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매혹하는 식물의 뇌

뛰어난 지능 가진 고등생물 '식물'

2016-05-20 09:50:18 게재
스테파노 만쿠소 외 지음 / 양병찬 옮김 / 행성B이오스 / 1만6000원

식물에 지능이 있고 식물이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언뜻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가만히 고정된 곳에서 살며 생존과 번식에만 관심을 쏟는 식물에 지능이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 '매혹하는 식물의 뇌'는 식물에 지능이 있으며 그것도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식물은 보기보다 수동적이지 않다는 것. 심지어 식물은 뛰어난 지능을 바탕으로 인간을 무색하게 할 만큼 생명 게임에서 대승을 거뒀다는 주장을 펼친다.

'욕망하는 식물'의 저자 마이클 폴란은 추천사에서 이 책 '매혹하는 식물의 뇌'에 대해 탄탄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식물을 '이등 시민'으로 바라보는 편견을 깨 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수한 과학저술들이 그렇듯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완전히 새롭고 자유로운 관점에서 보게 해준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다양한 시대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식물이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기원 전 데모크리토스와 플라톤에서부터 근대의 린네와 페히너, 그리고 20세기 들어 찬드라 보즈까지 이런 믿음을 가져 왔다. 역사상 처음으로 확고한 정량적 자료에 의해 '식물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진보한 생물체'라고 주장한 학자는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이었다. 다윈은 저서 '식물의 운동력'에서 "어린뿌리의 말단은 매우 민감해서 인접한 다른 부분의 운동을 지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식물의 어린뿌리는 하등동물의 뇌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 생각보다 진보한 생물체

다윈의 주장대로 식물 뿌리의 말단, 즉 근단은 뿌리의 생장을 지휘한다. 식물 여러 부위의 요구 사항을 고려하고 물, 영양소, 무기염류 등이 각각 다른 곳에 분포해서 뿌리가 뻗어나가야 할 방향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는 등 복잡한 일이다. 근단은 인간의 뇌가 그러하듯 이런 서로 다른 욕구와 문제를 해결하고 식물 전체를 위한 결정을 내린다. 시시각각 중력, 기온, 습도, 전기장, 압력, 독성물질, 소리의 진동,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 같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를 분석해서 뿌리를 뻗을 곳을 정한다.

근단은 생장점과 감각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동물의 뇌신경과 유사한 전기신호를 발생시킨다. 이 수백만개의 근단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므로 주요 부분이 파괴되더라도 네트워크는 와해되지 않는다. 근단 하나의 계산 능력은 미약할지 몰라도 이런 네트워크를 이뤘을 때의 능력은 비범해진다. 개미들이 군집을 이뤄 자연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구조화된 사회를 형성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와 관련된 메커니즘이 완전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최신 연구 결과들은 속속 고등식물이 환경에서 신호를 받아들여 처리한 다음, 생존에 적절한 해법을 도출해낸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식물이 개체가 아닌 군집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무리지성을 발휘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능이 '삶이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면 식물이 지능을 가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능' '학습' 등을 식물과 연결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며 이를 동물의 전유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지구 생명체의 99.7%를 차지하는 식물에 대해 우리가 '동반자적 관점'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가 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씨앗을 심으면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난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인간의 눈으로 확인하기란 힘들다. 우리가 식물을 움직이지 못하는 생물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이런 '시차'의 탓이 크다. 그러나 식물의 시계로 본다면 식물도 분명히 운동한다.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으며 밤에는 꽃잎을 닫고 아침에는 열며 주변의 자극에 반응을 보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우리의 눈 앞에서 움직이는 식물을 본다면 식물의 운동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식물은 움직이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시물은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청각뿐 아니라 그 외 15가지나 되는 감각을 더 가지고 있다. 빛과 냄새, 맛, 감촉, 소리 등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위해 빛을 감지해 생장하고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반응하는 수용체를 가지고 있으며 토양 속 무기염류와 화학적 기울기의 위치를 알아내 뿌리를 뻗는다.

이렇게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식물도 움직이고 감각함에도 우리가 식물을 붙박이나 벙어리 정도로 치부해 온 것은 그 움직임이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와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무활동, 무감각 생물이라고 오해했다.

고착생활에 맞춘 생존법 발달시켜

약 5억년 전 식물은 고착생활을 선택했다. 동물과 달리 이리저리 움직일 필요가 없게 됐고 이에 맞는 생존법을 발달시켰다. 그러나 이에 따르는 문제도 있었다. 바로 초식동물의 위협을 받으면 도망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천적에게 저항하는 방법으로 식물의 신체는 각 모듈의 구성체로 진화하게 됐다. 식물은 여러 기능을 분산시켜 개별적으로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큰 조직의 일부가 되는 모듈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런 모듈화 덕에 식물은 신체의 일부를 잃어도 치명적 손상을 받지 않고 살 수 있게 됐다.

이 외에도 식물은 상호 간의 의사소통, 친척을 인식해 내서 지하 뿌리부보다는 지상부에 더 많은 에너지 투자하기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며 오랫동안 지구에서 살아남고 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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