’을 꼽았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장 교수는 “소득격차 확대는 기업이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번 돈을 안에 움켜쥐고 있어서다. 이런 구조에서는 다음 세대에 희망이 없다”며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이 분배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한기호의 다독다독]불평등, 파국으로 가는 급행열차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창비)는 원로학자 백낙청이 ‘젊은’ 전문가들과 만나 우리 사회가 어떤 전환을 이뤄내야 하는지를 묻는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너무 단기적인 현안에 매몰되어 전체를 보지 못하는 현실에서 시대적 전환의 방향과 우리가 해결해야 할 분야별 과제들에 대한 총체적인 안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제편의 대담에서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서민의 사람살이 즉 민생경제가 어려워지고, 중산층이 붕괴되는 것들이 한국 경제의 문제가 되는 거죠.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오래된 주제지만 양극화 문제가 있고, 그와 연관되는 불평등 문제가 있고, 뒤이어 일자리 문제, 특히 아주 좋은 직업이 아니더라도 나쁘지 않은, 괜찮은 일자리가 매우 부족한 상황 등이 겹쳐 있어요”라며 양극화와 불평등을 최대의 현안으로 제시합니다.

정 소장은 이어서 한국 경제는 “거시경제 쪽에서 보면 세 가지가 핵심”이었다고 말합니다. “첫째가 물가를 올리면서 성장률을 높여왔고, 둘째는 환율을 계속 올리면서 수출을 늘려왔다는 것이죠. 물가나 환율이 오르면 우리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개인의 소득이나 자산가치가 줄어들죠. 셋째는 부동산 가격을 올리고 건설경기를 부추기면서 성장했습니다. 이런 세 가지 정책을 쓰면 단기적으로는 성장률이 조금 더 나아질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자산이나 소득의 분배구조를 크게 왜곡합니다. (중략)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꽤 빨리 성장해왔습니다만, 속으로 세 가지 정책의 부작용이 쌓여왔던 것이지요. 그런 부작용들이 모여서” 양극화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시장이 가장 완벽하게 작동할 때조차 불평등은 심화되며, 그런 의미에서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피케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세습 자본주의’로 명명했습니다. “21세기 자본주의는 부모로부터 부와 지위, 신분을 물려받은 상속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신 빅토리아식 계급사회’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21세기 자본>이 화제를 끈 이후 ‘불평등’이 세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번주에는 불평등에 대한 책 두 권이 새로 출간됐습니다. 반세기 동안 소득과 부의 분배 문제를 연구해온 앤서니 앳킨슨의 <불평등을 넘어>(글항아리)는 세계가 처한 불평등의 문제를 투명하게 풀어내면서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포괄적인 정책들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따위 불평등>(이원재 외, 북바이북)은 불평등 문제를 다룬 25권의 책을 분석하면서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지적한 책입니다.

“불평등은 파국으로 가는 급행열차”라고 합니다. 이제 서둘러 우리가 그 열차를 멈춰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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