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마왕’ 신해철

김석종 논설위원

마왕(魔王)에게서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는 동서양에 걸쳐 수도 없이 많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경전에도 악역으로 등장한다. 괴테는 덴마크의 마왕 설화에 영감을 받아 ‘마왕’이라는 시를 썼다. 마왕(에를쾨니히)이 아이를 죽음의 세계로 끊임없이 유혹하는 이야기다. 슈베르트가 18세 때 이 시를 읽고 감동해서 곡을 붙인 게 저 유명한 가곡 ‘마왕’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마왕이 수많은 판타지 게임, 만화, 소설 등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마왕이 영웅으로 바뀐 시대다.

한국 가요계에서 조용필은 가왕(歌王), 신해철은 마왕으로 불린다. 신해철이 ‘무한궤도’로 대학가요제에 나갔을 때 심사위원장이 조용필이었다. 마왕은 가왕의 도움으로 첫 앨범을 냈다. 그리고 솔로와 넥스트의 리더로 ‘그대에게’ ‘날아라 병아리’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안녕’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인형의 기사’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등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다.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마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마왕답게 정치적 성향을 과감하게 드러냈고, 사회적 발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동성동본 연인들을 위해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불렀고, 환경보호 콘서트 ‘내일은 늦으리’에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방송 시사토론 프로그램에 나가 간통죄 폐지, 학생 체벌 금지, 대마초 흡연 허용 등을 주장했다. 영어 몰입 교육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강한 카리스마, 거침없는 독설과 입담으로 광신도를 거느렸다. “기본적인 게 뒤틀렸어요. 강물이 오염됐으면 어디서부터 썩었는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해요.”

음악적으로 천재였고 인간적으로 담대했던 ‘마왕’ 신해철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방송마다 신해철이 생전에 “내 장례식장에서 울려 퍼질 곡이고 노래 가사는 내 묘비명이 될 것”이라고 했다는 ‘민물장어의 꿈’이 흘러나오고 있다.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굿바이,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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