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론스타 ‘질긴 악연’의 끝은 어디인가

이재덕 기자

한때 외환은행은 장기신용은행, 한국상업은행 등과 함께 국내 최대 은행 중의 하나였다. 1967년 한국은행이 100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외환은행은 출범 직후 총 자산이 연평균 30% 넘게 증가하는 등 급속하게 성장했다. 1989년에는 외환은행법이 폐지되면서 상법 상의 주식회사로 전환되고 1994년에는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불행은 IMF 외환위기가 불어닥친 1998년부터 시작됐다. 특히 론스타와의 질긴 악연은 1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1967년 외환은행 개업식에서 테이프를 자르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1967년1월30일 경향신문 1면)

1967년 외환은행 개업식에서 테이프를 자르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1967년1월30일 경향신문 1면)

■불행의 시작 1998년 외환위기와 2003년 카드대란

‘잘 나가던’ 외환은행은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경영난에 시달렸다. 은행감독원(현 금융감독원)은 외환은행 등에 경영개선명령을 내렸고 외환은행은 외자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당시 외환은행에 자금을 공급한 것은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였다. 코메르츠방크는 과거 독일에 파견된 한국 간호사들이 자신들의 급여를 한국에 송금할 때 이용한 독일 은행으로 유명했다. 외환위기 시절, 코메르츠방크는 외환은행 지분 29.7%를 보유해 최대주주가 됐다. 물론 수출입은행과 한은 등 정부가 보유한 외환은행 주식이 절반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해볼 때 사실상 코메르츠방크는 2대 주주나 다름없었다.

코메르츠방크가 외환은행에 출자를 했다는 내용의 외환은행 신문광고(1998년 7월 30일 경향신문 1면)

코메르츠방크가 외환은행에 출자를 했다는 내용의 외환은행 신문광고(1998년 7월 30일 경향신문 1면)

이후 2003년 카드대란, 현대그룹 부실 등이 엮이면서 외환은행의 경영은 다시 악화됐다. 외환은행은 현대그룹 부실채권 때문에 허덕였고 외환은행의 자회사였던 외환카드도 카드대란 직후 부실카드사 명단에 올랐다. 대주주였던 코메르츠방크는 결국 두 손을 들고 증자를 포기했다. 이후 코메르츠방크는 미국의 사모펀드에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하는데 그 사모펀드가 바로 론스타펀드(LSF)다.

론스타는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사모펀드로. 단기 내 투자수익을 올린뒤 파는 게 목적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 등 국제금융기구와 공공연기금, 대학기금, 보험회사, 은행지주회사, 텍사스 석유재벌 등이 론스타 펀드의 주요 투자자이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보고 펀드’으로 유명한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3년 뒤, 검찰은 변양호 금정국장이 2003년 코메르츠방크의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헐값에 매각하도록 했고 매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환은행의 재무상태가 나쁜 것처럼 조작해 외환은행 주주들에게 최대 1조원 이상의 손실을 입혔다며 변 국장을 배임죄 혐의로 기소했다. 이후 법원에서 변 국장은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이때 ‘변양호 신드롬’이란 말이 생겼다. 소신껏 일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의미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재정부 금정국장이었던 변양호씨(왼쪽), 당시 론스타 코리아 사무실이 있었던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오른쪽)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재정부 금정국장이었던 변양호씨(왼쪽), 당시 론스타 코리아 사무실이 있었던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빌딩(오른쪽)

■론스타, 악연의 시작

론스타는 2003년 8월 외한은행을 1조380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직후 ‘산업자본 논란’에 휩싸였다. 론스타 펀드는 외환은행 주식을 51% 보유, 최대 주주가 됐지만 실상은 외환은행을 인수할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은행법에 따르면 외국계 산업자본은 은행지분을 10%(의결권은 4%) 이상 보유할 수 없는데 론스타는 골프장, 호텔, 건설 등의 비중이 큰 산업자본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론스타=산업자본’ 임을 집중적으로 문제제기했지만 금융당국은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니라는 주장만 되풀이 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던 이유다.

