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거주… 담장에 보안카메라 5대
승용차 타고 자택 안으로 바로 들어가
밖에선‘스킨십 정치’하나 동네선 없어
서울 강남구 삼성 2동 박근혜 전 대표 자택. 담장 위 대나무 사이로 박 전 대표 방이 있는 2층에 불이 켜진 게 보인다. 11월 16일 저녁 8시20분에 촬영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 2동 박근혜 전 대표 자택. 담장 위 대나무 사이로 박 전 대표 방이 있는 2층에 불이 켜진 게 보인다. 11월 16일 저녁 8시20분에 촬영했다.

지난 11월 16일 오후 3시30분. 서울 강남구 삼성2동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자택 인근은 한적했다. 경기고등학교에서 강남구청 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동네에 자리잡은 박 전 대표의 자택은 한쪽 담은 인근 삼릉초등학교 운동장과, 또 다른 담은 7층짜리 오피스 건물 뒤편과 맞대고 있다. 정문은 차가 한 대 드나들 만한 막다른 골목 안에 있다. 사람의 왕래가 드물 수밖에 없는 곳이다. 대문 맞은편에 아파트 단지가 있지만 3개동에 불과한 소형 단지인 데다 보안이 철저해 잡상인 등 일반인의 출입이 쉽지 않다. 대로변 담장은 높이가 성인 키의 두 배쯤 되는 데다 담장 위로 파란 잎이 무성한 키 큰 대나무들까지 촘촘히 올라와 있다. 밖에서는 집 내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자택에서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대나무 사이로 박 전 대표가 기거한다는 2층 방 창문이 조금 보일 뿐이다. 담에는 모두 5대의 보안 카메라도 설치돼 있다.

승용차 도착 후 2층 방에 불이…

11월 17일 오전 9시37분 박 전 대표의 에쿠스 승용차가 자택을 나서고 있다.
11월 17일 오전 9시37분 박 전 대표의 에쿠스 승용차가 자택을 나서고 있다.

이렇게 한적한 동네에, 더욱이 널찍한 2층 양옥집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유력한 차기지도자가 ‘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요즘 박 전 대표는 차기 대통령 선거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30%를 훌쩍 넘으며 독주를 계속하고 있다. 호남에서까지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등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얻고 있다. 지지율로만 보면 대권고지에 누구보다 가까이 올라서 있다.

박 전 대표의 삼성2동 자택과 동네에선 이런 대중의 환호는 느껴지지 않는다. 지지자들과 여론이라는 바다에 떠있는 박 전 대표이지만 정작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주변과 철저하게 단절된 섬 같았다.

다음날 오전 9시 반 출근 시간까지 박 전 대표 자택을 지켜봤지만 이렇다할 외부인의 출입은 없었다. 박 전 대표 자택을 지켜본 건 어떤 정치인이 박 전 대표를 찾는지, 어떤 외부 인사와 박 전 대표가 접촉하는지가 궁금해서였다. 16일 박 전 대표는 일찍 귀가한 듯했다. 박 전 대표의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가 들어오는 걸 보지 못했는데 저녁 7시쯤 되자 2층 박 전 대표의 방에 불이 켜졌다. 인근 주민들도 “박 전 대표 2층 방에 불이 켜지는 걸로 박 전 대표가 집에 계시다는 것을 알 따름”이라고 했다.

휴가 때도 집에서 보내

박 전 대표 자택 정문으로 들어서는 골목길. 담장 위로 대나무가 크게 자라있다.
박 전 대표 자택 정문으로 들어서는 골목길. 담장 위로 대나무가 크게 자라있다.

박 전 대표는 외출이나 출퇴근 시 바로 자택 내부에서 차를 타고 나온다. 퇴근할 때는 박 전 대표의 승용차가 골목으로 다가서며 클랙슨을 빵빵 울리면 집 대문이 열리고 차는 후진해 집안으로 들어간다. 박 전 대표를 만나러 오는 외부 인사들도 승용차를 타고와 대문에 바짝 차를 댄 후 차에서 내려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누가 찾아왔는지 확인이 쉽지 않다고 한다. 주민들은 “박 전 대표는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주로 집에서 식사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외부 일정이 없으면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이 드물다. 박 전 대표는 여름 휴가도 집에 머물며 독서 등으로 소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동정과 관련해 수시로 나붙는 ‘칩거’와 ‘은둔’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이 집은 박 전 대표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는 작년에 23억1049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는데 이 중 삼성동 자택의 가격이 20억7000만원이었다. 박 전 대표는 대지 484㎡, 연건평 317.35㎡인 이 집을 1990년 7월 구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당동 사저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 성북동 집, 그리고 장충동 집 등을 거쳐 삼성동 집에 안착한 이래 20년간 이 집을 떠나지 않고 있다.

