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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형마트 판결에 상생을 더하라

정원오 | 서울 성동구청장

집 근처에 빵집이 하나 있었다. 빵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하면 인심 좋은 주인아저씨에게 갓 구운 빵을 한 입 얻어먹기도 하고, 폭신한 식빵이 먹기 좋게 잘리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도 있었다. 이제 이런 동네 빵집을 찾아볼 수 없다. 온갖 체인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기고]대형마트 판결에 상생을 더하라

사라진 건 또 있다. 가끔 50원, 100원이 모자라면 외상 대신 그냥 가져가라던, 마을의 애경사를 꿰찬 주인아주머니의 동네 슈퍼도 점차 자취를 감췄다. 대신 주차가 용이하고 무거운 장바구니 대신 카트를 끌며 쇼핑할 수 있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속속 들어섰다. 우리는 더 이상 전통시장에서 물건 값을 깎으려 입 아프게 흥정하지 않고, 한 곳에서 피자며 생선이며 식료품부터 가전제품까지 한 번에 해결이 가능하다. 우리의 이웃이었던 동네 빵집과 슈퍼는 다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이마트, 롯데마트가 대형마트가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났다. 대형마트와 롯데슈퍼, 이마트 에브리데이와 같은 기업형 슈퍼마켓(이하 대형마트)이 성동구와 동대문구를 대상으로 의무휴업일을 지정하고 영업시간을 제한한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청구한 소송에 대한 것이었다. 서울고법은 첫째, 이들은 유통산업발전법에서 말하는 대형마트가 아니고 둘째, 지자체는 대형마트에 임대매장으로 입점한 점포에 처분에 대한 사전통지나 의견제출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셋째, 처분으로 인해 건전한 유통질서가 확립되는지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지자체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했다.

세간을 시끄럽게 하는 이 판결이 유감인 이유는 사건의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다. 대형마트는 등록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조건만 부합하면 시장 진출에 제약이 없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상 그들의 위치 선점은 탁월하다. 이는 전통시장, 소상공인과의 관계에서 이미 기본적인 경쟁관계가 무너져있다고 봐야 한다. 이에 지난 2012년 대형마트로 인해 이미 제한돼버린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되살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 유통산업발전법으로 대형마트를 규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법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소상공인 간 균형을 맞추자는 법 취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되려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지 말라는 대형마트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첫째, 고법의 기준 대로 롯데마트, 이마트가 대형마트가 아니라면, 우리나라에는 법을 적용할 대형마트가 없어 보인다. 둘째, 임대매장 운영자에 대한 절차 위반은 대형마트에 속한 임대차 계약관계에서 점포 내부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일이다. 셋째, 처분으로 인해 전통시장과 소상공업자들의 매출이 증가하거나 건전한 유통질서가 확립됐다는 증거와 근거가 부족하다면 고법은 처분이 실질적 효과를 나타낼 기간을 두고 판단을 유보했어야 한다. ‘상생발전’이라는 법의 제정 취지는 고려하지 않고 전통시장, 소상공인들을 두 번 울리고, 제도의 효과성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기회조차 무산시킨 판결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지난 14일 소상공인정책연구소가 발표한 국민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은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경제와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해 전통시장과 동네 가게를 더 많이 이용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 49.2%는 “공감하며, 실천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38.3%는 “공감은 하지만 실천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 설문은 규제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방증한다. 실천은 이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에 대한 지원책으로 소비자들의 편의가 증진될 수 있도록 돕는 지자체와 상인들의 노력이 덧대어진다면 충분히 희망적이다. 또, 규제의 상징성은 누군가는 ‘오늘은 전통시장을 가볼까’, ‘가까운 슈퍼를 이용하자’고 사고를 전환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지난 5일,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이 서울시를 방문했다. ‘골목상권’과 ‘정의론’을 논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좋은 품질의 물건을 편리하고 싸게 구매하기를 원하는 소비자다. 동시에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공통의 삶의 질을 생각해야 한다. 작은 빵집이나 슈퍼마켓 등은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개체이고, 우리는 지역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주민이다. 우리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죽이는 것을 우려해야 한다. 소비자로서 원하는 게 있고, 좋은 이웃이 되고자 하는 열망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샌델이 말하는 대로 그 합의점을 찾기 위한 과정 중에 있다.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 협동조합이 싹트는 사회적 분위기와 거꾸로가는 고법의 판결이 아쉽다. 사법부 내에서도 1심과 2심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는 만큼, 성동구는 이에 관해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을 받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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