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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내며 리더십을 생각한다

어제 우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영원히 떠나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눈이 내리는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국가장으로 엄수됐다. 고인의 유해는 서울 상도동 사저와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등을 거쳐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이제 김 전 대통령은 잠들었고, 유지(遺志)를 받드는 일은 남은 이들의 몫이 되었다.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며 고인의 안식을 기원한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시민들이 민주화에 헌신했던 투사,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준 지도자의 삶을 되새기며 애도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3만7400여명, 각 지방자치단체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17만명 가까운 조문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정치인들도 여야 정파를 초월해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유지를 받들겠다는 다짐을 쏟아냈다. 공(功)뿐 아니라 과(過)도 많았던 김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생각하면 이례적으로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지역주의 정치를 고착화하고, 재벌개혁을 놔둔 채 세계화의 구호에 매몰되는 바람에 경제위기를 야기했다. 외환위기 와중인 1998년 2월 쓸쓸하게 퇴임한 그는 ‘성공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는 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한마음이 되어 그를 그리워하는 현상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는 현재 한국 정치와 리더십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일궈내고 시민의 자유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친일 잔재를 과감히 청산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등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섰다. 2015년 한국의 현실과 선명히 대비된다. 박근혜 정권 들어 한국 민주주의는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정당이 강제로 해산되고, 무자비한 색깔론이 판을 친다. 역사교과서는 유신체제 당시의 ‘국정’으로 돌아가고, 법을 집행하는 검찰총장조차 5·16을 쿠데타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김영삼과 박근혜라는 두 지도자의 리더십 또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고인은 선이 굵고 소탈한 스타일이었다. 야당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참모의 직언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민심을 경청하고 존중했다. 박 대통령은 어떤가. ‘불통’과 ‘독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야당을 향해선 소통 대신 폄훼로 일관하고, 장관과 수석비서관은 참모가 아니라 ‘받아쓰기’ 학생들로 전락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실정(失政)에 사과하지 않는 일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정부 정책에 반대해 거리로 나선 시민을 무자비한 테러리스트에 비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와 실천했던 리더십은 지금, 이 땅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근본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고인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질식해가는 민주주의를 되살려내라, 분열과 갈등에서 벗어나 통합하고 화합하라. 애도의 기간은 지나가지만, 고인의 뜻을 계승하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집권세력의 자성과 변화다. 박 대통령은 검경에 의존하는 공안통치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30%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아닌, 모든 시민을 향해 귀를 열어야 한다. 새누리당도 김 전 대통령의 ‘표’를 물려받을 생각 대신 ‘뜻’을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할 때다. 말로만 ‘정치적 아들’ 운운한다고 고인의 계승자가 될 수는 없다.

작금의 민주주의 퇴행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의 책임도 작지 않다. 용기와 결단력이 부족하고, 경쟁할 때와 협력할 때를 구분 못하는 야당 지도자들은 박근혜 정권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거는 데 실패했다. 김 전 대통령은 서슬 퍼런 독재정권에서도 용기와 결단으로 민주화의 대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결기를 보였다.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필요하면 손잡고 협력했다. 야당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를 넘어 그의 신념과 리더십을 되새기고 본받을 필요가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잠들어 있던 한국 사회를 죽음으로써 깨웠다. 역사와 민주주의의 퇴행을 방관하던 시민들에게 각성을 촉구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고인의 가치를 자신의 삶 속에서 부활시킬 책무가 있다. 추모의 열기를 승화시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지역·세대·계층간 통합과 화합에 나서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 이러한 책무에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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