취재 중 만난 동네 주민들은 ‘20년 주민인 박근혜’를 그리워했다. “얼굴 한번 보고 싶다”는 말들이 적지 않았다. 박 전 대표 집 앞 삼거리에서 테이블 10여개가 있는 식당을 운영 중인 50대의 한 여주인은 “5년 됐지만 박근혜 대표 얼굴 한번 못봤다. 경기도 어려운데 집을 나서서 주민들한테 한마디라도 건네줬으면 좋겠다. 집에서 차를 타고 바로 나오니까 얼굴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인근 롯데캐슬킹덤아파트에 산다는 50대 남성은 “우리 아파트 사람들 대부분이 박 전 대표가 바로 옆에 산다는 걸 안다. 수년간 얼굴 한번 못봤지만 박근혜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 같은 대중 정치인들은 사실 ‘동네 정치’에 능하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서민적 이미지를 풍기며 매력적인 에피소드와 사진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현역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이웃집 주민들과 격의 없는 우정을 쌓았고 ‘상도동 주민’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그가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연금 당시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눴던 이웃집 학생, 동네 배트민턴 모임 회원 등 많은 이웃들이 기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서민 대통령’의 우군이 됐다. 물론 독신인 박 전 대표를 남성 정치인들과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남성 경호원들의 호위 속에 집 밖으로 나서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피습 공포로 보안 신경 쓰는 듯

박 전 대표의 집이 완전한 출입 금지 구역은 아니다. 박 전 대표 역시 집을 개방한 적이 있고 그 자체가 대단한 화제가 됐다. 예컨대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2007년 2월 팬클럽인 ‘박사모’ 회원 20여명을 초청해 생일파티를 열었다. 박 전 대표는 역시 대선의 해였던 2002년 1월에도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을 자택으로 저녁식사에 초청해 화제를 뿌렸다. 당시 박 전 대표는 “넘치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미의 ‘계영배’라는 술잔을 선보여 관심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자택의 문이 열리는 것은 이처럼 큰 선거 기간 몇 번뿐이었다. 선거가 끝나면 다시 문은 굳게 닫힌다. 박 전 대표는 언론과도 2007년 한나라당 경선 이후에는 개별적인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특별한 현안이 있을 때 국회 본회의장에서 출입기자들과 집단으로 만나 짤막하게 입장을 밝혀온 게 전부였다.

박 전 대표가 자택에 일종의 ‘벽’을 쌓은 가장 중요한 이유로 주변 측근들은 ‘신변 안전’을 꼽는다. 박 전 대표는 잘 알다시피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당 대표로서 유세 중 피습을 당한 바 있다. 또 2009년에는 30대의 한 남성이 “나쁜 사람들로부터 박 전 대표를 구해야 한다”며 자택 담을 넘어 화단까지 들어왔다가 붙잡힌 일도 있었다. 더욱이 박 전 대표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불의의 사건으로 잃었다. 본능적으로 신변 안전과 보호에 대해 철저할 수밖에 없다. 가장 대중적인 정치인이면서도 대중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리기에는 뭔가 어려움과 한계가 그의 인생역정에서 묻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에서부터 풍기는 ‘은둔의 지도자’라는 인상은 요즘 박 전 대표의 공적 이미지와는 영 동떨어져 있다. 요즘 박 전 대표는 대외적으로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여의도에서는 당 소속 의원들과의 모임도 잦고 따뜻한 스킨십을 강조하는 듯한 언행도 보이고 있다.

11월 16일 박 전 대표의 방은 9시30분쯤 불이 꺼졌다. 박 전 대표가 잠자리에 든 듯했다. 다음날 새벽 5시30분쯤 방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오전 7시에는 경비인 듯한 사람이 들어가고 또 다른 경비인 듯한 사람은 집에서 나왔다. 오전 9시에는 비서가, 오전 9시27분에는 운전기사가 출근했다. 10분 후 박 전 대표의 차가 집을 나섰다. 박 전 대표가 차에서 내려 혹시 동네 가게라도 들르지 않을까 잠시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11월 17일 아침 운전기사로 보이는 사람이 출근하고 있다.
11월 17일 아침 운전기사로 보이는 사람이 출근하고 있다.

11월 17일 새벽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집 밖에 나왔다.
11월 17일 새벽 경비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집 밖에 나왔다.

정장열 차장 /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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