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30년 시차로 미국 불평등화 따라가…사회 보수화가 원인"

주영재 기자

“미국 사회의 불평등화 과정을 연구하면서 우리 사회가 약 30년의 시차를 두고 미국 사회가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음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韓, 30년 시차로 미국 불평등화 따라가…사회 보수화가 원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65·사진)는 한국이 ‘승자독식(winner-take-all)’의 불평등한 사회가 된 미국의 뒤를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평등화의 주요 원인으로 정치·사회의 보수화를 들었다. 이 교수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분배문제, 절대로 미국을 닮아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이같이 밝혔다.

이 교수는 소득의 불평등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를 비교하면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불평등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 발전으로 숙련 노동자와 미숙련 노동자 사이의 임금격차가 커졌으며, 세계화로 외국의 값싼 물건이 수입되면서 미국 내 미숙련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가설로 미국 내 불평등 확대를 설명할 수 있지만 이는 미국 사회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불평등화 요인으로 정치와 사회의 보수화를 들었다. 그는 미국정치가 1970년대 후반부터 기업과 부유층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금권정치(plutocracy) 경향을 강하게 띠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기업과 부유층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보수적 정치인을 지원하고 한편에선 보수적 이념을 확산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감세와 정부지출 축소, 규제 완화가 경제 성장을 위한 유일한 해법이라는 주장을 퍼트리기 위해 보수 성향의 기업과 학계, 정치권, 언론이 하나의 연합체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리티지재단, 카토연구소 같은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가 속속 만들어지고 경제학계에서도 보수적 이념의 소유자들에게 아낌었는 재정적 지원이 이뤄졌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발표 즉시 보수적 언론매체에 의해 대중에 유포되기 시작했다”며 “보수적 싱크탱크, 보수적 경제학자, 보수적 언론매체는 마치 서로 짜기라도 했듯 이와 같은 이념의 확산을 위한 체계적인 분업조직을 일궈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 세력의 뒷받침으로 정권을 잡은 공화당이 노골적으로 승자독식의 정치를 시작했다”며 “자신의 정치 기반인 기업과 부유층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 그들의 수중에 더욱 많은 소득과 부가 집중되는 결과를 빚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세율을 낮춰주면 경제가 성장하고 조세수입도 커진다는 주장을 ‘허황된 예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감세와 정부 지출 감소, 규제완화는 부자들에게 이득을 주는 데 그쳤을 뿐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는 어떤 효과도 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한국이 같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실패로 평가받은 것과 달리 한국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시대착오적 실험’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수 세력이 자신들의 이념을 확산하기 위해 벌이는 노력도 한층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보수 세력의 첨병 역할을 하는 싱크탱크로 재벌의 지원을 받는 한국경제연구원과 자유경제원을 들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적 싱크탱크가 갖는 영향력은 이제 무시 못 할 수준까지 커져있다”며 “더군다나 미국과 달리 보수 언론이 독점구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적극적 홍보로 보수적 싱크탱크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보수 이념의 전도사가 된 ‘동료’들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법인세율을 낮춰준다 해도 실제로 투자가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한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진실을 감히 입 밖에 내는 경제학자는 극히 드물다”며 “경제학자란 직업을 가진 사람은 거의 모두가 신자유주의 이념의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슬픈 현실이다”고 전했다.

그는 “시장은 미덕이며 정부는 악덕이라는 믿음으로 모든 측면에서 시장의 역할을 늘려 가면 과연 우리 눈앞에 낙원이 펼쳐질 것인가. 끊임없이 세금을 줄여가고 이에 따라 정부가 하는 일도 줄여 가면 우리 경제의 활력이 나날이 커질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실험은 가진 자의 이익만을 노골적으로 비호하고 있다며 미국과 같은 승자독식의 정치가 절대 발을 붙여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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