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의 소급적용 조치만으로 불씨를 완전히 잡은 게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5월에 2차 연말정산 대란이 올 겁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등을 지낸 고위관료 출신인 A씨는 22일 기자와 만나 “연말정산 대란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며 이렇게 우려했다. 일부 항목에서 소급적용이 되더라도 형평성 논란, 불리한 연말정산 항목에 대한 조세저항 등이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번 연말정산 대란을 낳은 2013년 세법 개정안이 만들어지고 국회를 통과한 전 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며 “그 과정 속에 대한민국 조세정책의 총체적인 문제가 다 들어있다”고 말했다.
[연말정산 2차 대란 예고] "파워 게임으로 세제실 누른 예산실…연말정산 대란 불렀다"
○세액공제 전환, 방향은 맞지만…

정부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세법개정안을 검토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그동안 검토만 하고 이를 세법에 반영하지 못했던 것은 근로소득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고 봤기 때문. A씨는 “고소득 근로자의 부담을 높이고 누진세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것은 언젠가는 가야 할 수순이라는 것을 기재부 세제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며 “다만 파급효과가 너무 클 것으로 예상해 충분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계획이었다”고 공개했다.

이에 따라 2010년대 들어 세제실은 세액공제로 급격히 전환하는 것이 어렵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아울러 근로자들의 박탈감 등을 고려해 공제 항목별로 단계적 도입, 공청회 개최, 심층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세제실의 이런 방침은 2013년 갑자기 무너져버렸다. 세수 부족으로 안(예산실 등)과 밖(국회)에서 독촉을 받으면서 충분한 검토를 하지 못했다는 게 1차적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보다 앞서 세입예산을 짜는 과정에서 세제실과 예산실 간 견제와 균형도 깨졌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초대 기재부 장관에 취임한 현오석 부총리는 세제실과 예산실을 2차관 아래 배치했다. 서로 견제해야 하는 두 실이 함께 일하면서 2013년 세법개정안의 재앙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세제-예산, 견제와 균형 찾아야

기재부의 세제실과 예산실은 매년 예산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한다. 돈을 써야(재정지출) 하는 입장인 예산실은 매년 많은 요구를 하는 반면 뻔한 세수를 갖고 살림살이를 꾸려야 하는 세제실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실 간의 대립은 국가재정 균형을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이런 세제실과 예산실이 2차관 소속으로 배속되면서 견제와 균형이 사라졌다. 예산실 출신인 2차관은 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세법개정안 역시 예산실의 요구에 맞춰졌다는 것이다.

국회 역시 돈을 써야 하는 입장이다. 세제실이 우려한 세액공제 전환의 파급효과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은 채 2013년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A씨는 “복지수요가 급증하면서 국회와 예산실의 요구사항은 점점 커질 텐데 정부가 세제실과 예산실의 견제와 균형 방안을 찾지 못하면 이번 연말정산 대란과 같은 문제는 앞으로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당시 성급하게 세액공제를 도입했다가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다시 성급하게 일부에게 혜택을 소급해서 돌려줄 경우 혜택에서 소외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추가적인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다.

1990년대 재무부 장관을 지낸 전직 고위관료 B씨도 A씨의 이런 분석을 뒷받침했다. B씨는 “세액공제 방식의 연말정산이 충분한 설명이나 이해없이 도입되면서 납세자들이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는 게 큰 문제”라며 “출생입양공제 부활, 다자녀공제 확대 등 땜질식 처방으로는 민심 이반을 해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충분한 검토 없이 세액공제로 전환했던 2013년의 세법개정안을 전면 무효화하고 원점에서 다시 세법을 만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