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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의 위험한 세계화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생전에 박완서 선생은 시장 가서 흥정을 안 하셨다고 한다. 깎는 것도 재미란 말에, 저 물건은 상인들에게 목숨일 텐데 목숨으로 재미 삼는 것 아니라고도 하셨다 한다. 멀리 유럽에도 그런 말이 책 속에 나온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생선의 위험한 세계화

“당신이 사려는 건 생선이 아니에요. 사람의 목숨이지.”

대구 값을 깎으려는 손님에게 내비친 생선장수의 호소였다. 월터 스콧의 <골동품 연구가>라는 책에 나와 있는 대목이라고 한다. 명태잡이 원양어선 오룡호 침몰 사건을 겪고 이 말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도대체 먹고사는 게 무엇이길래 그들을 더 차가운 바다에 묻었나 싶다. 이미 바다는 낭만과 미식의 젖줄로 칭송받기에는 너무도 황폐해졌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2048년에는 바다에서 모든 식용 가능한 어류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에이 설마, 하겠지만 이미 그 전조는 충분히 우리에게 경고를 날리고 있다.

잡힌 지 오래된 우리 바다의 명태만 해도 그렇다(그것이 오룡호 사태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끊임없이 먹어야 했고, 사라진 명태를 찾아 더 차가운 북양 바다로 원양어선을 보냈으니까 말이다). 요즘 동해 청어가 좀 잡힌다고 하는데, 진짜 맛있는 청어는 서해 것이라고 한다. 물론 구경할 수 없다. 꽁치는 또 어디로 갔는가. 가을 겨울이면 푸른 등을 내놓고 반짝이던 시장 좌판의 그 싱싱하고 배 불룩한 꽁치. 기름이 잘잘 흐르는 그 생선도 도대체 구경하기 어렵다. 간혹 보이는 것도, 날렵하면서도 커다란 옛 그 꽁치가 아니다. 오징어가 흔전만전이던 시절도 간 지 오래다. 갈치가 귀해서 아프리카 앞바다에서 가져오고, 문어 역시 인도양과 아프리카산이 흔하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생선의 위험한 세계화

음식쓰레기는 자꾸 만들어낼지언정 먹성과 소비욕구는 줄지 않으니, 어디선가 잡아다 바치는 생선으로 밥상을 차린다. 그 바다는 어디 남의 바다이고, 지구의 바다가 아니던가. 여담인데, 한 한정식집에 갔다가 벽에 써 놓은 원산지 안내판을 보고 정말 경악했다. 대략 30개 나라 가까운 원산지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던 것이다. 이미 우리 입과 먹성은 하지 말래도 세계화를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세계화는 음식의 수직적 공급과 소비 사슬에서 정확하게 구현되고 있다. 수입 식품은 당연한 일이고, 농축수산물을 생산하는 다수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오룡호 선원 역시 다수가 그러하였다). 그것을 재료로 가공하는 이들도 다수가 외국인이며, 식당에서 생산하는 이들도 많다. 한국의 말단 요식업의 40% 정도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요리하고 시중든다. 우리는 남의 공덕과 목숨으로 먹고산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오룡호가 그랬거나 말거나 지금도 세계의 어장에는 우리 어선들이 묵숨 걸고 나간다. 줄어든 어족을 두고 세계의 배들과 경쟁하며 그물을 내린다. 그렇게 잡은 생선으로 마트 진열대를 채운다.

찌개를 끓이려고 목숨 값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값싼 동태를 토막쳤다. 그래도 누군가는 먹고살아야 하는 게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참 쓰디쓴 세상이다. 새해에는 아무도 배곯지 않고, 아무도 먹는 일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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