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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이십니다'…유통가 '무분별한 존칭' 자정나서

송고시간2014-10-0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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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서비스 하려다 무생물에도 과도한 높임말 굳어져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말씀하신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포장이세요?', '문의하신 상품은 품절이십니다',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언제부턴가 백화점을 중심으로 유통업계에서는 판매사원 등이 고객을 응대할 때 물건까지 높이는 언어 습관이 굳어졌다.

커피에는 '나오신다'가 아니라 '나온다'는 표현이 맞다. 그런데 '고객 만족'을 위해 친절한 서비스를 하려다가 엉뚱한 대상에까지 불필요한 존칭을 붙이게 된 것이다.

9일 국립국어원 '표준 언어 예절'에 따르면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포장이세요?', '상품은 품절이십니다' 등은 손님이 아닌 사물을 존대하는 잘못된 표현이다.

동사나 형용사에 붙는 선어말어미 '-시-' 는 주로 사람을 높일 때 쓰인다. 다만 상대방의 신체, 심리, 소유물 등을 통해 주어를 간접적으로 높일 때는 '-시'를 써도 된다.

예를 들면 '눈이 크시다', '걱정이 많으시다', '넥타이가 멋있으시다' 등의 표현은 이 같은 '간접 존대'에 해당한다.

그러나 '사이즈', '포장', '품절'은 신체나 심리처럼 고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이 아니다. '사이즈가 없습니다', '포장해 드릴까요?', '품절입니다'가 바른 표현이다.

유통가에서 높여 부르는 대상은 상품뿐이 아니다. '주소가 어떻게 되십니까?', '고장이 나시면 환불해 드립니다', '가격은 3만9천원이십니다' 등 고객과 대화할 때 쓰는 대부분 단어에 존칭을 붙인다고 봐도 무방하다.

왜 이런 잘못된 표현이 난무하게 됐을까. 백화점 등 유통업계는 업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서비스 경쟁에 불이 붙은 점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고객을 높이고 존중해야 하는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고객을 넘어 사물에까지 무심코 과도한 존칭을 쓰는 습관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물 존대를 하지 않으면 불쾌해하는 고객도 가끔 있어 잘못된 표현임을 알아도 고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도 잘못된 언어 습관을 고치고, 올바른 언어로 고객을 맞이하는 것이 서비스의 기본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고객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확산해 사원들이 쓰는 과도한 존칭이 듣기 거북하다는 고객 의견이 각 백화점에 점점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 업계는 잘못된 표현인 사물 존칭을 쓰는 것이 익숙해진 문화를 바로 잡으려는 자정 노력에 적극적이다.

현대홈쇼핑은 지난해 자동주문전화에 꼭 필요한 안내 멘트만 제공하고 과도한 존칭, 불필요한 설명, 서술어 등을 대폭 줄인 '스피드 ARS' 서비스를 도입했다.

롯데백화점은 한글날을 맞아 10월 한 달간 임직원을 대상으로 '우리말 바로쓰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 유의해야 할 높임말 사용법을 직원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4컷 만화로 제작해 사내 통신망에 올렸다.

백화점 관계자는 "사물 존칭이 어법에 어긋난 표현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현장에서 바쁘다 보니 무심코 말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라며 "고객에게 말을 건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캠페인을 기획했다"라고 말했다.

ric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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