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2일 정부출연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 ‘명의’를 빌려 발표한 ‘공정한 인사평가에 기초한 합리적인 인사관리’라는 자료는 사실상 근로계약 해지에 관한 ‘정부 가이드라인’이다. 정부는 지난 4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 결렬 이후 독자적인 노동개혁 방침을 밝히고 6월 말까지는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 7~8월 중에는 근로계약 해지 기준에 관한 지침을 내놓겠다고 수차례 발표했다.
['해고 가이드라인' 나왔다] "3년간 최하위 등급 받은 근로자, 개선노력 안했으면 해고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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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와 근로계약 해지 기준은 노·사·정 대타협 결렬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4월 노동계 대표로 노·사·정 대화에 참여했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대타협 결렬 이후에도 “이 두 가지를 제외하지 않으면 노·사·정 대화 재개는 없다”고 거듭 주장했고, 정부 역시 “임금피크제와 일반해고 기준은 노동개혁의 핵심”이라며 노동계의 전향적 자세를 촉구해왔다.

이번 발표로 노동계와 정부 간, 여야 정치권의 노동개혁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당초 노동개혁 논의는 노동계와 정부 간 대립구도였다가 최근 대통령의 ‘특별 주문’으로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더구나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최근 ‘조건부 노·사·정 대화 복귀’를 언급한 상황에서 정부가 ‘수용 불가’를 공식화한 것이어서 향후 노·사·정 대화 재개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해고는 개선 기회 보장 후에…”

노동연구원은 이날 발표 자료에 총 세 건의 사례를 담았다. 두 건은 수년간 낮은 성과를 낸 근로자를 대상으로 업무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직무 재배치 등 고용 유지 노력을 했음에도 해당 근로자가 회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재교육 프로그램에서도 최하위 평가를 받았을 경우 해고는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과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판정 내용이다. 다른 한 건은 회사가 (노동조합 가입 등을 이유로) 특정 근로자나 집단을 미리 저성과자라 분류해 놓고 차별적인 인사 고과를 했을 경우 해당 근로자에게 주어진 인사상 불이익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다.

김기선 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인사관리의 타당성과 관련한 최근의 법원 판결 등을 검토하고 합리적인 인사평가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한 과제를 제시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능력 중심 사회 정착을 위해 공정한 인사평가에 기초한 합리적 인사관리 사례를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동연구원은 합리적 인사관리 방안으로 △인사평가제도 수립과 평가 결과 근로자에게 공개 △평가 결과와 관련한 고충처리 제도나 분쟁해결 제도 운영 △인사평가에 따른 직무 수준 조정, 직무 재배치 등 기회 부여 △회사의 자의적 조치를 막기 위한 근로자의 참여 보장 등을 제시했다.

○노동계 “서로 갈 길 가자는 것”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더욱이 노·사·정 대타협 결렬 이후 3개월여 만에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이 대화 재개를 제안한 마당에 이번 발표는 노동계의 제안을 사흘 만에 정면으로 거부하는 태도라는 반응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인도 코치에서 열린 국제노총 아태지역기구(ITUC-AP) 총회 참석차 출국하면서 “일반해고 지침과 취업규칙 불이익 요건 완화(임금피크제 도입)라는 두 가지 의제를 정부가 협상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정부는 노동연구원의 자료일 뿐이라고 해명하지만 오랜 시간 준비해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겉으로는 대화하자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정부가 갈 길 가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성명을 내고 “이번 발표는 국책연구기관을 동원해 사회적 분위기를 몰아가기 위한 선전에 불과하다”며 “극소수에 불과한 저성과자를 부각시켜 광범위한 노동자에게 적용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