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업주부 보육 차별 합당치 않다

보건복지부가 내년부터 전업주부의 0~2세 자녀 어린이집 무상보육 이용시간을 대폭 제한하기로 했다. 하루 12시간 운영하는 종일반에서 7시간가량만 맡기는 ‘맞춤반’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무상보육 제도를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만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복지 사업 구조조정의 일환이기도 하다. 정부가 정책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합리성을 높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 전업주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정부의 이번 방침에는 전업주부에 대한 차별적 발상이 녹아 있다. 부지불식간에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직장에 다니는 여성보다 낮게 평가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린이집 종일반 공공서비스를 일하는 여성 위주로 재편하겠다고 할 리가 없다.

정부의 이 같은 발상은 부당하고, 비생산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일하는 여성과 전업주부를 편 가르고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백번 양보해 정책의 타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요 시행 대상인 전업주부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방식이라면 성공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다. 교육부가 내년 예산안에 종일제와 맞춤제 규모를 80% 대 20%로 아예 못 박아놓은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미리 틀을 만들어놓고 학부모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지만 현실에 맞지 않는다. 정부가 맞춤제 어린이집 시범사업을 실시했을 때 90% 이상 학부모가 종일제를 선택한 바 있다. 이런 결과를 무시하고 정부가 20% 맞춤형을 강제할 경우 큰 반발과 혼란이 벌어질 게 뻔하다.

지금도 상당수 어린이집은 경쟁률이 높아 장기간 대기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제도가 시행되면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게 뻔하다. 종일반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학부모의 자격이나 기준이 뚜렷하게 정해진 것도 아니다. 전업주부의 개념도 모호하다. 수많은 전업주부들이 아이를 키우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아이를 돌봐줄 다른 가족이 있는지 여부와 경제력 차이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더구나 상당 기간 전업주부의 자녀들까지도 적용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예산 낭비니 정책의 합리화니 하면서 이용 제한을 한다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정부는 이번 정책을 ‘(학부모)맞춤형 보육’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정책 소비자인 국민의 필요가 아니라 공급자인 정부 생각만 반영된 정책을 그렇게 정의할 수 있는지 곱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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