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국내총생산) 성장률에 일차적으로 투자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전 세계 경제상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나서 성장성이 기대되는 섹터(업종)를 찾아 그 안에서 저평가된 주식들을 매입(Long Position)합니다. 동시에 사양산업으로 분류될 기업들을 골라 펀더멘털(기업가치)이 약한 종목들을 우선 매도(Short Position)합니다. 이익을 극대화시키려는 매매기법이죠."

60여년의 역사를 지닌 헤지펀드의 대표 운용전략으로 꼽히고 있는 '롱-숏 전략'(Long-Short Equity)이다.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뉴스미디어 <한경닷컴>이 만난 안효문 에이케이투자자문 대표(56ㆍ사진)는 실제로 3년 6개월 이상 '롱-숏 전략'을 펼치고 있는 국내에서 몇명 안 되는 헤지펀드 매니저다. 그는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와 한국투자신탁 주식운용 부장(대표 펀드매니저), 리서치 부장, 선에셋투자자문 CEO 등을 거친 업계 경력 28년차 베테랑이다.

에이케이투자자문을 비롯해 코스모투자자문, 코아베스트 등 3곳 정도가 헤지펀드 운용 경력이 있는 '실전 자문사'로 업계에 이름이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헤지펀드는 그동안 여의도 증권가(街)에선 '미지의 영역'으로 여겨져왔다. 헤지펀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낙인찍히자 돌연 정부가 운용제한, 가입자격 등에 커다란 '빗장'을 걸어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들어 금융업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정부가 나서 '한국형 헤지펀드'의 도입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헤지펀드 업계에서 소위 '아시아 왕따'로 불리며 낙후된 한국의 금융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선진화된 금융기법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관련업계와 학계의 잇단 지적이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또 부동산 등 전통적인 투자대상이 더 이상 자산가들에게 기대 이상의 이자수익을 내주지 못하면서 대안투자처 마련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었다. 오는 8~9월께 자본시장의 제도개선이 마무리되고 '한국형 헤지펀드'가 등장할 예정이다.

헤지펀드 대표전략, 롱-숏 익히러 떠난 '주몽펀드'

"이제라도 헤지펀드 설립이 가능해져 관련산업이 동반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돼 정말 다행입니다. 2007년부터 3년 6개월이 넘도록 해외(홍콩)에서 별도법인을 세우고 헤지펀드를 운용해왔습니다. 그간 헤지펀드를 운용하면서 가장 억울했던 게 바로 헤지펀드 운용에 있어서 꼭 필요한 프라임 브로커(Prime Broker)에 지급했던 막대한 수수료에요. 저희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모간스탠리(Morgan Stanley)와 프라임 브로커 계약을 맺었는데 매달 2만달러씩 지급했어요. 이것이야말로 정말 아까운 국부유출이 아니고 뭡니까."

헤지펀드의 '야전 사령관'격인 안 대표는 국내 헤지펀드 도입을 위한 일련의 자본시장법 개선안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헤지펀드의 모든 인프라 산업(프라임 브로커리지 등)을 동시에 키워나가야 해외 헤지펀드 매니저들과 동등하게 승부를 벌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아직까지 대부분 관계자들이 집(헤지펀드) 한 채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정작 살만한 집이 되려면 수도, 전기, 통신 등 기반 시설은 물론이고 학교, 도서관, 대형마트 등 주변 편의시설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셈이죠."

안 대표는 헤지펀드의 금융기법을 미리 익혀두기 위해 2007년부터 해외로 나가 홍콩에 현지법인(AK Partners)을 세웠다. 4년전에 이미 헤지펀드 관련 라이선스를 따낸 것이다. 특히 헤지펀드의 대표 운용전략인 롱-숏 전략으로 특화된 펀드(주몽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한국의 AK투자자문이 롱 포지션과 숏 포지션을 취할 대상을 분석해 투자결정을 내리고, 이를 APK홍콩이 전달받아 투자를 집행하는 형식이다.

롱-숏 전략은 '헤지펀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프레드 윈슬로우 존스(1923~1989)가 1949년 4명의 지인들과 함께 롱-숏 전략을 활용한 펀드를 시작했고, 이 펀드가 세계 최초의 헤지펀드로 평가되고 있다. 존스는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자신의 자금을 직접 펀드에 투자했으며, 운용보수 이외에 성과보수(약 20%)로 지급했다.

