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신해철 의료사고

김석종 논설위원

중국 전설 속의 신농씨는 약초를 관장하는 제왕이었다. 그는 하루 100가지 초목을 씹어보는 임상시험을 하다가 독초에 중독돼 몸이 뒤틀렸다고 한다. 참 이타적인 의료사고다. ‘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에서 ‘예술’이 ‘의술’의 오역이라는 건 상식이다. “인생은 짧고, 의술의 길은 멀다”가 정확한 뜻이란다. 의과대생들은 졸업식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낭독하는 것으로 의사가 된다. 하지만 지금도 의술의 길은 멀기만 한 모양이다.

미국 법의학자 조슈아 퍼퍼와 스티븐 시나가 쓴 <닥터 프랑켄슈타인>은 원제가 ‘의사는 언제 죽이는가(When doctors kill)’다. 의사들의 온갖 ‘범죄’와 어두운 행각을 다룬 ‘의료 잔혹사’라고 할 만하다. 외과의사 아툴 가완디의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도 현대의학이 아직 “불완전한 과학이며,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모험, 목숨을 건 줄타기”라고 고백하는 책이다.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는 것을 흔히 ‘의료사고’라 부른다. 의료 전문가의 잘못이 명백하면 ‘의료과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1만7000여명의 환자가 의료사고로 사망할 것이라는 통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진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의료사고의 55%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X레이 사진의 주인이 바뀌거나 판독을 잘못해 엉뚱한 수술을 하는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2011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폐에서 부러진 침 조각이 나와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프로포폴에 의한 사망사고가 잇따랐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프로포폴 중독에 의한 심장마비로 2009년 사망했다.

가수 신해철의 사인이 결국 의료과실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한다. 장협착 수술을 맡은 병원 측이 의료과정에서 과실을 범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일반인들은 병원을 상대로 의료소송을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적이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변호사들도 사건 수임을 꺼릴 정도다. ‘소셜테이너’ 신해철의 죽음이 의료사고에 대한 예방책 마련과 제도 시행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마왕이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우리 사회에 뜻깊은 화두 하나를 던진 셈이다.


Today`s HOT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