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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꺼져가는 아이 울음소리를 되살리는 길

입력
2014.10.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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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한 부부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경향이 늘어난다고 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 원해서란다. ‘혹시 금방 헤어질 것에 대비해서 그런가?’ 그런데 아니다. 취업을 원하지만 결혼 전까지 취업을 못한 여성들의 결정이란다. 취업 지원 때 서류상 기혼이면 불리해서 일단 미혼으로 지원한다고 한다. 하필 왜 여성들이 무슨 불리 때문에 그러는가? 기혼여성을 채용하면 금방 임신ㆍ출산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있으리라는 회사의 우려(?)로 인해 탈락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업할 때까지 혼인신고를 미루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해외토픽감이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 땅의 여성들이 출산계획을 세우려고 할까? 많은 전문가들이 저출산 현상의 주원인으로서 교육ㆍ돌봄비용 부담을 언급한다. 물론 아주 틀린 진단은 아니다. 그래서 어린이집 수는 급격히 확대되고, 임신ㆍ출산 전후 비용 지원 목록도 다양해졌다. 게다가 무상보육제도까지 도입됐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대책은 효과를 볼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다면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은? 가족도 부부도 아닌, ‘여성’의 돌봄부담이다. 더 나아가 돌봄부담을 기꺼이 하려는 여성을 시장이 채용 기피와 경력단절 강요로써 벌주는 현상이다.

‘남성=취업노동 담당자, 여성=무보수 가사ㆍ돌봄노동 담당자’ 구도를 ‘성별노동분리’라고 표현한다. 성별노동분리를 우리사회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남성은 취업노동에만 전념해도 되고 여성은 취업노동에 가사ㆍ돌봄노동을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래도 이중부담을 어떻게 해서든지 견뎌보려고 하는 여성에게 기업은 채용기피와 취업노동 중단 강요를 한다. 이중부담을 견뎌야 하고 원하는 취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는 방향으로 개별 여성이 무의식적으로 집단 반응을 하는 결과가 저출산의 지속이다. (가임기) 여성 전체는 조직화한 집단이 아니다. 그러나 성차별적 임신ㆍ출산 과정에서 갖게 되는 개인적 경험에 충실한 여성의 반응이 ‘출산파업’이라는 집단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어린이집을 아무리 만들어도, 퇴근시간 되자마자 엄마가 뛰어야 하는 현실에서 이른바 직장맘은 한 명은 낳아도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다. 받지 않던 비용지원을 받으면 도움은 된다. 그러나 바우처 카드에 넣어주는 돈 몇 십만원에 아이 더 낳겠다고 결심하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 교육비 부담 높다고 국가가 어느 수준까지 비용 분담을 해줄 수 있을까? 아예 없던 국가와 사회의 지원이 생겨서 좋다는 반응이 당장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 반응은 오래가지 않는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야근하고 회식 가서 남성 동료와 함께 제때 승진하고자 한다고 생각해보자. 임신ㆍ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의 대가로 국가 지원을 받는 것보다, 중단 없는 취업노동으로 양육비를 스스로 벌고 넉넉한 노후도 스스로 만들고 싶다는 여성의 소망을 인정하자.

성별노동분리 구도 철폐를 전제로 하지 않는 국가의 돌봄비용 지원은 영리민간 어린이집 시장 규모만 키우고 있음을 이미 보고 있다. 사교육비 부담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면 앞으로 국가에서 사설학원 비용도 대줄 것인가? 재정정책상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고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사교육 시장 규모만 키울 뿐 저출산은 지속될 것이다.

물론, 성별노동분리 극복을 국가정책으로만 할 수는 없다. 기업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인력에 대한 시장 수요 변화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성별노동분리 극복’을 명백한 정책 목표로 내세우지 않는 이상 저출산 극복의 길은 시작할 수 없다. 이른바 돌봄의 사회화를 위해 수많은 재정을 투입했지만 가족 내 성별노동분리 극복을 목표로 하지 않았던 독일은 현재 대표적 저출산 국가 중 하나이다. 그런 독일이 지난 2007년 이후 스칸디나비아 국가식 성별노동분리를 극복하는 돌봄의 사회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책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 앞으로 10여 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독일의 관련 전문가들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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