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부터의 화신(花信)을 타고 어김없이, 마침내 봄이 진군해 오고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이성부 ‘봄’ 중)
봄의 전령은 꽃이다. 봄꽃이 피어나는 순서를 ‘춘서(春序)’라고 했다. 당나라 시인 백낙천의 ‘춘풍’에서 유래한다. “봄 기운에 뜨락의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나고/ 뒤이어 앵두 살구 복사 오얏꽃이 차례로 핀다.” 봄을 맨 먼저 알리는 ‘일지춘색(一枝春色)’의 매화를 선구로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이 차례로 난분분해지면서 봄은 절정으로 내닫는다.
날씨의 변덕으로 매년 개화 시기가 다르고, 심화되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간혹 꽃 피는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기도 하지만 ‘춘서’의 뼈대는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상청 조사 결과 봄꽃의 표상인 개나리·진달래·벚꽃의 개화 시기가 40년(1971~2010년) 만에 4~7일가량 빨라졌지만, 개나리-진달래-벚꽃 순으로 꽃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 아름다운 봄꽃의 개화를 시인 안도현은 “한번도/ 꽃 피는 순서/ 어긴 적 없이// 펑펑,/ 팡팡,/ 봄꽃은 핀다”(시 ‘순서’ 중)고 놀라워한다. 올해도 지난 19일 제주도 서귀포에서 개나리가 개화한 것을 시발로 진달래, 벚꽃이 차례로 꽃을 피운 뒤 시속 1㎞ 남짓한 속도로 북상을 계속해 이달 하순쯤부터 서울에 당도한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춘서’가 있기에 백화(百花) 봄꽃들을 각기 마중할 시간과 장소를 미리 마련할 수 있을 터이다. ‘빨갛게 멍이 든’ 동백은 남해 지심도와 보길도 등지에 지금 한창이고, 산수유꽃은 다음달 초 지리산 자락을 온통 수놓는다. 같은 시기 북한산 둘레길 평창마을 구간에 산벚나무꽃이 만발한다. 4월 중순에는 내장산에서 진달래를, 태안 해안에서 해당화를 맞이할 수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소개한 ‘봄꽃 맞이 지도’이다.
꽃은 보는 것보다 기다릴 때 간절하다고 했던가. ‘춘서’에 따라 향연을 시작한 봄꽃의 북상 소식에 ‘길고 긴 겨울’을 털어낼 힘을 긷는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이 봄날에 어떤 꽃을 피울 것인지 각자 한번 살펴보십시오”(법정 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