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터는 놈, 털리는 놈, 막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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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특집] 서태지-이지아 소송으로 달아오른 ‘신상털기’… 소량의 개인 정보가 누리꾼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권력에 오·남용 되기도

지금 인터넷 앞에 앉아 있는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이 가입한 수많은 사이트와 올려놓은 게시물, 사진 등 모든 흔적의 결과물이다. 때로 그 흔적은 자신이 아닌 타인에 의해서도 남겨진다. 우연히 찍힌 사진 한 장이나 누군가 올려놓은 동영상도 당신의 흔적으로 남는다. 눈 쌓인 길을 발자국 없이 걷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온라인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움직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국어사전에 ‘신상’(身上)은 ‘한 사람의 몸이나 처신, 또는 그의 주변에 관한 일이나 형편’이라고 나와 있다. 21세기 들어 ‘신상’은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한 사람이 온라인상에 남겨놓은 흔적이나 상황’이다. ‘신상’은 먼지다. 털면 털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먼지는 쌓이는 것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신상은 생성된다. 누군가 마음먹고 온라인상에서 어떤 이의 흔적을 추적하고자 하면 알아낼 수 있는 무기력한 것이 신상이기도 하다. ‘신상털기’라는 신조어는 온라인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참 똑똑하고도 무서운 단어다.

코드 수색에 돌입한 집단지성

또 한 명의 신상이 털렸다. 지난 4월21일 <스포츠서울>의 ‘서태지-이지아 소송’ 보도 이후 탤런트 이지아에 관한 개인정보는 그의 본명부터 살아온 인생, 어릴 때 사진 등 세세한 것에서 미국에서의 결혼증명서, 이혼 관련 서류 등 공적인 문서까지 공개됐다. 이렇게 신상털기로 개인정보가 공개된 사례는 꽤 있다. 연예인의 경우 학력위조 논란에 휘말렸던 ‘에픽하이’의 타블로가 대표적이고, 일반인의 경우에는 특정한 사건이나 TV 등을 통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녀’ ‘○○남’ 등이 있었다.

이번 서태지-이지아 소송 사건의 경우 지금까지 모든 신상털기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요 언론은 누리꾼들의 신상털기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기사를 앞다퉈 내보내느라 바쁘다. 그런데 정말 이 모든 과정이 연예인 가십성 기사에 열을 올리는 누리꾼 탓일까? 첫 보도 이후 지금까지 온라인에서 일어난 일들을 따라가며 2011년 대한민국의 현재를 들여다보자.

서태지-이지아 소송 건이 전해지자 인터넷이 뒤집혔다. 디시인사이드 이지아 갤러리와 서태지 갤러리를 비롯한 각 포털 사이트의 유명 카페 등에는 관련 글들이 속속 올라왔다. 기사를 접한 누리꾼들은 가장 먼저 대형 포털 사이트를 중심으로 ‘서태지-이지아’ 검색 버튼을 눌렀다. 둘에 관한 지난 뉴스가 등장했다. 이지아가 2009년 서태지 콘서트에 갔다는 기사가 검색됐고, 이어 둘에 관해 올라온 글이 몇 건 나왔다. 네이버와 네이트, 다음의 지식 검색 사이트에 둘의 관계를 예견이라도 한 듯한 글이 각각 한 개씩 발견됐다. 이 글에 나온 이지아의 본명과 가족, 서태지와의 관계 등이 검증 없이 퍼져나갔고, 관련 페이지는 순식간에 누리꾼들이 들러가는 ‘성지’가 됐다. 지금도 ‘성지’가 된 게시물에 댓글을 남기며 자신이 소원하는 바를 적는 ‘성지순례’는 계속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서태지와 이지아의 관계는 미스터리로 빠져든다. 누리꾼들은 대형 ‘떡밥’에 환호했고 키보드를 두들기며 둘을 잇는 ‘코드’ 수사에 돌입했다. 검색을 통해 이지아와 서태지의 지난 관계에 관한 것이라면 사소한 댓글까지 수집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좀처럼 자신을 방송에서 드러낸 적이 없는 이지아가 딱 한 번 출연한 적 있는 한 케이블채널의 리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서태지와의 연관성을 뒤졌다. 그렇게 서태지가 2009년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 속 하트 모양 조명에 그려진 그림과 이지아가 이 프로그램에서 ‘나의 마스코트’라고 밝힌 그림이 일치한다는 사실이 걸려들었다. 집단지성의 힘이었다. 서태지와 이지아의 관계는 빛의 속도로 엔터테인먼트의 영역이라는 블랙홀로 빨려들어갔다.

