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누더기 바지 보라” 5년 긴축 ‘분노’ 활활

아테네 | 정유진 특파원

아테네 광장 국민투표 찬반 시위

“유전 찬성, 무전 반대”…혼란 우려

그리스 아테네 중심부, 정부청사와 의사당이 밀집돼 있는 신타그마 광장은 오는 5일 구제금융 협상안 수용 여부 국민투표를 앞두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시위가 연이어 열리고 있는 ‘격전지’다.

1일 낮 찾은 신타그마 광장 일대에서는 찬성 여론이 우세하다는 최근 외신 보도와 달리 반대 목소리가 매우 커 국민투표 결과를 가늠할 수 없어 보였다. 이날 발표된 현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 중 54%가 반대표를, 33%가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혀 1주일 만에 반대 여론이 찬성을 큰 폭으로 앞섰다.

셔터를 내린 재정부 청사 앞에서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들이 “긴축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손팻말을 들고 개별 시위를 벌이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한 무리의 시위대는 그리스은행 앞으로 간다면서 가두행진을 했다. 수많은 외신기자들이 시위대와 뒤섞여 취재경쟁을 벌였다.

광장에 모인 이들은 “지난 5년간의 고통스러운 긴축을 더는 견딜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직원 20명짜리 기술업체 회사 사장이었던 그리스토스 파파아타나시우(57)는 기자가 “긴축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내 바지를 한번 보라”며 누덕누덕 기운 자신의 바지를 가리켰다.

그는 긴축으로 인한 경제난 때문에 공사 수주를 따내지 못해 회사가 망했다고 설명하며 “연금으로 생활하는 부모님의 원조를 받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소위 그리스 ‘복지병’의 주역이라고 비난받았던 연금 수급자들은 이처럼 직장을 잃은 자녀까지 부양하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로존 탈퇴가 가져올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퇴직교사인 소피아(60)는 “지난 5년간 계속된 긴축은 너무 지긋지긋하지만, 국민투표에서 반대 측이 승리해서 더 큰 혼란이 벌어지는 상황은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회학을 전공했다는 대학생 마리아(22)는 “반대에 투표할 예정이지만 유로존에서 탈퇴하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그리스 국민들의 의지를 보여주고,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에게 협상력을 실어줘 긴축이 완화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로존 채권단에 대한 반감은 매우 컸다. 2년 전 실직한 알렉산드로 니쿠리스(35)는 “돈이 있는 사람들은 찬성에 투표하려 하지만 나처럼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반대 입장”이라고 말했다. 하루에 60유로밖에 인출할 수 없다는 제한이 걸려있지만, 곳곳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마다 10명 이상이 돈을 찾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날 그리스 전역의 은행 1000곳이 입출금카드가 없어 ATM에서 돈을 찾을 수 없는 고령의 연금생활자들을 위해 잠시 문을 열어 노인들은 새벽부터 은행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최근 사태가 악화되면서 연금과 각종 수당은 큰 폭으로 깎였다. 시내 한 ATM 앞에서 만난 10개월 된 쌍둥이의 엄마 실비아(46)는 “매달 1일 양육수당을 250유로씩 받아왔는데 지금 확인해보니 50유로밖에 들어와 있지 않다”며 “수당으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집세와 각종 공과금을 어떻게 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열리는 양육수당과 실업수당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할 예정이다. 그리스 시민들의 고통은 더욱 깊어지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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