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변신, 겁나게 재미지네~

광주 | 글·사진 최병준 선임기자

‘놀 줄 아는’ 사람들의 도시 광주에서 놀다

■ 대인시장: 살아있다

여학생 두 명이 지도 한 장 들고 대인시장을 기웃거렸다. 블로그를 통해 광주시 동구 대인시장을 알았다고 했다. 부산에서 시장 구경하러 여기까지 왔단다. 광주 대인시장에는 가끔 이런 젊은이들이 보인다. 대인시장은 겉에서 보면 별다를 바 없는 시장통이다. 그런데 시장통 구석구석의 희한한 벽화, 특이한 간판들이 눈에 띈다. 대부분 예술가들이 제작한 ‘작품’이다. 부산 출신 그래피티 작가 구현주씨가 그린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벽화가 있는가 하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장미란 선수를 셔텨문에 그린 ‘으라차차 장미란’도 있다. 마산에서 온 프로젝트팀 쏠은 돼지해체작업장 벽면에 돼지들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묘사한 ‘돼지천국’을 그렸다. 뭘 그렸는지 좀 난해하긴 했지만 슈퍼주니어의 은혁과 신동이 그린 간판도 있다. 작품은 미술관처럼 폼나게 조명을 받고 있지 않다. 평범한 옷가게 간판이나, 취객이 오줌 누던 골목담장에 그린 그림이 작품이다. 허름한 가게 옆에, 꽤 세련된 공방도 보인다. “참 재밌는 시장이네?”

광주 대인시장에는 벽화가 많다. 이 벽화는 40년 동안 손수레 노점을 해온 하문순씨를 그린 ‘하문순 아짐’이란 작품이다. 하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눠줬다고 한다.

광주 대인시장에는 벽화가 많다. 이 벽화는 40년 동안 손수레 노점을 해온 하문순씨를 그린 ‘하문순 아짐’이란 작품이다. 하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눠줬다고 한다.

출발은 2008년 광주 비엔날레였다. 박성현 큐레이터, 윤남웅 작가, 박문종 작가 등이 비엔날레 현장 프로젝트 ‘복덕방’의 일환으로 아름다움을 판다는 의미의 매미(賣美)시장을 대인시장 안에 열었다. 관람객들이 솔깃해했다. 당시는 시장이 한창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때다.

대인시장은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0년 옛 광주역 동편 공터에서 주민들이 물물교환을 시작하면서 형성됐다. 금남로 도청까지 걸어서 불과 10분거리. 과거에는 버스터미널도 인근에 있었다. 주변에 광주시청, 한국은행, 전매청 등이 있었다고 한다. 사시사철 북적거리던 시장은 주변 관공서들과 터미널 등이 이전해 위기를 맞았다. 1998년에는 인근에 롯데백화점이, 2007년에는 홈플러스가 들어섰다. 점포만 360여개로 광주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인 대인시장도 손님이 빠져나갔다. ‘휘청’했다.

시장에 빈 가게들이 생기자 예술가들이 들어왔다. 현재 예술가 40여 명이 작업을 한다. 청년 상인 7명도 시장에 똬리를 틀고 장사한다. 2011년부터 예술가들은 ‘별장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혹한기와 혹서기를 제외하고 한달에 한 번 이틀씩 야시장을 열었다. 청년들이 와서 공산품이 아닌 수제품을 팔게 했다. 재래시장이 나이든 사람만 찾는 곳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청년들을 끌어모았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추모 기간을 제외하고 7번 야시장을 열었는데 8만5000명이 모였다. 청년상인들은 이틀 밤에 평균 40만원을 벌었다. 지난해에는 29세 이하 젊은 작가 13개팀이 6개 공간에서 자신들의 작품 활동을 진행했다.

