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읽고 전시회 초대권 받자!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임금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원청으로부터 기성(도급비) 2억7000만원을 받았는데 빚을 갚고 나니 1000만원밖에 남지 않았단다. 그래서 월급은 물론이고 퇴직금도 줄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하청업체로부터 공탁금을 받아놓은 게 있지 않으냐고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에 찾아가 따져 물었다. 그런데 그 돈마저 하청 사장에게 이미 가불 형식으로 지급해서 남은 게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현대미포조선에서 배를 만들어온 KTK라는 하청업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세상읽기]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임금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도급비를 후려친 건 원청이었다. 회계장부상으로는 지난해 말 현재 사내유보금만 15조6000억원, 현금 및 현금성자산만 2조200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현대중공업그룹 안에서만 올해 들어 10개 안팎의 하청업체가 폐업을 해서 노동자들 임금과 퇴직금만 날려먹었다. 게다가 오래된 하청업체들을 중심으로 폐업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경우 임금만이 아니라 학자금 혜택도 날아가버린다. 조선업종에서는 하청 고급인력을 잡아둘 목적으로 하청업체들이 학자금을 보장하는 경우가 상당히 있기 때문이다.

법정 최저시급(5580원)으로 하루 8시간 일해서 116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자고 한다. 하루 5.5시간 근무에 95만원을 준다는 거다. 시간당 임금은 올랐지만, 월 임금 총액은 20만원 이상 깎였다.

더 황당한 얘기는 이 노동자들이 하루에 일하는 총량은 하나도 줄지 않았다는 거다. 국내 최고 사립 명문대인 연세대와 그 하청업체인 세안텍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대학 구조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비용을 절감한다며 가장 먼저 청소·경비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용역업체 도급단가부터 깎아버린 거다. 수천억원의 적립금을 쌓아놓고 있는 대학, 수백억원을 들여 지하주차장 공사를 하고 있는 연세대, 그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하는 현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임금은 최저임금”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노동자들의 임금(월급봉투)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10대 재벌 사내유보금이 500조원을 넘어섰지만, 그들은 주요 업무 대부분을 하청화·외주화해버렸다. 도급단가만 후려치면 이윤이 늘어나는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다. 하청 사장도 배째라 식이다. 도급비를 받아서 자기 빚 갚는 데 가장 우선적으로 써버리고, 하청노동자 임금은 맨 마지막 순서이지 않는가. 그렇다고 정부가 이런 사장들을 감옥에 보내기라도 하던가?

업무를 하청 줘버렸으니 노사관계를 뒷감당할 이유도 없다. 도급비 삭감의 결과는 모조리 하청노동자 월급봉투 쥐어짜기로 이어진다. 하청노동자들이 열 받아서 노조라도 결성하고 임금 좀 그만 깎으라고 외치면, 재벌 원청기업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뒷짐을 지고 있다. 당연히 하청노동자의 분노는 재벌 원청사를 향한다. 우리는 현대미포조선에서 배를 만든 것이지, KTK 업체의 배를 만든 게 아니다. 우리는 연세대 기숙사를 청소한 것이지, 세안텍스 건물을 청소한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를 직접 부려먹은 진짜 사장 현대미포조선과 연세대가 직접 임금과 고용을 책임져라! 하청노동자들은 어제의 그들이 아니다. 이제 당당하게 진짜 사장을 향해 동료들과 손을 잡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재벌 원청은 이미 업무의 대부분을 하청 줘버렸기 때문에 노동자들 대부분이 하청, 하청에 재하청으로 하락해왔다. 더 빼앗길 수 없는 최저임금 수준까지 내몰렸는데, 여기에 5.5시간 일자리를 만들며 최저임금마저 빼앗으려 한다. 그렇다면 진짜 사장들을 향해 우리 모두 같이 외쳐보자. 임금을 임금답게 대접하라고 말이다.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 월 209만원으로 대폭 인상하자고!


Today`s HOT
정부 원주민 정책 비판하는 뉴질랜드 시위대 타히티에서 서핑 연습하는 서퍼들 뉴욕 법원 밖 트럼프 지지자들 중국-아랍국가 협력포럼 개최
abcd, 스펠링 비 대회 셰인바움 후보 유세장에 모인 인파
의회개혁법 통과 항의하는 대만 여당 지지자들 주식인 양파 선별하는 인도 농부들
남아공 총선 시작 살인적 더위의 인도 이스라엘 규탄하는 멕시코 시위대 치솟는 아이슬란드 용암 분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