이 둘을 잇는 또 하나의 코드는 둘의 이름. 서태지의 영문 이름 ‘Seotaiji’를 거꾸로 하면 ‘이지아의 발가락’(I jia toes)이 나온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 역시 또 하나의 코드가 됐다. 어느 게시판에서 몇몇 이들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을 이야기는 순식간에 ‘이름 미스터리’로 둔갑해 세상에 공표됐다. 첫 기사가 보도된 지 채 5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지아의 초등학교 사진이 떴다. 이지아가 한국에서 살던 당시의 이름이 공개되자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한 누리꾼이 이지아의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찾아 인터넷에 올렸다. 사진 속 여자아이 아래에는 이지아의 본명이라고 알려진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지아가 탤런트 송창의와 같은 반이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당연히 ‘성형설’도 뒤따랐다.


대량화·대중화한 전 국민의 놀이?

누리꾼들이 충격과 환호에 휩싸여 검색에 검색을 이어가는 동안 온라인 연예매체 기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뭐든 기사로 만들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기자들은 누리꾼들이 올려놓은 수많은 글을 클릭하며 얘기가 된다 싶으면 기사로 만들어냈다. 검색된 글, 이름, 초등학교 졸업 사진 등 웃고 넘길 얘기들이 기사로 만들어졌다. 낙종을 어떻게든 만회해보려는 기자들은 서태지와 이지아 관련 서류를 찾기 시작했다. 법원 홈페이지에서 사건번호로 검색한 소송 관련 페이지를 캡처한 사진도 기사가 됐다. <스포츠서울>의 특종 보도 다음날인 4월22일 <스포츠칸>은 ‘단독’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조회한 서태지와 이지아의 결혼 및 이혼 관련 기록을 공개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는 식의 기사도 나왔다. 온라인 연예매체는 이지아를 ‘양파녀’로 명명했다. 까도 까도 나온다는 빈정거림이다.

떡밥은 흥미진진했다. ‘이지아 그녀는 누구인가?’라는 부제를 단 사이트인 이지아닷컴(lee-zia.com)이 첫 보도 다음날 문을 열었다. 이지아와 관련된 소식을 모아놓은 사이트로 뉴스나 게시물 등을 통해 불거진 의혹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둘만의 코드를 찾는 작업은 계속됐다. 누리꾼들은 서태지가 발표한 <줄리엣>이라는 곡과 이지아가 직접 가사를 쓰고 노래한 <뱀파이어 로맨스> 등에서 둘의 심리상태를 추측했고, 둘의 지난 인터뷰를 뒤적이며 현실과 얼마나 다른지 성토했다. 이지아가 직접 디자인했다며 입고 나온 드레스에 서태지의 영문 이름을 거꾸로 적었다는 증거 사진이 발견됐다. ‘대담하다’는 누리꾼들의 지적에 대해 이지아 소속사는 ‘irresistable’이라는 단어라고 정정했다. 그러자 일부 누리꾼들은 서태지 7집 앨범 재킷에 적혀 있는 ‘irresistable’이라는 글자를 들이댔다. 10년 전에 나온 서태지 관련 팬픽(팬들이 스타를 주인공으로 쓰는 소설)이 이지아가 쓴 것이라는 내용부터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스치듯 등장한 이지아의 어릴 때 사진까지 자료는 끊임없이 쏟아졌다.

지난 4월27일 오전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탤런트 구혜선의 이름이 올랐다. 구혜선의 이름을 검색하니 온라인 연예 기사가 몇 개 떴다. 구혜선이 2008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태지의 열혈팬임을 드러냈다는 기사였다. 구혜선이 검색어 1위에 오르고 구혜선과 관련된 허술한 기사가 만들어진 데에는 증권가 ‘찌라시’가 한몫했다. 그 전날부터 구혜선이 서태지의 또 다른 연인이라는 내용이 증권가 찌라시를 근거로 빠르게 돌았다. 찌라시 속 루머가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등장한 인터넷 기사는 순식간에 복제되며 뿌려졌다. 결국 구혜선 소속사가 나서 “구혜선이 2008년에 했다는 인터뷰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며 “찌라시 속 루머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와 거짓 온라인 기사로 한 연예인의 삶이 얼마나 순식간에 난도질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하루였다.