별장 프로젝트 총감독 전고필씨는 “작가들이 중심이 돼 하면 시장 주인인 상인이 소외되고,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하면 변화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많이 싸우면서 작가와 상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광주시 대변인실의 오경훈씨는 “광주시가 3~4년 전 광주천변 양동시장을 야시장 개념으로 바꾸려다가 실패했다”며 “긴 안목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광주시는 매주 한 차례씩 야시장을 열어달라고 은근히 요구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시장에서 자는 상인들도 있다. 이들은 시끌벅적한 야시장 행사가 불편하다. 해마다 광주시가 1년 동안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할 팀을 선정하는데 올해 선정과정이 끝나면 야시장도 다시 열릴 예정이다.

대인시장은 천천히, 느릿느릿, 귀퉁이 모서리를 찾아다니며 봐야 재밌다. 취객이 오줌 누는 곳에 설치된 철 구조물에는 “또 싸면 잘라버린다”는 의미로 가위를 붙여 놓았다. 작가들은 관객들과도 소통한다. 이세현씨는 여러 개의 돌로 구성된 작품을 팔아, 이 돈으로 닭을 사서 소록도에 보냈다. 그렇다고 대인시장에서 예술가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대개 ‘올빼미들’이다. 낮에는 대부분 자거나 틀어박혀 있다가 밤에 작업한다. 희한하게도 시장의 상징은 부엉이다.

시장통에선 훈훈한 인심도 느낄 수 있다. 시장 명소 중 ‘천원밥집’, ‘천원국수집’이 있다.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도록 값은 1000원만 받는다. 천원밥집 주인은 최근 몸이 불편해 장사를 못하게 되자 대기업이 후원해주기로 했다.

대인시장은 살아있다. 생물이다. 해마다 변한다. 꿈틀거린다. 사람들이 거기서 꿈을 꾼다.

양림동 무인다방인 다형다방. 2층에는 한평짜리 다락방이 있다. 실내에는 양림동이 배출한 인물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양림동 무인다방인 다형다방. 2층에는 한평짜리 다락방이 있다. 실내에는 양림동이 배출한 인물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 양림동 : 따뜻하다

광주 도심 코스를 짜면 이렇다. 대인시장-국립아시아문화전당-양림동이다. 양림동은 문화투어 코스다. 거긴 서양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다. 오래된 교회들이 있고, 최근엔 작가들이 아틀리에를 열고 있다. 예쁜 커피숍들도 요즘 많이 생기고 있다.

출발점은 호남신학대학 뒷산 선교사 묘지다. 양화진의 선교사 묘역과 분위기는 비슷하다. 오웬 선교사의 묘비에는 오목사라고 한자로 쓰여 있다. 원래 선교사 묘는 22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묘비가 44기로 늘었다. 새로 들어선 검은색 묘비가 있는 묘지는 대부분 가묘란다. 선교사들은 1904년 양림동에 왔다. 그들이 정착한 곳은 당시 백여시골로 불렸다. 몹쓸 병에 걸린 사람이 죽으면 거적에 싸서 버린 풍장터였다. 이 일대 5만 여평의 땅에 이들은 집을 짓고 선교활동을 했다. 한국말을 잘하는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소장인 인요한도 이곳과 관련이 있다. 그의 외증조부가 바로 유진벨 선교사다. 유진벨의 사위인 윌리엄 린튼이 그의 할아버지다.

호남신학대학 뒷산에 있는 선교사 묘지. 오웬 묘비에 ‘오목사’라고  적혀 있다.

호남신학대학 뒷산에 있는 선교사 묘지. 오웬 묘비에 ‘오목사’라고 적혀 있다.

호남신학대학 내에 있는 우월슨 사택.

호남신학대학 내에 있는 우월슨 사택.

선교활동을 벌였던 우월슨(Wilson)이 살았다는 벽돌집은 제법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이었다. 선교사들은 의료사업을 많이 벌였는데, 양림동에 제중원을 세우고 환자를 치료했다. 제중원은 현재 기독병원이다. 당시 선교사들이 살았던 사택들은 현재는 예술가들에게 한 채는 임대됐고, 다른 한 채는 게스트하우스로 변했다.

