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외 학자 154명이 반대하는 국정화, 국제적 망신이다

해외에서 활동 중인 한국학 연구자 154명이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의 입장을 밝히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민주주의 국가의 역사교과서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전문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명에는 브루스 커밍스, 도널드 베이커, 렘코 브뢰커 등 권위있는 학자들이 대거 서명했다. 이로써 국내 역사학자의 90%를 좌파로 매도하는 등 터무니없는 색깔논쟁으로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는 정부·여당의 입지는 더욱 군색해졌다. 정부·여당의 논리라면 서명에 참여한 해외의 학자들도 모조리 ‘좌파’로 낙인찍어야 할 판이다.

한국 문제를 연구해온 해외 학자들은 성명에서 국정화가 민주주의 국가로서 인정받은 한국의 국제적 명성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한국 내 민주주의의 후퇴를 만천하에 알리는 국제적 망신행위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의 역사분쟁에서 한국의 도덕적 기반을 약화시킨다는 것 또한 정확한 지적이다. 학자들은 역사학과 역사학자들의 가치와 양심을 매도하는 정부·여당의 인식에도 우려를 표했다. 역사는 정밀한 답을 구하는 과학이 아니라 역사학자들의 다양한 통찰력이 바탕이 된 학문이어야 한다는 학자들의 목소리 또한 상식에 속한다. 도널드 베이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는 ‘역사가는 하나의 역사를 믿지 않으며, 역사는 본디 어지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윌리엄 노스 미국 칼턴대 교수는 ‘다양한 역사적 견해는 국가의 약함이 아니라 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것이 곧 자부심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해외 학자들의 의견을 들어봐도 국정화는 국제사회의 기준으로도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오직 친박·뉴라이트·비전문가 집단만이 국정교과서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책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부끄럽다는) 기운이 온다’는 이른바 ‘기운론’에 매달리고 있다. 보수 성향의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마저 ‘정부가 온건한 보수가 아닌 극단적인 보수와 손잡은 느낌’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정도면 국정화의 논리싸움은 이미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려는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해외 학자들이 언급했듯 ‘한국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정교과서 논쟁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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