론스타가 소유, 운영했던 일본 지바현의 한 골프장. 골프장 홈페이지

론스타가 소유, 운영했던 일본 지바현의 한 골프장. 골프장 홈페이지

2013년 12월 금융위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공개한 당시 ‘론스타 대주주 적격성 심사자료’를 보면, 론스타는 일본에 자회사 형태로 골프장·호텔 등 2조8500억원가량의 비금융자산을 보유했고, 한국에도 극동건설 등 5821억원에 이르는 비금융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위 역시 론스타가 외환은행 대주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셈이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가 주주들에게 실시한  배당 규모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가 주주들에게 실시한 배당 규모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주주들에게 고배당을 실시하고 외환은행 직원들을 상대로는 가혹한 구조조정을 벌였다. 점포 수와 직원 수를 줄여 비용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남아있는 외환은행 직원들에게는 높은 연봉을 지급했다. 내부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떠날 채비하는 론스타와 외환카드 주가조작 판결

고배당으로 수익을 충분히 냈다고 판단한 론스타는 한국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2006년 3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시장에 내놓자마자 KB국민은행과 하나금융 등이 눈독을 들였다. 처음에는 KB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가 그해 계약이 파기됐다. 이후 2007년 HSBC 은행이 뛰어들어 외환은행 지분 51%를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HSBC측에서 계약을 철회했다.

론스타는 당시 HSBC와의 계약 불발에 대해 금융당국의 승인이 지연되면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2012년 론스타는 “외환 은행 매각 승인이 지연되고 국세청의 자의적 과세처분으로 4조6000억원 상당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시작했다. ISD는 아직 진행 중이다.

금융소비자협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2년 11월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론스타의 한국 정부 상대 투자자 국가소송 제소와 관련해 국제중재신청서 공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금융소비자협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2년 11월 2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론스타의 한국 정부 상대 투자자 국가소송 제소와 관련해 국제중재신청서 공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다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론스타와 HSBC와의 계약이 불발로 끝나면서 외환은행은 결국 하나은행에 넘어가게 됐다. 그즈음 대법원은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다. 외환은행의 론스타측 이사들이 외환은행 인수비용을 낮추기 위해 외환카드 허위 감자설을 유포하는 등 주가조작을 벌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당시 론스타측 이사들은 형사 처벌을 받았고 론스타는 외환카드 2대 주주였던 올림푸스캐피탈 등에 손해배상금으로 718억원을 지급했다. 불법행위로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이 드러나면서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다시 내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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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운동 본부’ 회원들이 2008년 1월 11일 서울 중앙지법 앞에서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오른쪽)의 법정 출석에 맞춰 스티븐 리 론스타코리아 전 대표의 한국 소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운동 본부’ 회원들이 2008년 1월 11일 서울 중앙지법 앞에서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오른쪽)의 법정 출석에 맞춰 스티븐 리 론스타코리아 전 대표의 한국 소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론스타는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상실했다. 금융위는 론스타에 외환은행 지분을 10%만 남기고 41.02%를 매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론스타의 범죄행위에도 금융위는 ‘징벌적 처분명령’을 내리지 않고 ‘조건없는 처분명령’을 내려 여론의 반발을 샀다. 결국 론스타는 하나은행에 외환은행을 팔고 고액 배당금에 매각 차익(4조6600억원)까지 챙겨 한국을 떠났다.

투자자들에게 약속했던 만큼의 이익을 초과 달성한 상황에서 하루 빨리 외환은행을 매각하고 싶어한 론스타와, 은행 규모를 키우고 외환은행 외국 현지 법인을 이용한 영업활동 등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려고 했던 하나금융의 바람이 맞물리면서 외환은행 매각이 이뤄졌다. 결과적으로는 하나은행이 론스타의 ‘먹튀’를 도운 셈이 됐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등(왼쪽부터)이 ‘2·17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 한명숙 의원실 제공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등(왼쪽부터)이 ‘2·17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 한명숙 의원실 제공

■하나금융과 외환 노조의 ‘2·17합의’