서태지와 이지아 사건은 유명인을 둘러싼 신상털기의 과정을 낱낱이 보여준다. 거대한 떡밥을 받아든 누리꾼은 자신과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발빠르게 움직였다. 언론은 누리꾼을 신상털이의 주범으로 지목하면서도, 둘과 관련된 문서를 앞다퉈 공개하며 누구보다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이들의 개인정보를 공개했다. 게시판에 올라온 이지아의 초등학교 졸업 사진은 케이블 채널의 뉴스 프로그램에도 등장했다. 포털 사이트는 늘 그랬듯 루머의 확산과 개인정보 복제를 무심한 듯 시크하게 독려했다. 신상털기는 어느 커뮤니티사이트의 더 이상 할 일 없고 개념 없는 ‘잉여인간’들만의 놀이가 아니다. 언론도 하고, 정부도 하고, 기업도 한다. 물론 개인도 한다. 점차 대량화되고 대중화된 신상털기는 이제 전 국민의 놀이이자 정부와 기업의 취미생활로 자리잡았다.

“네가 누군지 알고 있다”

지난 1월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과 트위터 이용자 간에 인상적인 멘션이 오갔다. 정 수석이 이명박 대통령 부부와 함께 뮤지컬 <영웅>을 관람한 내용의 트윗을 올리자 한 이용자가 욕설이 담긴 멘션을 달았다. 그에 대해 정 수석은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어요. 당신이 남긴 글 범죄행위입니다. 나 말고도 여러 명이 알게 됐어요. 세상이 당신 생각처럼 그리 만만하진 않습니다”라고 썼다. 이와 관련해 해당 트위터 이용자는 이런 트윗을 남겼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내가 얼굴을 내어놓기 전에 이미 나를 알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정식의 절차를 통하여 나의 잘못을 따져묻기도 전에 그것이 가능한가. 과연 청와대는 모든 국민의 신상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인가. 정부로부터의 심리적 압박을 느낀다.” 청와대는 “해당 사용자가 트위터에 자신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는데 정 수석이 그것으로 ‘당신을 안다’고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신이 누군지 알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은, 그저 ‘당신의 프로필을 보았다’ 정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인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포털 사이트 등 인터넷을 통해 국민의 신상털기쯤은 가볍게 해낼 수 있음을 ‘증명’한 바 있다. 지난해 3월 김연아 선수가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회피하는 듯한 이른바 ‘회피 연아’ 동영상을 자신의 네이버 카페에 올렸다는 이유로 한 누리꾼이 유 장관한테 고소를 당했다. 유 장관이 고소를 취하해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이 누리꾼은 경찰이 네이버로부터 자신의 인적사항을 넘겨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네이버를 상대로 지난해 7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 소송과 함께 포털 사이트 다음의 회원 4명은 자신의 신상정보와 전자우편을 수사기관에 제공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확인을 거부한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지난 2월 두 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판결이 나왔다. ‘회피 연아’ 동영상과 관련해서는 “정보 제공이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이 있었고, 다음의 개인정보 제공 거부 건에 대해서는 “포털 사이트가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등에게 열람 또는 제출하는 정보는 이용자의 성명·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아이디 등으로 정보통신망법에서 규정한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며 “회원의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한 현황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은 매년 영장 없이 적어도 수십만 건에 이르는 개인 신상정보를 이런 방식으로 수집한다.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 정보수사기관의 장으로부터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 수집을 위하여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받은 때에 이에 응할 수 있다”는 ‘전기통신사업법 83조 4항’ 덕분이다. 이에 따라 수사기관은 손쉽게 이용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아이디, 주소 등을 받을 수 있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내’ 흔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이들

‘뉴머러티’(Numerati)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숫자를 뜻하는 넘버(Number)와 지식 계급을 뜻하는 리터라티(Literati)의 조어인 뉴머러티는 숫자 지식 계급을 가리킨다. 이들은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이 남겨놓은 모든 흔적을 숫자로 환산하고 통계로 만들어내는, 말 그대로 숫자라는 막대한 지식을 소유한 이들이다. 책 <뉴머러티>(스티븐 베이커·세종서적)는 이들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 이들이 관심을 갖는 흔적은 소비자들이 움직이는 패턴이다.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 들어가서 클릭을 할 때마다, 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필요한 것을 구매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이들은 매 순간을 잡아낸다. 이제 거대한 기업이 돼가는 뉴머러티 집단은 수집한 정보를 기업에 제공하거나 기업의 의뢰를 받고 정보를 수집해 막대한 이윤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페이스북에 가입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나 정치적 성향 등 세부적인 개인정보를 설정하는 순간부터 모든 이용자는 뉴머러티가 수집하는 숫자에 ‘1’로 자리하게 된다.

