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희호 여사 면담 회피한 김정은, 남북대화 팽개쳤나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인 이희호 여사가 그제 3박4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방북 기간 중 이 여사는 대남실무를 총괄하는 맹경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영접과 안내로 북한의 어린이 및 여성병원, 묘향산 관광지 등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만나지 못했다. 김 제1비서는 맹 부위원장을 통해 “이 여사의 평양 방문을 환영한다”고 전했고, 이 여사는 “김 제1비서의 초청과 환대에 감사하고,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전해달라”고 말했다. 꽉 막힌 남북관계를 푸는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이 여사가 김 제1비서를 만났으면 했던 일말의 기대감이 깨져 무척 아쉽다.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 제1비서가 친서로 이 여사를 평양으로 초청할 때만 해도 두 사람이 만나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논의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그 기대는 남한 당국이 이 여사에게 아무 역할을 맡기지 않았다고 하면서 반으로 줄었다. 통일부가 “(이 여사) 방북이 의미는 있지만 정부 차원의 메시지는 없을 것”이라고 했으니 김 제1비서로서도 이 여사를 만날 의욕이 반감됐을 것이다. 없는 길도 뚫어가며 남북관계 개선에 앞장서야 할 통일부가 남이 마련한 기회마저 발로 찬 꼴이다. 그러면서도 올 추석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하겠다니 어떻게 무슨 수로 성사시키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가장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여준 인물은 이 여사를 초청해 놓고 외면한 김 제1비서다. 자신의 이름으로 초청했다면 이 여사를 직접 만나는 게 정상이고 그게 예의이다. 93세 고령의 나이에 방북한 이 여사 앞에 김 제1비서 자신은 고사하고 김양건 아태평화위 위원장마저 나오지 않았다. 결례가 아닐 수 없다. 이 여사의 방북 의미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로 작정하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행태이다. 그 때문에 이 여사가 준비되지 않은 방북을 서둘렀다는 소리까지 들리는 판이다. 남북대화의 계기를 차버린 북한은 이제 빈말로라도 대화를 언급할 자격을 잃었다. 사실 면담 거부는 남북 간 냉랭한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신호를 남측에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남측을 비난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여사 방북 결과는 임기 반환점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음을 웅변해주고 있다. 남과 북은 그동안 상대가 먼저 신뢰를 보여주어야 나도 움직인다며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왔고, 그 때문에 남북대화가 단절되었다. 한반도는 곧 광복 70주년을 맞는다. 박 대통령과 김 제1비서는 역사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Today`s HOT
독일 연방의회에서 연설하는 젤렌스키 G7에 기후재정 촉구하는 필리핀 시위대 플라스틱 쓰레기 수출 막아달라 칠레 폭우에 대피하는 주민들
푸에르토리코의 날 이강인의 한 방! 중국에 1-0 승리
브라질 습지대 화재 노젓는 홍콩 용선 축제 참가자들
프랑스 극우정당 반대 시위 나치 학살 현장 방문한 프랑스·독일 정상 가자지구 국경 근처 이스라엘 군인들 맵다 매워~ 고추먹기대회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