◆3년6개월 누적수익률 '62.28%'…한국형 헤지펀드의 성공을 엿보다

안 대표의 야심작 '주몽펀드(Jumong Fund)' 역시 AK의 자산(약 30억원)을 직접 실어 운용 중인 헤지펀드다. 또 성과보수는 15%로 책정돼 있다. 일부 기관 및 자산가들의 돈을 투자해 불어난 펀드 운용실적도 있지만, 사모펀드라는 특성상 운용성과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 대신 AK자산을 통해 본 주몽펀드의 운용실적은 그야말로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3년 6개월 간 AK투자자문의 헤지펀드 누적수익률(2007년 11월~2011년 3월말)은 34.32%(달러 기준)에 이른다. 코스피(KOSPI)는 이 기간 동안 15% 이상 떨어졌다. 원화를 기준으로 한 수익률은 더 좋다. 코스피(2.55%) 대비 월등히 높은 62.28%로 집계됐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이 헤지펀드의 원화기준 수익률은 12.03%(달러기준 -16.74%)로 리스크 관리도 뛰어났다.

"AK는 국내에서 최적화된 롱-숏 포지션을 결정하기 위해 정보기술(IT) 전문 애널리스트 3명을 집중 배치시키는 등 정확한 섹터별 리서치를 위해 운용전문인력 8명이 고군분투하고 있어요. 가끔 주가의 이상급등 현상에 따른 기술적 신호에 롱-숏 포지션을 취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운용력들이 섹터별 기업들을 직접 탐방해 투자결정에 필요한 분석을 해내죠. 산업별 세미나도 빠짐없이 찾아다니면서 기본적 분석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미국의 맨하튼이 아닌 서울 여의도 한 복판에서 해외투자자들을 모아 '롱-숏 전략'을 마음껏 해 보이겠다는 안 대표는 앞으로 무엇보다 투자자들이 헤지펀드의 기본적인 특성을 잘 이해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헤지펀드는 육상선수로 비교할 때 스프린터(단거리 선수)가 아니라 분명한 '마라토너'라는 것이다.

"일부 시장참여자들이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앞두고 가장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바로 헤지펀드의 특성이에요. 단기간에 높은 이득을 챙길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죠. 헤지펀드는 기본적으로 투자리스크를 줄이고 '절대수익률'을 추구하는 안정적인 펀드에요. 더욱이 10여 가지 이상의 다양한 운용전략을 통해 시장의 변동성에 민첩하게 대응해 꾸준히 이익을 내는 투자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기존의 어떤 투자상품보다 '인내력'이 더 필요한 대안투자처에요."

◆"돈은 밀물이고 썰물이다"…헤지펀드의 생존해법은 '투자철학'

"금융시장의 돈을 밀물이고, 썰물이에요. 최근까지 높은 인기를 끌고 있는 자문업계의 '랩 열풍'도 뚜렷한 투자철학이 없으면 장기적으로 볼 때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죠. 이제 곧 문이 열릴 헤지펀드 업계도 마찬가지에요. 헤지펀드의 다양한 운용전략을 잘 이해하고, 이를 누구보다 잘 실천해 특화시키는 것이 한국형 헤지펀드의 생존해법인 셈이죠."

안 대표는 이미 헤지펀드의 롱-숏 전략을 특화시키고 있다. 어떤 헤지펀드 매니저들보다 국내 증시에서 롱-숏 전략에 있어선 최고의 전략가가 되기 위해 일찍부터 해외에서 준비를 철저히 해 온 것이다.

헤지펀드식 운용전략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안 대표의 롱-숏 전략을 비롯해 인수ㆍ합병(M&A) 등이 벌어질 때 차익을 노리는 이벤트 드리븐 전략, '선물시장을 주무른다'는 뜻을 가진 선물 운용전략(Managed Futures), 전환사채(CB) 차익거래 전략, 부실채권 투자전략, 글로벌 매크로 지표를 활용한 전략, 신흥시장에 주로 투자하는 기법, 시장중립형 투자전략 등이 대표적이다.

안 대표는 마지막으로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헤지펀드의 탄생 이유부터 되새겨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돈 많은 자산가들이 예금이자 이상의 안정적인 이득을 챙길 수 있도록 고안된 투자상품이 헤지펀드에요. 따라서 부여된 세금에 상당히 민감한 투자자들이 많았죠. 대부분 헤지펀드가 조세 피난처(Tax haven)인 케이만제도 등을 비롯해 아시아의 싱가포르, 홍콩 등지에 법인을 설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개인소득세가 싸기 때문이죠."

이른바 '한국형 헤지펀드'는 아무런 규제가 없는 '헤지펀드'를 법의 테두리 안에 들여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부도 운용상 규제는 풀어주겠지만, 펀드설립 시 자격(자본금 등 등록의무) 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완전히 풀어주지 않을 계획이다. 소득세 역시 싱가포르(약 17%), 홍콩(20%)보다 더 높은 수준에서 형성될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영국의 경우 50%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형 헤지펀드'가 앞으로 글로벌 시각에서 진정한 의미의 헤지펀드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금에 대한 논의가 병행돼야 할 것이라는 게 안 대표의 판단이다.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