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미국인 억류자들을 모두 풀어줬나···오바마 친서 김정은에 전달

워싱턴|손제민 특파원

북한이 장기 억류했던 케네스 배(46)와 매튜 밀러(25) 두 명의 미국 시민들을 8일(한국시각) 전격 사면, 석방했다. 북한이 지난달 재판에 회부되지 않은 미국인 억류자 제프리 파울을 아무런 조건 없이 풀어준데 이어 이미 실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이었던 나머지 두 사람도 풀어줌으로써 미국에 분명한 관계개선 신호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7일 비밀리에 평양에 도착한 미국 정보기관의 수장인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장(DNI)에게 이들의 신병을 인도했다. 클래퍼 국장은 8일(미국시각) 짤막한 성명을 통해 두 사람이 석방된 사실을 공개했다. 두 명의 미국인은 이날 클래퍼 국장과 함께 괌 미군기지를 거쳐 두사람의 고향이 있는 미국 서부해안으로 향하고 있다고 DNI는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로레타 린치 신임 법무장관 지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그들이 안전하게 돌아오게 돼 매우 감사하다. 클래퍼 국장도 힘든 임무를 잘 해결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클래퍼 국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게 전달했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클래퍼 국장이 오바마 대통령 친서를 갖고 갔는지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확인해주지 않았다며 그는 “(북한측) 견해를 듣고” “우리(미국) 입장을 되풀이하러” 갔다고 전했다. 그가 김 비서를 만났는지는 전해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유엔에서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법정(ICC)에 회부하는 내용 등이 담긴 총회 결의가 추진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미국인 억류자들을 풀어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미 유엔 제3위원회에 상정된 결의안에 포함된 내용이 북한의 요구 때문에 삭제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북한이 인권결의안 수정을 위해 이들을 풀어줬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미국 중간선거 직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고, 내주 초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북한이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중 최고위 현직 당국자인 클래퍼 국장을 보냈다는 점에서 임기를 2년 남겨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 적극적인 대화에 나설지도 주목된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가 없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인내’ 기조를 유지해오고 있다.

북한이 3명의 미국인들을 모두 풀어줌으로써 오바마의 감사 인사를 끌어내기는 했지만 미국이 당장 아무런 조건없이 북한과 만나 6자회담을 재개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동등한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대화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비핵화가 대화 주제가 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 입장에서는 국무장관 케리가 오기를 가장 원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정보기관의 수장을 보낸 것은 대북정책의 변화와는 선을 그으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정보기관의 수장이 북한에 가게 된 이유들 중 하나는 나중에 일이 잘못되었을 때 그가 다른 행정부 관리보다 부담이 가장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클래퍼 국장이 북한과 미국이 가진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주고 받았다는 점에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예비적인 북·미 당국간의 대화가 열릴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군축담당특보가 주장해온 ‘탐색적 대화’로서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고위당국자간에 직접 만나 의사를 타진해보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9일 APEC 정상회의 참석과 중국 국빈방문을 위해 중국 베이징으로 출발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1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에번 메데이로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7일 워싱턴 외신기자클럽에서 ‘북한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낼 것이냐’는 물음에 “두 정상이 어떤 얘기를 할 지 예측할 수 없다”며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 의제에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동북아의 안정에 대한 주요 위협들 중 하나라는 점”이라고 답했다. 그는 “미국의 입장은 미·중간에 비핵화가 최우선순위이고, 거기에 대한 중국의 강한 동의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진핑의 지도 하에서는 비핵화가 최우선순위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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