선교사들이 일찍이 정착했던 탓에 양림동에는 양림교회가 3개 있다. 한 교회에서 출발, 나뉘었다는데 모두 교회 설립을 1904년으로 주장하고 있다. 1920년대 청년농업운동을 했던 어비슨 동상이 있는 양림교회는 1950년대에 지어졌다. 그 옆 오웬 기념각은 1910년대에 지은 근대건축물이다.

양림동은 문화계 인사들이 자라고 활동했던 곳이기도 하다. 양림동의 길모퉁이 무인 다방인 ‘다형다방’에는 광주에서 자란 예술가와 사회운동가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가을의 기도)로 유명한 김현승 시인, 여성·사회운동가 조아라, 중국에서 오히려 추앙받는 음악가 정율성, 소설가 문순태, 영화감독 임권택 등의 사진이 붙어있다. 호남신학대학 언덕에 오르면 김현승 시인의 시비가 있는데, 김 시인은 여기서 무등산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김 시인을 추억하는 후배들이 무등산이 잘 바라보이는 자리에 펜촉 모양의 시비를 세웠는데, 지금은 그 앞에 대학건물이 들어서 풍광을 가렸다. 양림동이 좋아 양림동에 공방을 낸 작가 김현숙씨는 “양림동이 좋아서 골목길까지 구석구석 돌아다닌다”며 “양림동에 살고 싶어하는 예술가들이 많다”고 했다.

2013년 전현숙 작가가 행복한 신혼부부를 소재로 그린 벽화 ‘꽃들아 춤을 추어라’는  자신을 모델로 했단다.

2013년 전현숙 작가가 행복한 신혼부부를 소재로 그린 벽화 ‘꽃들아 춤을 추어라’는 자신을 모델로 했단다.

김황식 전 총리가 공부했다는 이장우 가옥.

김황식 전 총리가 공부했다는 이장우 가옥.

그 옆 자락에는 과거 부촌이었던 양림동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옛 가옥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부잣집이다. 1940년대 초 지은 최부잣집은 보기 드문 2층 한옥으로 지금은 독서실이란 간판이 붙어있다. 독립운동가를 지원한 최상현이 지었다고 하는데, 그의 아버지 최명구 역시 광주 학생독립운동가들이 다녔던 흥학관을 건립했다.

▲ 광주 길잡이

■ 교통 - 광주 KTX 복선화 공사가 마무리돼 3월 중 개통한다. 현재는 광주까지 KTX로 2시간40분 걸렸으나, 개통되면 약 1시간 정도 단축된다.

선교사들이 머물렀던 주택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선교사들이 머물렀던 주택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 숙박 - 특색있는 숙소를 찾는다면 광주시 양림동에 옛 선교사들이 썼던 사택을 리모델링한 게스트하우스가 좋겠다. 방 7개. 예술가들이 많이 찾는다. 1인실은 5만원, 2인실은 7만원, 3인실은 1인당 3만원씩이다. 간단한 아침식사와 커피를 준다. 집 한 동 전체를 빌리면 하루 70만원. 1주일 이상 한 채를 통째로 빌리면 하루 44만원. (062)654-0976, 010-3616-5437

■ 먹거리 - 현지 사람들이 많이 가는 맛집은 충장로3가 청원모밀(062-222-2210)로 1960년 개점한 식당. 광주식 메밀국수는 잔치국수처럼 국물에 말아 나온다. 금남로 뒤편 영흥식당(062-232-9351)은 과거 도청직원들이 자주 찾았던 밥집. 인근 내일또식당(062-226-1888)은 대인시장 예술가들이 자주 찾는 횟집. 명덕식당(062-222-0517)은 50년가량 된 설렁탕집. 박순자 녹두집(062-223-8694)은 요즘 뜨고 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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