론스타가 떠나자 외환은행 노조는 다급해졌다. 은행 이름은 사라지고 론스타 시절 올라간 임금 수준이 깎이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직원 감축 등 구조조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 외환은행의 새 주인이 된 하나금융지주는 2012년 2월 17일 외환은행 노조와 만나 ‘최소 5년동안 외환은행의 독립 경영을 약속하겠다’는 내용으로 2·17 합의서를 작성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별도의 독립법인으로 존속하게 하고 5년이 지나 노사간 합의가 있는 경우에 두 은행간 합병을 협의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김승유 하나금융지주회장, 윤용로 외환은행장,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입회인 자격의 김석동 금융위원장 등 4명이 이 합의서에 서명했다.

2.17 합의서 내용.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별도 독립법인으로 존속토록하고 예외적으로 5년이 지나 노사간 ‘합의’가 있으면 그때 두 은행 간 ‘합병’을 협의할 수 있도록 했다.

2.17 합의서 내용.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별도 독립법인으로 존속토록하고 예외적으로 5년이 지나 노사간 ‘합의’가 있으면 그때 두 은행 간 ‘합병’을 협의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합의서(2·17합의서)에 따르면 적어도 합병 여부를 논의할 수 있는 시점은 2017년이다. 하지만 최근 하나금융지주가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경쟁력이 약화되고 조직 내 혼란이 커진다”며 조기 합병 강행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나금융은 통합을 5년 뒤로 미룬 합의서 내용에 대해서도 “경영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하나금융의 조기합병 추진에 금융위가 이를 재촉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자 외환은행 노조는 반발했다. 하나금융은 지난 1월 금융위에 합병 예비인가를 신청했고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예비인가 승인 여부를 2월 중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때만해도 업계에서는 빠르면 3월 중 두 은행이 합병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외환은행 노조 광고(2015년 2월5일자 경향신문 1면)

외환은행 노조 광고(2015년 2월5일자 경향신문 1면)

■하나금융, 론스타와 이면합의?

최근 외환은행을 둘러싼 세 가지 뉴스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우선 지난달 29일에는 외환카드 주가조작으로 배상금을 지불한 론스타가 ‘배상금을 혼자 낼 수 없다’며 외환은행을 싱가포르 중재재판소로 끌고가 론스타가 올림푸스캐피탈 등에 지불한 배상금의 절반(420억원)을 외환은행이 지불하도록 한 사실이 알려졌다. 외환은행이 이에 대해 중재판정 취소소송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이사회 결정도 없이 바로 론스타에 배상금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참여연대·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의 업무상 배임 행위’라며 문제제기에 나섰다.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을 사들이면서 배상금과 관련해 별도의 ‘이면합의’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은 “이면합의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금융정의연대와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3일 오전 서울 태평로 금융위원회 민원실에 외환은행의 론스타 주가조작 손해배상금 지급 관련 금융위 조사요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금융정의연대와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3일 오전 서울 태평로 금융위원회 민원실에 외환은행의 론스타 주가조작 손해배상금 지급 관련 금융위 조사요청서를 제출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이어 지난 4일에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외환·하나은행 통합중지 가처분 결정이 내려졌다. 서울지법은 외환 노조가 지난달 19일 하나금융과 외환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통합 중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이는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외환은행의 합병 승인 등을 위한 주주총회를 6월 30일까지 열지 말 것과 하나금융지주의 합병 승인을 위한 주총 의결권 행사를 금지할 것을 명령했다.

외환 노조는 법원 결정에 환영했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노사합의는 존중돼야 하지만 외환 노조가 은행업계의 위기를 외면한 채 벼랑끝 전술을 취하고 있다”며 “하나금융에 원죄가 있다고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론스타 인수 전인) 2003년 이전으로 되돌리자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철수하기 전 론스타한국사무소. 경향신문DB

철수하기 전 론스타한국사무소. 경향신문DB

또 같은 날 ‘론스타 저격수’로 활동해온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가 론스타에서 수 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장 대표는 2011년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매각 문제를 더 이상 제기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돈을 건낸 것으로 알려진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도 체포됐다. 론스타와는 참으로 지독한 악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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