최근 뉴머러티의 실체가 우리 손안으로 들어오는 일이 일어났다. 지난 4월21일 미국의 프로그램 개발자 알래스데어 앨런과 피트 워든은 애플 아이폰 사용자의 위치·시간·무선랜망 정보 등 하루에 100여 개의 위치정보가 암호화되지 않은 상태로 기록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미국은 발칵 뒤집혔고 미국 의회는 애플사를 상대로 조사에 나섰다. 스티브 잡스는 위치 저장이 ‘버그’에 불과하다며 “우리가 수집한 것은 익명 처리된 와이파이와 무선전화 기지국의 위치일 뿐이고 이것을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로 오해한 것”이라는 공식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아이폰의 위치추적 의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국 아이폰 사용자들에 이어 국내 아이폰 사용자들도 “사용자의 동의 없이 개인 위치정보를 무단·불법으로 수집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아이폰 제조업체인 애플과 국내 판매회사인 애플코리아를 상대로 4월28일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아이폰 위치추적 논란이 불거지자 국내의 몇몇 누리꾼들은 이를 폭로한 개발자들의 누리집(huseyint.com/iPhoneTrackerWin)에서 아이폰이 저장한 위치 경로를 찾아내는 프로그램인 ‘아이폰 트래커’를 다운받았다. 이들은 프로그램을 돌려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이폰을 들고 이동한 모든 곳이 지도에 표시됐다. 상세한 주소까지 표시되는 건 아니지만 대략적인 위치는 잡아냈다. 특정 장소에 머문 시간에 따라 색깔도 다르게 표시된다. 누리꾼들은 “기억해내지 못하는 위치 이동 경로까지 아이폰이 알고 있다”며 “소름이 끼친다”는 반응이다. 당신이 지난 6개월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아이폰은 알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해명과는 다르게 만약 아이폰의 위치정보가 뉴머러티 등에 의해 수집된 증거가 파악된다면, 스티브 잡스는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다.

단지 누군가의 계정을 해킹해 사진이나 자료 등을 유출하는 게 신상털기의 전부가 아니다. 서태지와 이지아나 뉴머러티의 경우처럼 자발적으로 공개한 정보를 조합해서 의미를 만들어내거나 정보를 통해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는 것도 신상털기의 범주에 들어간다.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또는 ‘데이터 머징’(Data Merging)이라고 불리는 이런 행위는 단순한 정보의 유출보다 더 무겁고 잔인하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된

신상털기는 그 자체를 ‘데이터 마이닝’의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 신상털기의 주범으로 몇몇 해커를 지목하고 ‘제도를 강화하겠다’는 관계기관의 반복적인 시정 조처 대신 그 아래 서로 얽혀 있고 숨겨져 있는 더 큰 감시의 그림자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활동가는 “이러한 현상의 밝은 면이라면 정보를 검색하며 권력을 역감시하는 측면”이라며 “어두운 면은 개인정보를 공개해 타인을 조롱하는 등 시민이 다른 시민을 감시하는 문제, 또 국가권력이나 상업권력에 의해 오·남용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권력과 국민 개개인의 삶까지 들여다보려는 국가권력이 손잡을 경우 개인의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민주주의도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쯤되면 신상털기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다. 터는 놈과 털리는 놈, 막는 놈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인터넷에 남겨진 흔적을 두고 모두가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정작 흔적의 주체인 사람은 사라지는 중이다. 인터넷에 남은 흔적이 그 사람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없음에도 개인뿐 아니라 국가, 기업은 그것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한다.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최철웅씨는 “인간 고유의 성향이 사라지고 각종 정보로 인간이 대체된다”며 “정보의 주인인 인간이 매개자로 뒤바뀌는 전도 현상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인터넷에 공개되는 아주 소량의 정보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추측하고 단정짓는 것은 신상털기의 또 다른 함정이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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